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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와 언어 -대만, 인도, 한국에서의 '동화'와 저항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식민주의와 언어 -대만, 인도, 한국에서의 & #39;동화& #39;와 저항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손준식(중앙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S3011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2월 1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일본의 식민지 조선/대만과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지배자의 언어(일어와 영어)와 식민주의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곧 식민정권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식민지엘리트를 정권에 종속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 언어를 통한 지배자의 통치정책과 시행과정을 추적하였다. 또한 이 연구는 피지배자가 위로부터 부과된 언어정책에 순응하고 저항한 다양한 방식을 검정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그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비교사의 관점으로 통찰하였다.
    19세기 말 식민주의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일본은 식민지경영의 오랜 경험과 방대한 식민지를 보유한 영국의 정책과 통치방식을 취사선택하여 첫 식민지 대만에서 실험하고, 조선에 다시 적용하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만과 조선을 지배한 일본은 먼 곳에서 인도에 도래한 이질적인 인도에서의 영국 지배자와 달리 지리적 인접성과 인종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두 식민지를 일본의 지방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언어정책에 반영되었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수억의 피지배자와 소수의 백인지배자를 연계할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로 고등교육을 시행하지만, 머지않아 영어를 배운 인도인의 민족주의라는 반동을 경험하였다. 영국의 실패를 간파한 일본은 대만과 조선에서 엘리트교육보다 보통교육을 통해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일어교육에 나섰다. 언어정책은 달라도 영국과 일본은 지배자의 언어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수단이라고 설파하였고, 일부 피지배자는 개화를 위해 지배자의 언어를 수용하였다.
    지배자가 동화를 전제로 강제한 언어교육은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또 다른 피지배자들에 의해 민족주의와 정치적 자각의 언어로 바뀌었다. 인도에서 정복의 언어 영어는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불통을 넘어 민족주의의 언어가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대만에서 일어는 상호소통의 언어로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단일민족인 조선에서 일어는 지배논리를 내면화하여 ‘민족 정체성’의 분열을 겪거나 민족의식을 각성하여 일제를 비판하고나 도전하는 도구로서의 이중성이 도드라졌다.
    독립 이후 영어는 사라지지 않고 다언어사회인 인도에서 연계어로 살아남아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힌디에 영어가 더해진 힝글리시는 인도어의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어는 해방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한동안 외국어로서의 순기능도 잃었다 조선에서는 멸절 위기에 몰렸던 조선어가 국어로 부활했지만, 대만은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언어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다시 중국어를 부과 받은 대만인은 그 반발로 오히려 먼 과거인 일어와 일제시대에 대해 ‘향수’를 갖게 되었다.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부과한 언어정책은 성공했는가 식민지인도에서 영국의 언어정책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곧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영어가 살아남았다는 장기적 견지에서는 성공이었다. 1943년 대만에서 일어 보급률이 71%, 조선이 35%라는 결과처럼 대만에서의 언어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본의 일어정책은 피지배자를 완전히 동화한다는 애초의 목표에서는 ‘실패’였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분열에도 연계된 점에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식민주의와 언어를 다룬 본 연구가 내린 주요한 결론은 식민지에서 문화지배의 수단으로서의 언어정책의 성공여부가 식민지배자의 힘과 정책, 체계적인 시행에 못지않게 그것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피지배자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가장 강제성이 낮았으나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도의 영어는 수많은 언어를 가진 인도의 문화적 융통성과 관련이 있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보다 대만에서 일어가 보다 성공적인 이유도 다언어사회라는 대만의 특성에서 그 일단을 찾을 수 있다.

  • 영문
  • This study is an attempt to uncover the relations between colonialism and language of the colonizer in British India and Japanese occupied Taiwan and Korea, ie. English and Japanese language. We tried to pursue the patterns and phenomenons of the colonial controls and practises by means of the language policy followed in the each colony to acquire hegemonic influences and indigenous elites’ subjectivity.
