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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주의시기 여성사회화정책과 여성의 성별의식 형성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중국 사회주의시기 여성사회화정책과 여성의 성별의식 형성연구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미란(성공회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30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2월 28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개혁 개방 이후의 중국 사회의 전통회귀적 성별재편과정을 볼 때, 중국 여성문제는 맑시즘, 페미니즘, 근대화, 그리고 잠재된 유가전통이란 범주에서 다시 검토되어져야 한다. 이에 연구자는 사회주의 여성해방의 경험을 정책 슬로건 차원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구명,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3차년도 연구에서 일상의 가장 보편 영역인 가정(담론)을 중심으로 그것의 역사적 구성물로서의 특징을 고찰했다. 지난 2년 동안의 연구는 현대 중국의 여성문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도시-농촌의 지역성에 대한 고려의 중요성(근대경험)과 사회주의 문화건설의 주요 방법인 人治적 방법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의 필요성을 환기시켜주었다. 특히 후자는 법치를 무력화하는 관습적 강제를 가능케 함으로써 정치적 격변기에 다중이라는 방식으로 가치를 선점하여, 개인의 자기검열시스템을 강제하는 권력으로 기능했다. 이에 연구는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 세대간의 충돌, 결혼과 청년문화, 그리고 문혁 전후의 재현을 분석하였으며 핵심 범주는 ‘혈통’과 ‘성’이다.
    3차년도 연구대상인 1960-70년대 중국 사회주의 여성의 자의식 형성고찰은 문화대혁명(이하 ‘문혁’)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를 성별이의식이란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유관 자료의 비공개와 자료의 산발성으로 인해 자료 선별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어야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선행연구가 거의 없는 불모지에서 유의미한 연구를 하기위해 본 연구가 택한 방법은 성별의 범위를 확대해 ‘가정’에 초점을 맞추고 그 구성요소의 하나로서 젠더화,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 서사자의 자기정체성의 변화와 재현방식을 역사적 단계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혈통론은 "부모가 혁명가이면 자녀도 혁명가이고 부모가 반혁명이면 자식도 개차반"이라는 짤막한 구호인데, 1966-68년 문혁 초반기 간부집안출신 청년들이 주장하였다. 건국 후 중국사회주의에서 개인의 신분은 건국 이전인 1946-8경의 활동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신분재편 이후 혁명간부 2세대가 출생함으로써 부모의 특권이 유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혈통론을 제기했고, 이는 청년층 내부에 혁명/반혁명을 가르는 시금석으로 급격히 부상하였다.
    아이샤오밍(艾曉明)의《혈통(血統)》, 위뤄커(遇羅克)의 <신분론>은 혈통유전론에 반대하는 글로, 청년들이 부모를 반혁명분자로 단죄하고 비판을 가하게 된 맥락을 보여준다. 당시의 정치적 풍파는 가족을 이념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정치적 비판에 의해 1인 단독가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야기했다. 1980년대 문혁을 재현한 작품은 세대간 화해를 시도하는데, 그 방식은 본질적으로 문혁 서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혁명의 이념은 숭고했고 젊은 열정은 순수했다는 대전제 하에 비극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상대적으로 자유로와진 문혁 서사는 이전과 달라 혁명이 개인의 일상의 행복, 삶과 어떤 관계였는가를 비판적으로 묻는다.
    문혁을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여청년들의 결혼 양태에서 뚜렷한 젠더화가 드러난다. 농촌으로 보내진 청년 중 10%(86만 1,000명, 1977년)만이 현지에서 결혼을 했고 나머지 90%는 혼기를 넘기면서까지 결혼하지 않고 도시로 돌아왔다. 결혼을 배우자별로 유형화하면 지식 청년들 간의 결혼․청년과 도시노동자․청년과 농민과의 결합으로 나뉜다. 여청년들은 전체 결혼인수의 50%를 훨씬 상회하였고 그 중 농촌총각을 결혼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70%를 넘는다. 이들이 대화가 통하는 도시청년, 도시노동자가 아닌 농촌총각을 택해 시골 아낙으로서의 살아간 이유는 주로 생존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 농사일에 부적합한 이들은 배고픔과 노동의 하중을 해결해 줄 의탁자로 농촌남성을 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도-농 결합에 대해 1974년 이전까지 매체는 도-농 간의 결혼 결합의 문제점을 빈번하게 보도하였다. 도시 여청년이 시골로 배치되자 농촌의 간부들이 ‘마오주석이 우리에게 며느리(마누라)를 보내주었다’며 이들을 협박․고립시켜 아내와 며느리로 취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4년 마오쩌똥이 3대차별(도/농, 지식/체력노동 등)해소 방안을 도-농 결혼과 연계시키자, 그 후 농촌"정착하기(扎根)"의 모범사례로 도시 여청년"바이치란(白啓嫻)"의 농촌총각과의 결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도-농간 결혼은 장려되었다.
    마오쩌동의 경제건설전략은 도시-농촌 분리 정책이었다. 농촌의 자원을 차출하여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청년들은 농촌에 뿌리내리는 것을 기피하였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도-농 결혼결합은 도-농 분리정책, 여성의 체력적․기회불균등이란 3중의 구조의 결과였으며, 불순한 피의 희석이라는 ‘혈통론’적 인식론의 파급효과였다 하겠다.
  • English
  • As reviewing the process of reorganization in gender which returns tradition in chinese society, the problems of chinese women would be reconsidered in categories being feminism, modernism and latent confucian-tradition. Researcher thinks that experiences of women's liberation in socialism would be need of reanalysis not only political slogan but also private sector(family). Therefore, discussion studies characters of family as historical construction.
