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세로서의 고대 러시아 시기는 서구 유럽에서의 일반적인 중세와 동일하게 기독교라는 시대의 지배소를 지니고 있지만, 구체적인 현상들에서는 변별되므로, 개별적 연구대상이다.
둘째, 중세의 예술을 논하기 ...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세로서의 고대 러시아 시기는 서구 유럽에서의 일반적인 중세와 동일하게 기독교라는 시대의 지배소를 지니고 있지만, 구체적인 현상들에서는 변별되므로, 개별적 연구대상이다.
둘째, 중세의 예술을 논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 문화 공간에 있어서의 중세가 지니는 의미를 선행적으로 이해해야하며, 나아가서 현대의 예술적 잣대로 이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많은 이들이 중세 속에서 암흑의 시대와 예술 불모의 시대를 발견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셋째, 중세의 예술이 신성중심의 종교 예술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 러시아 예술에서 보듯 종교 예술이라는 이유로 중세의 예술을 인성이 억압되고 창작이 부재하는 예술양식으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종교성의 원칙에 의해 창작된 중세의 예술에 존재하는 특성들은 모두 그 시대의 창작자와 예술 향유자 사이에 합의된 암묵적 약속에 의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러한 예술을 통해 중세 러시아인들은 미적 쾌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고대 러시아의 예술이 비록 신성 중심의 종교 예술이었지만, 그 속에는 분명히 예술 창작자로서의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즉 비록 현대적 의미에서의 ‘창작의 자유’가 제한된 중세의 예술이지만, 그 역시 살아있는 인간에 의해 창조된 예술이었고, 그 속에는 예술 창작자로서의 인간적 고뇌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현실을 보는 인간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었다.
다섯째, 고대러시아의 종교적 관점에서 언어와 도상성은 그 특성상 동질적이었고, 따라서 매우 쉽게 결합될 수 있었다. 성화에서부터 시작된 이 둘의 결합은 이후 삽화들과 루복으로 발전되어 갔다.
여섯째, 루복은 성화를 모방하여 발생한 대중문화(Народная культура)의 일례이다.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상류 문화를 모방하고 패러디한다. 따라서 루복에 존재하는 근본 예술 창작의 원칙은 성화와 유사하다. 단지 대중문화의 속성상 언제나 원칙적인 규정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므로, 이후 루복에서는 성화로부터 결별한 형태가 나타났다.
본 연구의 결과들은 다음과 같이 활용될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문학을 포함한 고대 러시아 예술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로서 아직은 낯선 고대 러시아 예술을 인식할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미진한 국내에서의 고대 러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화적 시원으로서의 고대 러시아 문화에 대한 이러한 연구는 최근 몇 년간에 걸쳐 목도되는 러시아 문화에 대한 증폭된 관심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뿌리로서의 고대 러시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이 고대 예술로 되돌아가고자 했던 근현대 러시아 문학/예술에 대한 연구의 저변을 확대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둘째, 고대 러시아의 미적 인식에 대한 본 연구는 중세를 예술의 암흑기가 아닌, 규범과 준범의 원칙 속에서도 생동했던 독창성의 시기로 이해함으로써 중세 재발견에 나선 일련의 저작들에 동참한다.
셋째, 중세 예술 일반에 대한 이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공식문화/민중문화간의 정/반의 대립구도를 지양하고 이들 두 문화간의 동질성 이해에 대한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이후 민중 문화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이 연구의 결과는 실질적으로 러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활용될 예정이며, 대학원은 물론이거니와 학부에서 개설될 수 있는 고대 러시아 문학 강좌 등의 교육과정에서도 또한 적극 활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