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무의식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삼는다.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는 탈이데올로기, 탈권위, 탈오이디푸스, 다원주의, 주체의 자율성, 향유와 쾌락에의 몰두 등 ...
본 연구는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무의식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삼는다.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는 탈이데올로기, 탈권위, 탈오이디푸스, 다원주의, 주체의 자율성, 향유와 쾌락에의 몰두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이다. 현대 사회는 ‘아버지의 죽음’(상징적 권위의 추락)을 선언하고, 쾌락과 향유를 억압하는 권위를 배척함으로써 나르시즘적 향유와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라깡과 지젝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다원주의적 탈권위 시대는 인간과 사회가 희구하던 해방과 자유, 탈소외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탈권위와 나르시시즘적 향유를 옹호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정신분석이 억압과 아버지의 상징적 권위를 강조하며 주체의 진정한 자율성을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포스트모던 사회의 탈권위적 상황을 해방과 자율의 징표로 제시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적 관점에 따르면, 현대 사회가 누리는 탈권위주의는 자유와 해방의 외양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그것은 보다 총체적인 지배와 종속의 전략이 낳은 정치적 결과이다. 지젝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이론은 현금의 주어진 상황을 보편적 원리로 승격시킴으로써 현대의 문화적 지형의 고착화에 기여하는 포스트모던 이론은 역사주의와 상대주의의 한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전환 히스테리’라는 개념에서 드러나듯이 프로이트, 라캉 정신분석은 자연과 육체를 순수한 물질적 과정이 아니라 기표적 과정임을 입증했고 이를 통해 ‘자연주의적 본질주의’를 극복했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분석은 원초적 억압, 혹은 실재라는 개념과 더불어 상징화할 수 없는 어떤 비역사적 핵을 논의의 중심에 위치시킴으로써 문화주의적 역사주의를 또한 극복한다. 정신분석의 이러한 이론적 입장은 자연주의적 본질주의를 극복하려는 가운데 역사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의 늪에 빠진 포스트모던의 입장을 비판, 극복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포스트모던적 현대인은 역사화할 수 없는 ‘외상적 핵’을 간과하며, 역사적으로 주어진 시대적 상황을 역사의 보편적 본질로 승격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상황의 ‘절대화’는 바로 이러한 역사주의적 사고방식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역사주의를 더 역사화시켜, 포스트모던적 사유와 현실을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위치시켜야 할 필요에 직면한다. 본 연구는 ‘큰 이야기’, 혹은 ‘총체성’을 논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포스트모던 상황 그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에 영향받아 형성되었으며, 그러한 ‘포스트모던적’ 역사주의의 정신성 자체가 이미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이론적 맥락에서 논증한다. 현대인의 쾌락 추구는 초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향유에의 의지’인 초자아의 명령 하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상징적 권위를 부인, 혹은 배척한다는 점에서 ‘도착적’, 혹은 ‘정신병적’(나르시시즘적)‘ 향유를 누리고 있다. 또한 현대의 문화적, 정치적 상황은 총체적인 문화 산업의 자본적 활동의 산물로서 권력에 의한 생산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또한 알튀세르가 논한 바 있는 중층결정의 논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정신분석은 탈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와 접맥될 수 있으며, 현 시대가 요구하는 ‘작은 큰 이야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지젝과 라깡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낳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포스트모던적 정신성 극복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지젝은 들뢰즈, 버틀러, 라클라우 등과 같은, 문화적, 정치적 급진성을 지향하는 현금의 여러 탈권위주의적, 포스트모던 이론가들과 논쟁하며 이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기표의 선험주의’가 아닌 총체적 역사이론으로서 라깡 이론을 재구성한다. 포스트모던 문화 및 이론가에 대한 이중의 개입을 통해 지젝은 작은 이야기가 아닌 큰 이야기, 메타 내러티브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역설하며, 바로 여기에서 지젝은 총체적인 사회분석의 틀로서의 마르크시즘과 정신분석의 의의, 독일 관념론의 의의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젝의 입장을 재구성한 후, 특히 본 연구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포스트모던 사회 문화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행위, 즉 환상의 횡단 개념을 해명함으로써 주체 및 사회의 변혁, 해방의 전망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행위 개념을 바탕으로 정신분석적 행위 및 성찰은 궁극적으로 정치적 행위라는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정신분석적 행위를 통해 주체를 소외시키는 대타자을 폐기하고, 새로운 질서의 건설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