    By investigating, the proceeding studies during 2 years should be now brought into one's attention that more researches on consideration about regional characters of city-agricultural district(modern experience) and deep comprehension human politic-methodology which is the main method of cultural construction in socialism. Specially, the later, which would make it possible to compel legal-politic to neutralize conventionally, worked on power enforcing the system of personal self-censorship. In this article, an analysis on representation of post great proletarian cultural revolution, youth culture, marriage, conflicts between generations would focus on " bloodship" and "gender". "Bloodship- a revolutionist son after a revolutionist father, a bastard son after an the counter-revolutionaries-fater" was made by young people who were from ex-government officials in 1966-68. After a founding of country, those who advocated bloodship mostly came from families of high rank officials that participated in revolutionary wars before 1949. They held that they were disadvantaged by the entrance policy for higher education, which was designed for the intellectual elites. So, the children of the elites criticized them by claiming that the "bloodship" is hampering the realization of equality in socialist society. In those day, political situation caused not only making opposition of family members but also increasing phenomena of one person-household. A literary work representing The Cultural Revolution in 1980s tried to do a reconciliation between generations and the style of reproduction was essentially similar to narrations of The Cultural Revolution. Because narrations represented a tragic drama which had a precondition being the sublime of revolutionary
    idea and the purity of young pathos. But, in early 1990s, the narrations of the pre-great proletarian being relatively free critically asked that how revolution was concerned in individual life and happiness in routine work. The Cultural Revolution from the view of gender clearly showed the distinction of sex in mode of young girl of marriage. Only 10% among young people sent to rural areas got married to rural people and 90% who could not get married returned city. Marriages, categorized into a mate, were divided into three part , intellectual marriage, intellectual-laborer marriage and intellectual-farmer marriage. the marriage of young girls show over 50% and 70% among them could not choose intellectual and laborer but farmer because of survival related to the problem of weak body.
    Before 1974, media reported the problems of city-rural marriage very often, Since Mao was trying to link solutions to city-rural marriage in 1974, media reported extensively a good model that 'Bai-chiran' married farmer. there was a premium on city-rural marriages.
    The Mao' strategy of building economy was the policy of separation of cities and rural regions. young people disliked to live rural place because the temporary transfer of rural source developed cities. In this point, the city-rural marriage of women resulted of the three structures, separation of cities and rural regions and women's state which were the problem of weak body and inequality of chance and the epistemology of "bloodship" making bad blood clear.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개혁 개방 이후의 중국 사회의 전통회귀적 성별재편과정을 볼 때, 중국 여성문제는 맑시즘, 페미니즘, 근대화, 그리고 잠재된 유가전통이란 범주에서 다시 검토되어져야 한다. 이에 연구자는 사회주의 여성해방의 경험을 정책 슬로건 차원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구명,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3차년도 연구에서 일상의 가장 보편 영역인 가정(담론)을 중심으로 그것의 역사적 구성물로서의 특징을 고찰했다. 지난 2년 동안의 연구는 현대 중국의 여성문제를 분석함에 있어서 도시-농촌의 지역성에 대한 고려의 중요성(근대경험)과 사회주의 문화건설의 주요 방법인 人治적 방법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의 필요성을 환기시켜주었다. 특히 후자는 법치를 무력화하는 관습적 강제를 가능케 함으로써 정치적 격변기에 다중이라는 방식으로 가치를 선점하여, 개인의 자기검열시스템을 강제하는 권력으로 기능했다. 이에 연구는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 세대간의 충돌, 결혼과 청년문화, 그리고 문혁 전후의 재현을 분석하였으며 핵심 범주는 ‘혈통’과 ‘성’이다.
