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까지의 재만 조선인 시문학은 창작 담당층과 시형 선택에 있어서 망명 이전과 별다른 차별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내용상으로 볼 때 고국에서보다 더욱 강한 어조로 반일 투쟁의식과 항일 의병의 활약상을 전경화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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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까지의 재만 조선인 시문학은 창작 담당층과 시형 선택에 있어서 망명 이전과 별다른 차별성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내용상으로 볼 때 고국에서보다 더욱 강한 어조로 반일 투쟁의식과 항일 의병의 활약상을 전경화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만주에 이주하게 된 유이민의 삶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의 ‘국책이민’ 정책이 조직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실시된 만주사변 이후부터이다. 하지만 이전부터도 단속적으로 짐짝처럼 아무렇게나 이민열차에 실려 만주 등지로 떠나갔던 이농민들의 삶을 그 주요한 시적 현실로 수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이민들의 모습은 만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 쫓겨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 낯선 타향에서의 부적응과 현실적 고난에 대한 한탄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정착기에 접어든 재만 조선인의 생활사를 증언하는 시적 수용은 다양하게 드러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 풍년을 맞았건만 세금 물고 빚 갚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어 길가에 나앉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황량한 만주 벌판을 피땀 흘려 옥토로 만들어 놓았지만 중국인 지주에게 땅을 빼앗기고 다시 먼 북방으로 내몰리는 이주민의 이야기, 척박한 만주 땅에서 목숨을 가까스로 이어가는 동족을 허름한 초막에서조차 내쫓고 타살하기까지 하는 조선인 지주 이야기, ‘오족협화’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 등 수많은 재만 조선인이 정착 과정에서 겪었던 비극적인 삶이 극적으로 변주되어 형상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광복 후 잔류를 선택하여 중국공산당의 토지 개혁에 기대를 가지고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 시기는 이욱을 비롯하여 천청송․송철리 등 새로운 시인들이 다수 등장하여, 다양한 문학활동을 전개한다. 광복 이후의 시문학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중국에 남은 이들에 의해 활발히 전개되는데, 광복의 감격을 노래하고, 토지 개혁 등에 대한 기대와 환영, 인민해방전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담은 내용이 주조를 이룬다.
재만 조선인 소설은 일제 식민지 정책과 만주 이주라는 우리 민족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생성된다. 이 소설들에는 이주민과 피지배민이라는 이중의 억압 속에 놓인 이주 조선인의 다양한 생존 방식과 이주ㆍ정착의 역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재만 조선인 소설은 초기 이주민들의 간고한 수난사와 강한 정착 의지를 담아내고, 항일 투쟁이 좌ㆍ우익의 이념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상황과 만주국 정책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혼란과 위기의식 속에서 마약․밀매․매춘 등 갖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재만 조선인 사회의 비극 등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다.
안수길의 「새벽」 「벼」 「원각촌」, 김창걸의 「암야」, 현경준의 ꡔ선구시대ꡕ, 박계주의 「인간제물」 등은 일제뿐만 아니라 중국 관헌, 지주, 원주민들과의 갈등이 증폭되고, 동족을 배반한 인간들의 작태와 마적단들의 폭력까지 늘어가는 극한 상황 속에서 초기 이주민들이 숱한 참상을 이겨내면서 힘겹게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신서야의 「추석」, 현경준의 「밀수」 「길」, 안수길의 「목축기」 ꡔ북향보ꡕ, 박계주의 「딸다리족」, 강경애의 「소금」 「모자」 등은 당시 이주 정책의 허구성에 주목하면서, 중국과 일제의 탄압뿐만 아니라 좌ㆍ우익의 이념 갈등까지 감당해야 하고, 만주국 정책에 대한 저항과 타협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생존 조건에 직면한 재만 조선인 사회의 실상과 전망을 제시한 대표적인 소설들이다.
한편 만주국 당국과 총독부가 대립하는 가운데 재만 조선인들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전망 부재의 사회 속에서 이념 투쟁의 한계에 직면한 일부 혁명가와 지식인들은 깊은 자괴감과 함께 현실 도피에 빠져들거나, 생계유지에 급급한 이주민들은 마약․밀매 등에 넘어가는 등 갖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현경준의 「유맹」, 김창걸의 「청공」 「천사와 요술」, 황건의 「제화」 「숨결」, 강경애의 「마약」, 안수길의 「토성」, 박영준의 「밀림의 여인」, 최명익의 「심문」 「장삼이사」 등은 이러한 사회상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