    Two colonial countries were not identical, since Japan, a relatively late-comer, could enjoy a better position to emulate Britain, one of the oldest and the largest colonial power. Taiwan became an experimental laboratory to Japan for testing colonial language policy that subsequently implemented into Korea. Japan considered Taiwan and Korea as a part of their territory, relying on geographical proximity and racial affinity, unlike the British, being several thousand miles away from home with difference in creed, race and culture from the colonized. The colonial language teaching was an extensions of the overall colonial patterns and structures.
    The British spent their efforts in pursuit of a logical language policy to win over Indian elites who could be an intermediary between them and the vast masses, but received boomerang effects. In contrast, Japan intended to teach Japanese language by force to inculcate the masses of the colonies into loyal Japanese subjects. Even though colonial language policies were divergent, the purpose was to aimed in unison to en-culture the ruled into the culture of the ruler to serve to fortify colonial control under the veil of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Change could not simply imposed from above. English learning bred among Indian elites not only servility and complicity but also resistance and national feelings, turning the language of the colonialism into the language of nationalism. In Taiwan, where multiracial and multilingual identities were coexisted, Japanese language helped Taiwan people to nurture a sense of community spirit. While in Korea where the nature of society was rigid and monolithic, Japanese language did not meet a flood of enthusiasm but fragmented responses .
    English language spoken by a few in India survived after the demise of British rule and became stronger nowadays than ever. In contrast, Korea and Taiwan after the colonial rule rejected Japanese language in toto. While Japanese in Korea substituted immediately for Korean language, Taiwan where new political force were constructed witnessed serious language related social problems, causing nostalgic attitude toward colonial language.
    Were the colonial powers after all achieved its intended object The British did not come off in the short run but made a great coup in the long view as Indian utilized and indigenized the language as an 'Indian English'. The destiny of Japanese language in Taiwan and Korea went somewhat different directions. The number of population who were conversant in Japanese language in 1943 reached 71% in Taiwan and 35% in Korea respectively, indicating the level of success of the Japanese language policy.
    However one may explain the relative high percentage of Taiwan in terms of its multiracial and multilingual culture, unlike Korea with its strong homogeneity. The survival of English in India also reveals the flexible nature of societies with the co-existence of multiple cultures and languages. It can be argued, in conclusion, that the responses of the colonized towards colonial language teachings and policies were partly due to the differences in the nature of colonial rule, but also partly due to the nature of indigenous society and its historical experienc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일본의 식민지 조선/대만과 영국의 식민지 인도에서 지배자의 언어(일어와 영어)와 식민주의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곧 식민정권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식민지엘리트를 정권에 종속시키는 수단으로 기능한, 언어를 통한 지배자의 통치정책과 시행과정을 추적하였다. 또한 이 연구는 피지배자가 위로부터 부과된 언어정책에 순응하고 저항한 다양한 방식을 검정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그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결과를 비교사의 관점으로 통찰하였다.
    19세기 말 식민주의의 후발주자로 등장한 일본은 식민지경영의 오랜 경험과 방대한 식민지를 보유한 영국의 정책과 통치방식을 취사선택하여 첫 식민지 대만에서 실험하고, 조선에 다시 적용하는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만과 조선을 지배한 일본은 먼 곳에서 인도에 도래한 이질적인 인도에서의 영국 지배자와 달리 지리적 인접성과 인종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두 식민지를 일본의 지방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언어정책에 반영되었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수억의 피지배자와 소수의 백인지배자를 연계할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영어로 고등교육을 시행하지만, 머지않아 영어를 배운 인도인의 민족주의라는 반동을 경험하였다. 영국의 실패를 간파한 일본은 대만과 조선에서 엘리트교육보다 보통교육을 통해 전면적이고 강압적인 일어교육에 나섰다. 언어정책은 달라도 영국과 일본은 지배자의 언어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수단이라고 설파하였고, 일부 피지배자는 개화를 위해 지배자의 언어를 수용하였다.
