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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업계 종사자의 구술사 연구
A Study of Oral Statement on the Professionals of Korean Animation Industry in the 20th Century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 #40;박사후국내연수& #41;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5S1A5B5A01015494
선정년도 2015 년
연구기간 1 년 (2015년 07월 01일 ~ 2016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일림
연구수행기관 한국예술종합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이 연구는 해방 이후인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만화영화업계에 종사했던 생존자를 발굴하여,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이 연구는 ①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에 종사한 주요인물의 구술을 채록할 것이다. 주요인물이란 창작이나 예술에 기여한 인물뿐만이 아니라 당시 왕성하게 활동을 했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뜻한다. 소위 하청업자나 표절 감독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이들도 포함될 것이다. 또한 ② 당시 동료들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이름 없는’ 이들을 발굴해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었던 인물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③ 20세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업계가 형성되고 전개된 경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동양방송 동화부, 세기상사, 대원동화, 서울무비를 기준으로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풍경을 살피고자 한다. 이들 회사에 관한 기초 정보와 구성원, 역할, 작품뿐만 아니라 이 회사에서 일한 사람들을 찾아서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 기대효과
  • ① 이 연구를 통해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토대 자료가 구축될 것이다.

    ② 1990년대를 전후로 급변한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밝혀질 것이다.

    ③ 그동안 소수의 기억과 편견에 의존해있던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다양하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④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하위주체에 의한 역사 재구성을 지향한다. 즉 파편적인 정보로 회자되었던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체상에 다가서는 작업이 될 것이다.

