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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5894&local_id=10013317
일제 말기 영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일제 말기 영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 | 2004 Year | 정중호(계명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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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S2015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2월 26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말기 영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의 실체를 밝힐 뿐 아니라, 극심한 압제 속에서도 항일운동을 가능케 했던 힘의 원동력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며, 이들이 전개했던 항일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를 규명하는데 있다.
    경북지역 시온산 제국의 활동은 일제 말기 독립운동 암흑기에 일어났던 강력한 항일운동이었다. 1943년 10월 23일부터 각 가정에 있는 일본 천황의 신붕과 일장기를 불사르라는 지시에 의해 온 공동체의 가정에서 그대로 시행하였다.
    1944년 4월 25일 이 기독교 단체는 "시온산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항일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시온산 제국은 한반도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하였다. 동시에 국기와 국가를 제정하고 정치조직을 구성하였다. 정치조직으로는 내각이 구성되었고 일본총독을 포함하여 총리와 대신들 그리고 육해군사령관 등이 임명되었다. 이 때 참여했던 구성원의 총수는 700여명이었다. 또한 시온산 제국은 항일 활동 내용과 계획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48 종류의 제목으로 108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이중으로 기록되어졌다
    시온산 제국이 연합군 상륙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시기인 1945년 5월 21일 경상북도 경찰부 일본 경찰은 시온산 제국의 지도자 33명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수감하였다. 이들은 각 지역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일본의 패망과 민족 해방을 맞아 1945년 8월 16일과 17일에 각각 풀려났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경남지역의 신사참배 거부 지도자들의 사상적 연원을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의 큰 흐름에서 살폈다. 그 흐름 가운데서도 남명 조식의 성리학적 해석과 그것이 그의 행동과 그의 문도들 사이에 어떻게 행동으로 표출되었는가를 살펴 신사참배 거부의 특징과 유사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남명학파의 사상과 행동의 특징을 보면 첫째가 은구(隱求)적 출처(出處)관이다. 둘째, 남명학파의 특징 중 하나는 절개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타협을 거부하였다. 넷째, 남명학파들의 주된 흐름은 사고보다 행동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특징을 미루어 볼 때 경남지역의 남명학파의 특성이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경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 가운데 주남선의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황보기와 백영희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고 상호 연결성 또한 살펴 보았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하여 평양의 이기선과 채정민이 한상동과 동향인 이 인재라는 젊은이를 중간 매개로 하여 경남지역이 남쪽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거점이 되어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을 밝혔다.
    경남 남해군 내산, 하동군 북방리, 산청군 중산리 지리산 등지의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세 공동체 모두가 신사참배 거부 공동체였으며 기독교 평신도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해군 내산의 성산 공동체와 북방리 공동체의 경우 기독교 평신도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공동체였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둘째로 이들은 지역상 지리산과 섬을 중심으로 하나의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손양원 목사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다.

  • English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not only to shed light upon the nature of Christian anti-Japanese resistance movements in the Youngnam area, but also to research the ability of these groups to advance resistance under extreme conditions and clearly delineate the historical importance of such movements.
    In areas of Gyeongbuk Province, the Empire of Zion Mountain movement was a strong anti-Japanese movement carried out in the late days of Japanese colonial rule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a period when other independence movements were less active due to severe oppression. From October 13, 1943 they began to burn Japanese national flags and the "Sinboong" of the Emperor of Japan.
    On April 25, 1944, the 700 members of this Christian organization read aloud a declaration of national foundation and held a national founding service. They also created a new flag and national anthem, and organized a political structure of government. The government created consisted of a cabinet, including a prime minister, heads of ministries, Supreme Commanders of the Navy, Army and Air Force, and a governor-general of Japan. Territories were divided into 12 provinces of Korea and 1 province of Japan, to be ruled by a governor-general.
    On May 21, 1945, the Japanese police of Gyeongbuk Province police division arrested, questioned and imprisoned 33 leaders of the Empire of Zion Mountain movement. They were considered independence movement leaders who created organizations and carried out anti-Japanese movements, and questioned and brutally tortured accordingly. Leaders were imprisoned at various police stations until they were released on August 16 and 17 of 1945, after Japan's defeat in WWII and Korean independence.
    This work has examined the early roots of Gyeongnam area protest leaders in the broader context of Confucian theory during the Chosun Dynasty. We have been able to discover similarities with Confucian thought introduced by Jo Sik, and the form of action developed by his school.
    Unlike tradition Buddhist doctrine, the Nammyeong school did not advocate inaction in the face of social and political problems.
    Secondly, the Nammyeong school emphasized loyalty.
    Third, compromise was unacceptable.
    Fourth, the Nammyeong school focused on action rather than theory or contemplation.
    Resistance groups in the Gyeongnam area emphasized action over theory, similar to the Nammyeong school. In conclusion, these characteristics show how the Gyeongnam area Nammyeong school strongly influenced resistance to Shinto worship.
    We have examined the connection between Ju Nam-sun's resistance to Shinto worship and Baek Young-hee's activities. Also, this research shows how Pyongyang's Lee Ki-sun and Chae Jung-min were able to connect to Gyeongnam area activists through Lee In-jae, a young man from the same area as Han Sang-dong. Through this connection, Gyeongnam area resistance against Shinto worship sparked the beginnings of a resistance movement across the country.
    From studies of Gyeongnam area communities in Namhae-gun Naesan, Hadong-gun Bukbang-li, and Sanchung-gun Jungsan-li, we find firstly all three communities were anti-Shinto resistance groups and centered upon general members of the church instead of church officials or leaders. We also note the how female members of the church were active in communities in the Seongsan community of Namhae-gun Naesan and Bukbang-li. Second, these communities formed a geographical chain linking Mt. Jirisan and outlying islands. Third, we find these groups were strongly influenced by Rev. Son Yang-won.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했던 일제 말기 영남지역에 일어났던 기독교인들의 항일운동의 실체와 그 역사를 밝히는 것이다. 동시에 본 연구는 극심한 압제 속에서도 항일운동을 가능케 했던 힘의 원동력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며, 이들이 전개했던 항일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를 규명하는 것이다.
