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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6669&local_id=10011270
영국 전국 실업자 운동(NUWM)의 실(失): 1932년 ‘생계비 테스트의 위기’와 1935년 ‘UAB의 위기’를 중심으로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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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03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4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일자리 혹은 생계비’라는 NUWM의 설립목표에는 실업보험 체제와 관련한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1931년 말-1932년 10월의 ‘생계비테스트의 위기’ 때 NUWM은 자신이 주장해온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에 기초한 실업보험 체제를 끝까지 요구하지 않고, 선택적 사회적 시민권 개념에 기초한 이중 실업보험 체제가 존속하는 가운데 보다 관대한 실업수당과 공적 실업부조를 약속한 정부의 제안에 만족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공산당과 연계되어 혁명적 성격을 갖고 있던 지도부와 달리, NUWM의 각 지방 조직들은 사실 이데올로기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지방 조직의 운영과 재정 면에서 지도부의 통제를 벗어나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더 많은 액수의 실업 구제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위기’ 시에 이들이 주장한 ‘일자리 혹은 생계비’라는 모토는 기존의 정치․경제체제와 주어진 실업보험 체제 내에서의 보다 높은 수준의 실업수당과 공적 실업부조와 실업자들의 생활수준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을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NUWM의 담론과 실제 행동은 달랐던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NUWM이 노동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노동당과 노동조합회의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추구하던 노동당은 그들의 선전과 달리, 선택적 사회적 시민권에 기초한 기존의 이중 실업보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의도가 없었으며, 혁명적 성격을 띤 공산당과 이와 연계된 NUWM이 실업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대표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거부했다. 이렇게 NUWM 지도부와 평 운동원들 사이의 목표의 차이와 좌파세력들 간의 분열로 인해 NUWM은 ‘생계비테스트의 위기’라는 호기를 맞고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을 끝까지 강력히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공적 실업부조 체제의 운영이 지방선거로 선출된 관리들이 담당하던 PAC 체제에서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관리들이 운영하는 UAB 체제로 바뀜으로써, 실업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공적 실업부조의 액수 결정과 관련하여 실업자들 자신이 지방정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방법을 영원히 상실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NUWM은 ‘UAB의 위기’라는 호기를 맞아 이에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정부가 더 관대한 공적 실업부조의 지급을 약속하자 이상하리만큼 금방 물러서고 말았는가
    이런 결과는 다음의 원인들에 의해 초래되었다. 먼저, NUWM 지도부는 자신이 타도해야 할 대상이 자본주의 국가라고 규정했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이 국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고, 나아가 UAB 체제가 실업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의 진정한 의미, 즉 실업자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의 상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UAB 체제와 정지법이 자본주의 국가의 재정적 안정성을 약화시켜 이 국가의 몰락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한편,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했던 NUWM의 평 운동원들은 새로운 체제의 의미를 더욱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이 주장하는 ‘일자로 혹은 생계비’에 담긴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은 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이었으며, 기존의 정치경체체제 내에서 국가의 보다 적극적 개입을 통한 자신들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UAB 체제가 담보하고 있는 이런 국가의 개입이 정지법을 통해 공적 실업부조의 액수를 유지 내지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즉각 UAB 체제를 수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민주적 통제력의 상실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이번에도 NUWM은 노동운동의 주류와의 연대 형성에 실패했으며, 노동당과 노동조합회의도 더 많은 실업 구제금에 만족하고 물러났다. 더욱이 두 ‘위기’ 이후 공적 실업부조나 실업수당의 수준이 지방의 최저임금 수준과 유사한 경우도 많았으며, 1933년 이후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실업률이 점진적이나마 하락하면서 실업자들의 생활수준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었던 점도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 English
  • The NUWM’s purpose was ‘work or maintenance’ based on the notion of universal social citizenship. The 1932 ‘Means Test Crisis’ provided the NUWM with a good opportunity to press hard the State for a non-contributory, non-means-tested, and State-financed insurance system based on such a notion of citizenship. However, as the government promised a higher level of unemployment relief within the existing dual unemployment insurance-assistance system based on the idea of selective social citizenship, the NUWM retreated. One reason for this phenomenon was that while national leaders of the NUWM was connected with the CPGB and thus revolutionary, its rank and file members were largely non-ideological and non-political. Thus, the motto of ‘work or maintenance’ the NUWM strongly demanded during the crisis did not really mean so much universal social citizenship which was socialistic in nature as improvement of unemployed workers’ living condition within the existing social system by way of higher rates of unemployment relief and bigger chances for new employment. Discourses and activities of the NUWM did not exact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other important reason was the failure of the NUWM in acquiring the support of the mainstream of the Labour movement. Throughout the interwar period, the Labour Party and the TUC committed ideologically to democratic socialism, which operated within the limits of capitalism and parliamentary democracy, and hence basically accepted the existing dual unemployment insurance-assistance system. Thus, due to the militancy of the NUWM and its leaders’ well-known Communist allegiance, Labour leaders refused any alliance or cooperation with the NUWM, considering it a Communist front.