    지배자가 동화를 전제로 강제한 언어교육은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또 다른 피지배자들에 의해 민족주의와 정치적 자각의 언어로 바뀌었다. 인도에서 정복의 언어 영어는 지리적 차이와 언어의 불통을 넘어 민족주의의 언어가 되었다. 다양한 부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대만에서 일어는 상호소통의 언어로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단일민족인 조선에서 일어는 지배논리를 내면화하여 ‘민족 정체성’의 분열을 겪거나 민족의식을 각성하여 일제를 비판하고나 도전하는 도구로서의 이중성이 도드라졌다.
    독립 이후 영어는 사라지지 않고 다언어사회인 인도에서 연계어로 살아남아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힌디에 영어가 더해진 힝글리시는 인도어의 하나로 여겨진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어는 해방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한동안 외국어로서의 순기능도 잃었다 조선에서는 멸절 위기에 몰렸던 조선어가 국어로 부활했지만, 대만은 본토에서 이주한 한족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언어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다시 중국어를 부과 받은 대만인은 그 반발로 오히려 먼 과거인 일어와 일제시대에 대해 ‘향수’를 갖게 되었다.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부과한 언어정책은 성공했는가 식민지인도에서 영국의 언어정책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곧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영어가 살아남았다는 장기적 견지에서는 성공이었다. 1943년 대만에서 일어 보급률이 71%, 조선이 35%라는 결과처럼 대만에서의 언어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조선과 대만에서 일본의 일어정책은 피지배자를 완전히 동화한다는 애초의 목표에서는 ‘실패’였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 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분열에도 연계된 점에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식민주의와 언어를 다룬 본 연구가 내린 주요한 결론은 식민지에서 문화지배의 수단으로서의 언어정책의 성공여부가 식민지배자의 힘과 정책, 체계적인 시행에 못지않게 그것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피지배자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가장 강제성이 낮았으나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도의 영어는 수많은 언어를 가진 인도의 문화적 융통성과 관련이 있고,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조선보다 대만에서 일어가 보다 성공적인 이유도 다언어사회라는 대만의 특성에서 그 일단을 찾을 수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와 관련하여 연구자들은 개별 국가-대만, 인도, 한국의 경험에 근거한 3편의 논문을 이미 등재학술지에 발표하였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자료와 사고(思考)를 더해 연구를 보완하고 3개국을 비교사적 관점으로 통찰하여 조만간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프랑스의 식민지 베트남이나 아프리카 식민지의 사례를 비교하여 이 주제에 대한 보다 통찰력 있는 연구서를 내려는 욕심도 있다.
    이 연구는 기존의 식민주의의 연구를 심화하고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식민주의를 다룬 연구는 많지만 식민주의의 문화적 지배, 특히 언어와 식민통치와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는 드물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 대만과 우리나라, 영국의 식민지 인도를 함께 다룬 연구는 전무하다. 더구나 식민주의를 다룬 연구들은 지배자의 헤게모니와 힘의 행사에 초점을 둔, 위로부터의 관점만 다룬 경우가 많았다. 이 연구는 식민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분석한 정치적 결정론의 한계를 벗어나 아래로부터의 반응을 함께 분석하였다.
    대만을 우리나라와 비교한 본 연구는 대만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편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라는 공통의 기억과 전후 미소냉전체제에서 국토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겪었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이 되는 경제적 기적을 이루어내고 민주화운동으로 독재정권을 타파한 대만의 어제를 이해하는 것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인도와의 비교를 다룬 본 연구는 이즈음 경제대국으로 거듭나는 인도를 이해하는 시사점을 다수 포함한다. 예를 들면, "외부세계에 대한 인도의 반응은 적극적 저항이 아닌 변화에 적응하는 소극적 전략을 통해 ‘내 안의 것’으로 만드는 융통성이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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