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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6554&local_id=10016641
들뢰즈 기계: 문학과 문화 사이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들뢰즈 기계: 문학과 문화 사이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지영(부산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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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33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8년 02월 2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8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지난 세기가 끝날 무렵 포스트구조주의자 혹은 탈근대 이론가들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이론가들은 근대의 자기동일적 담론을 벗어나면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한 패러다임들을 창출하였다. 한때 탈근대 이론가들이라고 뭉쳐서 부르던 이름들의 성운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개개의 빛을 발하는 항성들 가운데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새로운 철학의 지평을 밝혀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는 생성을 타자화하면서 존재에 몰두해온 철학의 역사를 생성의 관점에서 다시 기술하였다. 한편으로 위대한 존재의 철학자들로 알려진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트 등에게서 광기어린 생성의 실을 풀어내어 존재의 철학에 어른거리는 생성을 확인하였으며, 철학의 저편을 이루고 있던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을 생성의 철학자들로 자리매김하였다. 그의 생성 철학은 영적인 운동이거나 생기론과는 달리 철저히 경험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되, 초월적이지(transcendent) 않은 선험적(transcendental) 철학으로 상대주의와 개별성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초월적인 위치에 있는 것을 (그것이 신이건, 전제군주이건, 초월적 기표이건) 끊임없이 비판하며 초월자를 뺀 내재성의 장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한다.
    들뢰즈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처럼 작가를 겸한 철학자도 아니며, 블랑쇼(Maurice Blanchot)처럼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도 아니다. 그는 파르네(Claire Parnet)와의 대담에서 일찍부터 문학작품을 꾸준히 읽어왔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독서취향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문학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유목민적 감수성을 다룬 미국문학에 대한 그의 찬미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하여 문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의 내부에 있는 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외부에 있는 자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조직 속에 있거나 거기에 종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 조직에 동화되어 조직의 한계를 자신의 한계로 오인한다.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도 그러할진대, 문학 비평가들이 공유하는 일련의 규정들―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라든지, 문학의 장르에는 시, 소설, 드라마, 비평이 있다든지, 시는 수사학이 중요하다든지, 소설 시점은 작중인물시점과 화자시점으로 나뉜다든지―은 문학 비평의 콘텐츠가 될 뿐 아니라 문학의 한계로도 작용한다. 이에 들뢰즈는 문학 외부에서 새로운 개념과 용법을 창조하여 충격을 줌으로써 문학 내부를 진동하게 만든다. 그와 더불어 문학의 한계는 봉쇄가 아니라 확장하는 한계, 곧 다른 곳으로 넘어서는 문턱이 된다.
  • English
  • As one of pivotal thinkers in the postmodern era, Gilles Deleuze introduces us into a very unique approach to language and literature. His theory of language and literature stems from his philosophy of event and becoming, whose uniqueness is such that we can dubbed it an adjective that bears his name. This paper explores characteristics and attributes of Deleuzian language and literature.
    What is unique about Deleuzian language is that it focuses on becoming, not being. Plato distinguishes between two languages: one designating the pauses and rests which receive the action of Idea, the other expressing the movements or rebel becoming, i.e. languages of being and becoming. Whereas Plato hopes to keep beings from becomings by containing the latter within its own sphere, Deleuze tries to reveal that the language of becoming is not separate from that of being but the one subsists or inheres in the other as a potential.
    Similarly, Deleuzian literature opens itself to becoming by becoming-minor. Proust said that great literature opens up a kind of foreign language within the language in which it is written. This foreign language is not another language but rather the becoming-minor of language itself. A minor literature is not necessarily a literature written in a minor or marginalized language; for Deleuze, the term "minor" does not refer to specific literatures but rather to the revolutionary conditions for every literature.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연구는 「들뢰즈 기계: 문학과 문화 사이」의 첫 번째 단계로서 기계, 배치, 탈영토화와 같은 주요한 들뢰즈의 개념을 설명하고, 문학을 기계로 이해하는 들뢰즈의 이론을 고찰한 뒤, 기존의 문학이론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탈근대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출을 목표로 한다.