    Under the UAB system, the UAB officers appointed by the central government took over the administration of the means-tested unemployment assistance payments from the locally elected PAC officers. Due to this change, the NUWM and other unemployed workers lost their power of ‘democratic control’―the means of accessing and influencing the Local Authorities in determining the amount of assistance. The 1935 ‘UAB crisis’ furnished the NUWM with a good opportunity to resist the State against this change. Nevertheless, what the NUWM most fiercely opposed was the reduction in assistance payments rather than the loss of the ‘democratic control.’ When the government promised more generous assistance payments, the NUWM retreated quickly.
    One reason for this phenomenon was that leaders of the NUWM, though defining the capitalist State as its greatest enemy, did not clearly define how to treat the central government and the Local Authorities. Moreover, they did not realize the importance of the loss of the ‘democratic control’ itself. Some of them even thought that the UAB system, having the unemployed claim a greater amount of assistance, would undermine the financial stability of the capitalist State, promoting its collapse.
    Another reason was that for the rank and file members of the NUWM, the notion of universal social citizenship contained in the motto of ‘work or maintenance’ was social democratic rather than socialistic, meaning improvement of their living condition by a more active state intervention within the existing social system. Thus, when the State enlarged its role in unemployment relief through the UAB system and then guaranteed more assistance payments through the Standstill Act, they accepted the UAB system without caring much about the loss of their power of the ‘democratic control.’
    In addition, this result derived also from three more factors: the repeated failure of the NUWM in making an alliance with Labour and the TUC, a relatively higher level of benefit/assistance after the crisis which was frequently equal or exceeded the local wage rates, and the domestic economic conditions which began to improve from the autumn of 1932.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일자리 혹은 생계비’라는 NUWM의 설립목표에는 실업보험 체제와 관련한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1931년 말-1932년 10월의 ‘생계비테스트의 위기’ 때 NUWM은 자신이 주장해온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에 기초한 실업보험 체제를 끝까지 요구하지 않고, 선택적 사회적 시민권 개념에 기초한 이중 실업보험 체제가 존속하는 가운데 보다 관대한 실업수당과 공적 실업부조를 약속한 정부의 제안에 만족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공산당과 연계되어 혁명적 성격을 갖고 있던 지도부와 달리, NUWM의 각 지방 조직들은 사실 이데올로기나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지방 조직의 운영과 재정 면에서 지도부의 통제를 벗어나 상당한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이들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더 많은 액수의 실업 구제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위기’ 시에 이들이 주장한 ‘일자리 혹은 생계비’라는 모토는 기존의 정치․경제체제와 주어진 실업보험 체제 내에서의 보다 높은 수준의 실업수당과 공적 실업부조와 실업자들의 생활수준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을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NUWM의 담론과 실제 행동은 달랐던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NUWM이 노동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노동당과 노동조합회의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체제 내에서의 개혁을 추구하던 노동당은 그들의 선전과 달리, 선택적 사회적 시민권에 기초한 기존의 이중 실업보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의도가 없었으며, 혁명적 성격을 띤 공산당과 이와 연계된 NUWM이 실업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의 대표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거부했다. 이렇게 NUWM 지도부와 평 운동원들 사이의 목표의 차이와 좌파세력들 간의 분열로 인해 NUWM은 ‘생계비테스트의 위기’라는 호기를 맞고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을 끝까지 강력히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공적 실업부조 체제의 운영이 지방선거로 선출된 관리들이 담당하던 PAC 체제에서 중앙정부가 임명하는 관리들이 운영하는 UAB 체제로 바뀜으로써, 실업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공적 실업부조의 액수 결정과 관련하여 실업자들 자신이 지방정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방법을 영원히 상실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NUWM은 ‘UAB의 위기’라는 호기를 맞아 이에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정부가 더 관대한 공적 실업부조의 지급을 약속하자 이상하리만큼 금방 물러서고 말았는가?