    연구의 내용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일어난 시온산 제국 항일운동과, 경상남도 지역에서 일어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관한 것이다. 경남지역 항일운동 연구는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남명학파와의 관련에 관한 연구, 주남선과 관련된 신사참배 거부운동, 그리고 평신도 중심 비밀 항일공동체에 관한 연구 등이다. 평신도 중심 비밀 항일 공동체는 남해의 성산 공동체와 하동군 북방리의 공동체 그리고 산청군 중산리 지리산 공동체에 관한 연구이다.
    본 연구의 범위는 1937-1945년의 기간으로 한정하며 지역은 영남지역으로 정한다. 일제말기 영남지역 기독교인 항일활동에 대한 학문적인 토론과 관심을 진작시키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항일활동에 대한 연구결과를 홍보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이용하였다.
    경북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시온산 제국의 활동은 일제 말기 독립운동 암흑기에 일어났던 강력한 항일운동이었다. 다른 독립운동 단체들이 거의 활동할 수 없었던 시기인데도 시온산 제국은 공격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항일 활동은 최근, 미국 국립 문서 기록관리청(NARA)의 극비문서철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1943년 10월 23일부터 각 가정에 있는 일본 천황의 신붕과 일장기를 불살랐다. 또한 1944년 10월에는 신사참배를 할 수 밖에 없는 관공서와 학교와 교단에서 탈퇴하라는 지시가 시온산 제국으로부터 하달되어 시행되었다.
    1944년 4월 25일 이 기독교 단체는 "시온산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항일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이들은 청송군 수락에서 시온산 제국의 건국선언문을 낭독하고 독자적인 헌법을 제정하였다. 동시에 국기와 국가를 제정하고 정치조직을 구성하였다. 이 때 참여했던 구성원의 총수는 700여명이었다. 또한 시온산 제국은 항일 활동 내용과 성서해석 그리고 새노래 등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48 종류의 제목으로 108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이중으로 기록되어졌다
    1945년 5월 21일 경상북도 경찰부 일본 경찰은 시온산 제국의 지도자 33명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수감하였다. 이들은 각 지역 경찰서에 수감되었다가 일본의 패망과 민족 해방을 맞아 1945년 8월 16일과 17일에 각각 풀려났다.
    경남지역 항일운동은 세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였다. 첫째, 남명 조식의 성리학적 해석과 그것이 그의 행동과 그의 문도들 사이에 어떻게 행동으로 표출되었는가를 연구하였다. 연구결과 남명학파의 타협을 거부하고 절개를 강조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이 경남지역 기독교인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연구는 경남지역 기독교인 항일운동 가운데 주남선의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황보기와 백영희의 활동 내용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평양과도 연계되어 있었으며 전국적인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핵심적인 거점으로서 활동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연구는 경남 남해군 내산의 성산공동체, 하동군 북방리의 공동체, 산청군 중산리 지리산 공동체 등에 관한 연구이다. 이 공동체들은 비밀항일공동체로서 세 공동체 모두가 신사참배 거부 공동체였으며 기독교 평신도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해군 내산의 성산 공동체와 북방리 공동체의 경우 기독교 평신도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진 공동체였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를 통한 결과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북 의성과 청송 지역에서 일어난 시온산 제국 항일운동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은 일제의 박해 속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동시에 조직적인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 말기 항일운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시점에 이들은 일본 천황의 신붕과 일장기를 불태우고 1944년 4월 25일 시온산 제국이라는 조직을 확립하였다. 이들은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와 국기를 제정하였으며 정치조직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해방과 더불어 풀려났다.
    두 번째는 경남지역의 남명학파가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이다. 타 지역에 비해 극심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경남지역은 남명학파의 독특한 사고와 행동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결과이다.
    세 번째는 경남지역이 전국적인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남선을 중심으로 한 항일 운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번째는 경남 남해군 내산의 성산공동체, 하동군 북방리의 공동체, 산청군 중산리 지리산 공동체 등에 관한 연구이다. 이들은 비밀 항일 공동체로서 평신도 중심으로 그리고 여성 중심의 항일 공동체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의 연구결과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결과는 연구논문으로 학회지에 게재하였고 저서로 출판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발표를 통해 한국역사학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일제 말기 항일운동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으로 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일제 말기 한국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본 연구 결과는 기독교역사학에도 기여하여 일제 말기 한국교회사를 다시 쓰도록 만들 것이다. 또한 논문과 저서는 대학원과 학부의 교재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구결과를 세미나를 통해 발표하였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하기도 하였다. 또한 본 연구 결과는 교회에서나 기독교 교육기관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독교 교육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해와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승리한 내용이기에 신앙교육과 신앙부흥을 위한 중요한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평신도 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박해 시대에 조직적으로 활동했던 평신도 활동은 평신도 교재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공부와 영성훈련 등은 침체된 교회 장년부 교육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제 말기 독립운동도 잠잠해졌고 일제의 탄압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내용만 들어왔지만, 영남지역 기독교인들의 대담하고 용기 있는 항일운동으로 인해 민족적인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민족적인 기상을 앙양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기독교계에서도 일제 말기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항일운동을 하여 박해를 극복한 승리의 역사를 얻게 되어 한국기독교인들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 기독교가 한국 민족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중요한 사건으로 각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영남지역 항일운동 기독교인 항일운동 시온산 제국 남명학파 주남선 성산 공동체 북방리 공동체 지리산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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