    문학 이론을 살피기 전에 우선 들뢰즈의 언어 이론을 고찰한다. 󰡔의미의 논리󰡕에서 들뢰즈는 언어가 가지는 세 가지 차원, 즉 지시(denotation)와 표명(manifestation)과 의미작용(signification)의 차원을 넘어 언어의 네 번째 차원인 의미(sense)를 제시한다. 의미는 명제가 지시하는 사물의 상태나 대상에로도 함몰되지 않고, 명제를 말하는 사람의 정신적 상태의 재현에도 함몰되지 않으며, 개인적인 견해나 일반적인 개념에도 함몰되지 않는 부분이다. 의미의 논리는 한 마디로 무의미(nonsense)의 논리인데, 이때 무의미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의미인 독사(doxa)에서 탈주한다는 뜻이다. 들뢰즈는 독사와 반대되는 패러독스와 무의미의 탈주선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언어 이론을 탈영토화한다. 그의 언어 이론은 패러독스와 무의미를 독사와 공통감각(common sense)보다 우위에 놓음으로써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는 스토아주의자의 언어 이론을 계승한다. 한편 들뢰즈는 언어에 대한 네 가지 가설들--정보적이고 소통적인 언어, 내재적인 언어, 동질적인 체계로서의 언어, 다수적인 언어--을 비판하면서, 화용론적인 언어와 소수적인 언어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들뢰즈가 전개하고 있는 문학 개념은 크게 보아 사건으로서의 문학, 반오이디푸스 문학, 소수적인 문학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건으로서의 문학은 글쓰기를 탈지층화하는 절대적인 탈영토화 운동에 참여하는 문학이다.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와 같은 패러독스와 무의미의 문학이 그것이다. 사건(event)은 아이온(aion)과 부정법(infinitive)의 차원이며, 비개성적이고 전개별적이고 중립적인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건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일어난 현실적인 사고(accident)와 구별된다. 사건은 본성상 비물질적이고, 사건이 사물의 상태 속에서 시공간적으로 실현된 것이 사고이다. 즉, 아이온의 시간에서 동사의 부정법이 사건이라면, 사고는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동사의 활용형에 해당한다. 모비딕(Moby-Dick)이나 에이합(Ahab)과 같이 문학적 인물들의 특징이 너무나 강렬하여 부정법의 층위로 올라 아이온의 비전을 보여줄 때, 이를 사건으로서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반오이디푸스 문학은 ‘나’로 환원되는 글쓰기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글쓰기는 ‘나’의 기억, 여행, 사랑, 슬픔, 꿈,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 즉 영원히 아버지-어머니 주위를 도는 오이디푸스 구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외관상 개인이라고 보이는 인물들 아래에서 비개인적인 힘, 즉 어떤 남자, 어떤 여자, 어떤 짐승, 어떤 복부, 어떤 어린아이 등 특이점을 발견할 때 존재한다. 󰡔안티 오이디푸스󰡕(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첫 장에 나오는 분열증환자인 쉬레버처럼 문학의 발화는 가족 구도에 매여있지 않고 지리적, 민족적, 정치적 헛소리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한 헛소리는 ‘나’의 개인성을 중화시키고 비개인성에 자신을 열어놓는다. 문학은 ‘나’라고 말할 힘을 빼앗아버리는 삼인칭(모리스 블랑쇼의 ‘중성’처럼)이 우리 안에 태어날 때야 비로소 시작된다. 이러한 비개인성, 중성, 또는 들뢰즈가 4인칭이라고 표현했던 목소리가 반오이디푸스적 문학의 출발점이다.
    셋째, 소수적인 문학은 다수적인 문학 속에 잠입하여 그것을 탈영토화하는 문학이다. 들뢰즈는 󰡔카프카󰡕에서 "소수 집단의 문학이란 소수 집단 언어의 문학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지배 집단의 언어권에서 소수 집단의 문학이란 소수 집단 언어의 문학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지배 집단의 언어권에서 소수 집단이 지탱해나가는 문학을 지칭한다. 어쨌든 소수 집단 문학의 일차적 특성은 탈영토화율이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라고 명시한다. 이는 소수적인 문학이 소수자만의 문학이 아니라, 지배 집단의 다수적 문학을 탈영토화하는 글쓰기가 소수적 문학이라는 의미이다. 사건으로서의 문학과 반오이디푸스적 문학과 소수적인 문학이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한 가지 탈영토적 문학을 지칭한다. 그것은 무의미 언어의 강렬한 사용이며, 오직 발화의 집단적 구성만이 있을 뿐 ‘나’라는 발화의 주체가 없으며, 의미 속으로의 재영토화에 대항하는 언어의 절대적인 탈영토화 운동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사르트르(Jean-Paul Sartre)처럼 작가를 겸한 철학자도 아니며, 블랑쇼(Maurice Blanchot)처럼 소설가이자 문학 비평가도 아니다. 그는 파르네(Claire Parnet)와의 대담에서 일찍부터 문학작품을 꾸준히 읽어왔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독서취향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문학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유목민적 감수성을 다룬 미국문학에 대한 그의 찬미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하여 문학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은 문학의 내부에 있는 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외부에 있는 자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조직 속에 있거나 거기에 종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 조직에 동화되어 조직의 한계를 자신의 한계로 오인한다. 문학에 종사하는 이들도 그러할진대, 문학 비평가들이 공유하는 일련의 규정들―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라든지, 문학의 장르에는 시, 소설, 드라마, 비평이 있다든지, 시는 수사학이 중요하다든지, 소설 시점은 작중인물시점과 화자시점으로 나뉜다든지―은 문학 비평의 콘텐츠가 될 뿐 아니라 문학의 한계로도 작용한다. 이에 들뢰즈는 문학 외부에서 새로운 개념과 용법을 창조하여 충격을 줌으로써 문학 내부를 진동하게 만든다. 그와 더불어 문학의 한계는 봉쇄가 아니라 확장하는 한계, 곧 다른 곳으로 넘어서는 문턱이 된다.
  • Index terms
  • Deleuze, becoming, event, sense, becoming-minor, style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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