    혈통론은 "부모가 혁명가이면 자녀도 혁명가이고 부모가 반혁명이면 자식도 개차반"이라는 짤막한 구호인데, 1966-68년 문혁 초반기 간부집안출신 청년들이 주장하였다. 건국 후 중국사회주의에서 개인의 신분은 건국 이전인 1946-8경의 활동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신분재편 이후 혁명간부 2세대가 출생함으로써 부모의 특권이 유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들이 혈통론을 제기했고, 이는 청년층 내부에 혁명/반혁명을 가르는 시금석으로 급격히 부상하였다.
    아이샤오밍(艾曉明)의《혈통(血統)》, 위뤄커(遇羅克)의 <신분론>은 혈통유전론에 반대하는 글로, 청년들이 부모를 반혁명분자로 단죄하고 비판을 가하게 된 맥락을 보여준다. 당시의 정치적 풍파는 가족을 이념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정치적 비판에 의해 1인 단독가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야기했다. 1980년대 문혁을 재현한 작품은 세대간 화해를 시도하는데, 그 방식은 본질적으로 문혁 서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혁명의 이념은 숭고했고 젊은 열정은 순수했다는 대전제 하에 비극으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상대적으로 자유로와진 문혁 서사는 이전과 달라 혁명이 개인의 일상의 행복, 삶과 어떤 관계였는가를 비판적으로 묻는다.
    문혁을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여청년들의 결혼 양태에서 뚜렷한 젠더화가 드러난다. 농촌으로 보내진 청년 중 10%(86만 1,000명, 1977년)만이 현지에서 결혼을 했고 나머지 90%는 혼기를 넘기면서까지 결혼하지 않고 도시로 돌아왔다. 결혼을 배우자별로 유형화하면 지식 청년들 간의 결혼․청년과 도시노동자․청년과 농민과의 결합으로 나뉜다. 여청년들은 전체 결혼인수의 50%를 훨씬 상회하였고 그 중 농촌총각을 결혼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70%를 넘는다. 이들이 대화가 통하는 도시청년, 도시노동자가 아닌 농촌총각을 택해 시골 아낙으로서의 살아간 이유는 주로 생존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 농사일에 부적합한 이들은 배고픔과 노동의 하중을 해결해 줄 의탁자로 농촌남성을 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도-농 결합에 대해 1974년 이전까지 매체는 도-농 간의 결혼 결합의 문제점을 빈번하게 보도하였다. 도시 여청년이 시골로 배치되자 농촌의 간부들이 ‘마오주석이 우리에게 며느리(마누라)를 보내주었다’며 이들을 협박․고립시켜 아내와 며느리로 취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4년 마오쩌똥이 3대차별(도/농, 지식/체력노동 등)해소 방안을 도-농 결혼과 연계시키자, 그 후 농촌"정착하기(扎根)"의 모범사례로 도시 여청년"바이치란(白啓嫻)"의 농촌총각과의 결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도-농간 결혼은 장려되었다.
    마오쩌동의 경제건설전략은 도시-농촌 분리 정책이었다. 농촌의 자원을 차출하여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청년들은 농촌에 뿌리내리는 것을 기피하였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도-농 결혼결합은 도-농 분리정책, 여성의 체력적․기회불균등,불순한 피의 희석이라는 ‘혈통론’적 인식론이라는 3중의 구조의 결과였다하겠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연구결과
    문혁은 기성 세대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부모의 신분이 자식에게 유전된다는 혈통주의의 제기는 비판을 청년세대들간의 문제로 바꾸어놓았다. 11살 소녀가 중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를 "아이런콴, 그 사람은(艾仁寬, 他...)"(《혈통(血統)》,아이샤오밍)이라고 호명했을 때, 부자간은 이미 동지적 수평관계로 전치되었다. 이는 사회주의 교육이 자녀로 하여금 부모를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는 도덕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데, 문혁 초기 이후, 청년들의 행위방식은 주어진 권위를 중심으로 도열한 위계적 모방양상을 띠었다. 세대간 충돌은 지식청년(지청)이라 불리는 중고생들로 하여금 혁명노선에 대한 끝없는 자기증명을 요구했으며, 이들에게 부친세대에 대한 ‘원망’은 깊은 열등의식으로 자리잡았고,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혁명적이어야만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극단적인 고행과 과시적 행위로 나타났으며, 이 단계에서 개인은 진리와의 일치감을 맛보는 주체가 아니라 선험적 규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좀 더 가까이가려고 했던 모방자였다.
    둘째, "혈통론"에 의해 야기된 문혁시기의 가족관계의 변화, 세대간 충돌은 실제로 폭과 强度면에서 가족 구성에 변화를 초래했다. 〈1930-1990년대 冀南 농촌가정의 규모와 그 변동>연구는 문혁 직후 단독 1인 가구가 일시적으로 증가한 현상에 대해, 총 가구수는 늘고 가족규모는 줄어드는 일시적 현상을 보여주는데, 연구는 이를 근거로 문혁의 정치적 풍파가 가족을 이념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가족의 구성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셋째, 문혁기간 지청의 결혼은 젠더화된 양상을 보였다. 1,400만 하방 지청가운데 10%만이 이 기간에 농촌에서 결혼을 하였고 90%는 혼기를 넘기고 미혼상태로 도시로 돌아왔는데, 결혼한 사람 중 여성이 50%를 상회하고 그중 농촌총각과의 결합이 70%넘었다. 정부는 1974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도-농간 결혼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마오쩌동이 도-농 격차 등 3대 차별 해소방안과 여지청의 농촌정착을 직접 관련짓기 시작한 뒤로, 농촌총각-도시처녀의 결혼은 모범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으며, 이것은 여지청의 결혼이 빈곤과 과체력 노동을 견디지 못해 선택했다는 점을 은폐하였다. 농촌간부의 협박과 회유에 의한 도-농 간의 결혼 결합의 문제점을 보도하던 1974년 이전의 보도태도와는 판이한 것이었다. 그 결과 매체는 물론 일부 이상주의적 여청년들은 노동 결혼 결합을 지공무사의 이기심의 극복양태로 칭송하였다.
    즉, 문혁시기 도시 여청년들의 농촌총각과의 결혼은 도-농격차, 혈통론, 그리고 성적 차이로 인해 야기된 3중 모순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활용방안
    이상의 연구는 논문, 대학 특강, 국제회의 토론/발표과정에서 공유되었고 가시화된 연구결과활용은 아래와 같다.
    *논문류
    1)「중국의 ‘토착화’ 여성주의자 리샤오쟝과의 대담」(『중국현대문학』제 41호, 중국현대문학회, pp.189-206, 2007. 6.)
    2)「중국 1953년 혼인자유 캠페인의 안과 밖:관철방식과 냉전하 문화적 재구성」(『한국여성학』제22권 3호, 한국여성학회, pp.99-132, 2006. 11.)