    ⑤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업계 종사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한국의 정치적,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이 연구의 목적은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종사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구술을 채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업계가 형성된 경위와, ‘하청산업’이라는 단어로 부정적으로만 해석되었던 1970∼80년대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만화영화가 무시당했던 시기에는 물론이오, 창작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인 애니메이션업계의 종사자들에게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업계’의 형성 경위를 취재함으로써,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체상에 다가서려는 시도이다. 이 작업을 통해 ①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형성과 전개 양상과 ②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에서의 하청과 창작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원자는 동양방송 동화부, 세기상사, 대원동화(현 대원미디어), 서울무비를 연구범위로 설정하고, 이들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탐문조사를 통해 발굴할 것이다. 주요인물은 직접 만나서 구술 채록을 하는 한편, 동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름을 찾아내어 20세 한국 애니메이션의 지형도를 그릴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인물들 중 생존자를 선별하여 인터뷰를 수행할 계획인데, 1차 인터뷰를 먼저 수행한 후 2차, 3차 인터뷰를 진행할지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1차 인터뷰 이후에 문헌조사와 탐문조사를 통해 교차 점검을 할 것이다. 구술은 녹음으로 기록될 것이며, 녹취 작업이 신중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시간과 정보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나서 기초자료를 수집할 것이다.
    생존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이 연구 결과는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교육과 연구의 교류 활성화에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그동안 일의적으로만 조명되어 온 한국 애니메이션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발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구술사를 주요방법으로 채택했다. 즉 해방 이후인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만화영화업계에 종사했던 생존자를 발굴하여, 그들의 구술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형성과 전개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는 동양방송 동화부, 세기상사, 대원동화, 서울무비를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주요 축으로 설정하고, 인터뷰를 수행했다.
    연구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한국 애니메이션의 출발은 해방 이후가 아니라 20세기 초인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후속연구로서 일본의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일본 내 자료 또한 살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한미일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특히 한미일 동맹이 구축된 1960년대는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이 연구는, 해방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의 주요 그룹으로 다음을 주목한다. 먼저 신동헌 중심의 창작 그룹이다. 신동헌은 일본을 경유한 해외 서적을 통해 독학으로 애니메이션을 습득했다는 주변의 증언이다. 또한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설립된 동양방송 동화부이다. 임정규 감독은 중앙일보 모집공고를 보고 동양방송 동화부에 응모했으며, 그곳에서 모리카와 노부히데와 함께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신동헌의 <홍길동>에는 동양방송 동화부의 인력도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도에이 동화이다. 한일기본조약 이후 도에이 동화는 대원동화, 세영동화, 교육동화와 관계를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KBS에 근무했던 조봉남 프로듀서가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도에이 동화는 대원동화, 세영동화, 교육동화를 한국의 자회사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도에이 동화의 전신인 니혼동화는 패전 이후인 1948년에 설립되었으나 종사자들은 2차대전기에 만화영화를 통해 대동아공영권을 구축했던 이들이다. 도에이 동화는 한일기본조약 이후 2차대전기에 가동되던 시스템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에 파트너를 구축했으리라는 것이 일본 관계자의 증언이다.
    한편 한국 애니메이션계는 넬슨신의 활약으로 미국과 직접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넬슨신은 한미일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번 연구를 수행하면서 연구자는 도에이 동화가 조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일기본조약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은 첨단기술이자 제조업으로 성장했다. 1970-80년대는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한 시기였다.
  • 영문
  • This study sought to identify the development process of Korean animation industry, a sector that has so far been highlighted from a univocal perspective. Oral history was adopted as the main research method. I have investigated animation professionals who have been engaged in the industry from the 1950s to the 1990s and recorded their voices on the experience to search for Korean animation industry. I considered the animation department of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TBS), Seki Corporation, Daewon Animation, and Seoul Movie as the key axes in the Korean animation history.
    Based on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I confirmed the following:
    First, the starting point of Korean animation dates back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of the 20th century rather than to the period after independence from Japan. As a follow-up study, it is urgent for us to interview Japanese Animation professionals and look deeper into the archive in Japan. Second, the history of Korean animation should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the relationship among South Korea, the United States and Japan. The 1960s when the triple alliance among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and Japan, was forged, in particular, is an inflection point in the history of Korean animation.
    From this point of view, I singled out the following entity as the major parts of Korean animation history after the independence from Japan. First, a creative group led by SHIN Dong-Hun. His acquaintances testified that he learned animation himself by reading English animation books in Japanese translation. Also I pay attention to the animation department of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 which was established after the signing of the Treaty on Basic Relation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Director YIM Jung-Kyu applied for the animation department of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 after having seen the recruitment notice in the JoongAng Ilbo. He testified that Morikawa Nobuhide had instructed him on how to animate in the department. A few members of the animation department of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 seems to have joined in the production of SHIN Dong-Hun's "Hong Gil Dong."
    I would like to emphasize Toei Animation’s role in Korean animation history. Since the signing of the Treaty on Basic Relation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Toei Animation has established relations with Daewon Animation, Se-Young Animation, and Kyoyuk Animation. It seems that producer CHO Bong-Nam, who worked for KBS, had played a major role in this process. It was testified that Toei Animation considered Daewon Animation, Se-Young Animation, and Kyoyuk Animation as its South Korean subsidiaries. Nippon Animation, the predecessor of Toei Animation, was established in 1948 after Japan’s defeat in the Second World War. However the animators and staffs there were those who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purported Greater Asia Co-Prosperity Sphere through animation films in the war. An animation industry official in Japan testified that Toei Animation may have built a partnership with South Korea after the signing of the Treaty on Basic Relations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regarding the extension of the system that had been operating in during the Second World War.
    In the meantime, the Korean animation industry has also established a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owing largely to Nelson SHIN. He is an important figure in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animation industries in the United States, Japan and South Korea.
    In carrying out this research, I realized that Toei Animation should be highlighted more. Since the signing of the Treaty, South Korean animation has been promoted and fostered as a high-tech sector as well as a manufacturing indust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 당초 연구자는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해방 이후인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기준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관점이 협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20세기 초, 즉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미국의 만화영화와 일본의 시스템이 어떻게 조선에 영향을 미쳤는지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까지 시야를 넓혀서 동아시아 만화 및 애니메이션 역사로 접근해야 한다.

    (2) 한국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인물과 자료도 함께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은 일본을 경유하는 수밖에 없다. 조선어로 발행된 문헌자료들이 한국에는 없지만 일본에 남아있다.