    이런 결과는 다음의 원인들에 의해 초래되었다. 먼저, NUWM 지도부는 자신이 타도해야 할 대상이 자본주의 국가라고 규정했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이 국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고, 나아가 UAB 체제가 실업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의 진정한 의미, 즉 실업자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의 상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UAB 체제와 정지법이 자본주의 국가의 재정적 안정성을 약화시켜 이 국가의 몰락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한편,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무관심했던 NUWM의 평 운동원들은 새로운 체제의 의미를 더욱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이들이 주장하는 ‘일자로 혹은 생계비’에 담긴 보편적 사회적 시민권의 개념은 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이었으며, 기존의 정치경체체제 내에서 국가의 보다 적극적 개입을 통한 자신들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UAB 체제가 담보하고 있는 이런 국가의 개입이 정지법을 통해 공적 실업부조의 액수를 유지 내지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즉각 UAB 체제를 수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신들의 민주적 통제력의 상실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나아가 이번에도 NUWM은 노동운동의 주류와의 연대 형성에 실패했으며, 노동당과 노동조합회의도 더 많은 실업 구제금에 만족하고 물러났다. 더욱이 두 ‘위기’ 이후 공적 실업부조나 실업수당의 수준이 지방의 최저임금 수준과 유사한 경우도 많았으며, 1933년 이후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실업률이 점진적이나마 하락하면서 실업자들의 생활수준도 조금씩 향상되고 있었던 점도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영․미 사학계에 대한 기여
    본 연구는 먼저 사가들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는 NUWM의 성격―개혁적이었는지 혁명적이었는지―을 밝히는 데 일조함으로써 이 주제에 관한 기존의 연구사에 보탬을 주리라 믿는다. 또한 본 연구는 실업보험 체제의 형성과 운영을 아래로부터 실업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살펴봄으로써, 전간기 영국의 실업 문제에 관한 연구가 그동안 주로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져 온 경향을 어느 정도 보정하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이런 노력을 통해 본 연구는 실업과 실업 구제를 둘러싼 전간기 영국 사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일조하리라 생각한다.

    2. 한국 영국사학계와 서양사학계에 대한 기여
    한편 본 연구는 빈곤과 실업 문제에 대한 한국 영국사학계의 관심을 확대시키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영국사학계는 그동안 주로 구빈법에 관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실업보험 체제 자체에 관한 연구 성과는 오히려 경제학이나 사회복지학 같은 타 전공분야에서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본 연구자의 학위논문과 본 연구자가 이미 발표한 실업보험 체제에 관한 몇 편의 논문과 더불어, 한국 영국사학계의 연구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또한 한국 서양사학계의 관심도 자극하여 실업 문제와 사회복지 제도 전반에 관한 연구가 왕성히 일어나길 기대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 어떤 실업보험 체제와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해야 할지를 연구하고 있는 여타 학문 분야에 하나의 방향성을 제공해주리라 기대한다.

    3. 한국 사회와 한국학계에 대한 기여
    현재 한국 사회는 낮지 않은 실업률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높은 실업률에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과 전체 노동인구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또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이 실시되고 있긴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육아 문제 그리고 급속히 노령화 사회로 진입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는 노년층 문제에 대한 더욱 정교한 복지 대책 마련이 요청되고 있다. 이렇게 사회 정의와 분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한편, 한국 사회는 동시에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고통 받고 있다.
    이렇게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한국 사회에 본 연구를 포함한 본 연구자의 전간기 영국 실업보험 체제에 관한 연구들은 한국 사회에 실업자들의 구제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공할 것이며, 또한 한국의 실업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생존권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선례를 제공하리라 믿는다.

    4. 교육에의 활용
    본 연구자는 서양 근대사와 관련된 여러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꼭 영국을 비롯한 서양의 실업보험 체제에 대한 강의를 포함시키고 있다. 실업보험 체제의 배후에 숨어 있는 노동시장과 가정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통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이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기 위해 이 체제 내에 배치되어 있는 정교한 장치들에 관한 강의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서 다른 주제에 대한 강의보다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아마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 청년 실업률, 즉 학생들이 직면해 있는 심각한 취업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자는 이 주제에 대한 강의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 어떤 실업보험 체제와 사회복지 제도를 도입해야 할지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 학생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작으나마 기여를 하게 되리라고 희망한다. 앞으로 본 연구자는 본 연구의 결과도 강의에 포함시킴으로써 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빈곤하고 소외된 하층의 생존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리라 기대한다.
  • Index terms
  • NUWM(National Unemployed Workers’ Movement, 전국 실업자 운동), ‘일자리 혹은 생계비(work or maintenance),’ 보편적/사회적 시민권, ‘생계비테스트의 위기’와 ‘UAB의 위기,’ 공산당, 노동당과 노동조합회의, 이중 실업보험 체제, PAC 체제와 UAB 체제, 실수당과 공적 실업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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