    *단행본
    1)『중국현대문학과의 만남』(동녘, pp.256-269, 한국중국현대문학회 지음, 공저)
    ;〈두려움없는 비상, 녹아버린 날개, 딩링〉
    2)『중국의 한류,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학고방, pp.23-49, 2006. 장수현 외)
    ;〈부국 강병 전략과 드라마의 세대별 재현〉
    *출판계획

    가제<20세기 중국 여성의 삶과 문화>

    1.사회주의시기 여성
    -.일부일처제의 정립
    ;마누라가 이혼하고 자식들이 흩어지는 ‘혼인법’캠페인

    2.개혁개방시기
    -.시장주의와 페미니즘
    ;개혁 개방시기 여성담론가 ‘리샤오쟝(李小江)’
    -.동아시아 여성의 소통
    ;1980-90년대 한․중․일 여성담론의 지향과 교차

    3.대중문화 속의 국가, 그리고 젠더
    -.대중문화에 재현된 여성-드라마 <갈망>
    -.개혁 드라마, <省 당서기>
    -.부국강병의 꿈, <전산화 부대>

    4. 20세기 초 인텔리 여성에서 노동
    -.‘소피’에서 ‘뚜완샹’까지.
    ;딩링의 소설들

    출판사:문화과학사(예정)
  • Index terms
  • 문화대혁명, 혈통론, 신분론, 세대갈등, 결혼, 여지식청년(여지청), 도시-농촌, 성, 문혁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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