    (3)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변곡점은 1960년대와 1990년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1960년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 연구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1963년 12월17일부터 몇 년간에 주목한다. 이 시기 한국의 외교정책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미일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 애니메이션도 체계화되었다. 특히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후 활발해진 한국과 일본의 만화영화협업은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시스템의 연속선상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은 패전 이후 한국과의 국교가 단절된 20여 년 간의 공백을 메우고 끊어진 연결고리를 잇는다는 관점에서, 한일기본조약 이후 한국과 관계 복원에 힘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4) 해방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에 관해서는 다음을 알 수 있었다.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삼성이 밀접하게 관계했다는 사실이다. 삼성은 TBS 동화부를 5년도 안 되어 철수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삼성이 성장해왔다는 것을 자료 조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TBC와 별도로 신동헌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 그룹, 세기상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TBC 동화부는 한국 최초의 조직적인 애니메이션 회사였으나, 광고와 만화업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던 이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그룹은 신동헌이라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무엇보다 이 연구는 그동안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간과되었던 도에이 동화에 주목한다. 도에이 동화는 TBC와 별개로 한국에 협력사(대원동화, 세영동화, 교육동화)를 마련하고 이들을 통해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도에이 동화의 한국 진출에는 KBS에서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던 프로듀서 조봉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관계자들은 일관되게 증언한다. 조봉남에 대한 자료는 고 민영문 KBS 프로듀서가 월간 <뉴타입>에 쓴 컬럼이 유일하다. 고인이 된 조봉남은 도에이 동화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번역과 통역업무로 일본과 관계를 구축했다는 증언이 있다. 도에이 동화의 한국 진출은 그동안 하청 기지 구축이라는 관점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대동아공연권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일본 쪽 증언도 있다.
    한편 한국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인 <떠돌이 까치>를 제작할 당시, 도에이 동화의 감독이 연출을 감수해주었다는 구술도 받았다. 이 증언은 하청과 창작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을 고찰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5)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넬슨신의 역할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 넬슨신으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업계는 일본을 경유하지 않고 미국과 직접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한국인 넬슨신이 미국 마블 프로덕션의 라인 프로듀서로서 일본 도에이 동화에 파견되면서 도에이 동화와 한국의 관계가 다소 바뀌었다. 넬슨신의 행보로 인해 한국과 미국은 직접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아울러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에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교포들이 활약했다. 이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는 직접 미국의 대형 스튜디오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6) 서울무비 전창록 사장과 삼성영상사업단 관계자, 초기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업계의 관계자들을 만나서 1990년대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7) 한국 최초의 인형 애니메이션 <흥부와 놀부> 감독인 강태웅은 아쉽게도 2015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 의하면 그가 보유하고 있던 자료도 누군가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자는 강태웅 감독의 자택에서 유족을 만났고,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강태웅 감독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일본 자료 조사 및 취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를 진행하면서 새삼 확인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 한국 사회 전반에 대단히 강했다는 사실이다. 한일기본조약은, 해방 이후 공식적으로는 단절되었으나 실제로는 이어져있던 한일 교류를 공식화한 기점이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이 가교역할을 했으며, 애니메이션 분야도 그렇다.
    그 점에서 이 연구는 도에이 동화의 역할에 주목한다. 동양방송 동화부가 금방 사라진 반면, 도에이 동화는 대원동화, 세영동화, 교육동화를 통해 꾸준히 한국과 관계를 유지했다. 조봉남의 역할이 더욱 연구되어야 한다. 하청과 창작의 연속성은 대원동화 공채 1기로 도에이 동화에 다녀온 민경조 감독 등에게서 대표적으로 찾을 수 있다. 역사에 완전한 단절은 없듯, 하청과 창작은 단절되지 않은 채 그렇게 이어져있다.
    한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관계를 극적으로 바꾼 넬슨신의 역할 역시 평가절하되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그의 성취와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임정규, 정욱, 김대중, 유성웅, 박시옥, 김주인, 심상일, 고종환, 이학빈, 염우태, 백승균, 민경조, 김재호, 김승욱 등의 이름도 기억되어야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업계는 20세기 초부터 미국 애니메이션을 극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해왔다.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형성 역시 동양방송 동화부에서 출발했다기보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영향력이 어떻게 자리 잡았는가가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하청산업으로만 비판받던 1970∼80년대는, 한국 애니메이션업계가 체계화되고 표준화되던 시기였다. 이 연구에서는 그동안 일의적으로 해석되던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시각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몰랐던 업계의 주요인물의 이름과 활약을 알게 된 것도 큰 성과이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일본 애니메이션업계를 통해서 한국 애니메이션업계의 형성을 고찰하는 작업도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활용하고자 한다.

    1. 일련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할 것이다.
    2. 최종적으로는 우리말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3. 해외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할 것이다. (2016년 2월23일 고베대학교 외)
    4. 동아시아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다.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하위주체’의 자기 역사를 지향한다. 한정된 자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이 구술 작업을 통해 다르게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에 접근하여, 이 장르를 둘러싼 교육과 연구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사, 하청 시스템, 대중문화, 하위주체, 미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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