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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6679&local_id=10011519
新羅 中代 五禮와 王權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新羅 中代 五禮와 王權 | 2004 Year | 채미하(인하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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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09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4월 0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본 연구는 신라 중대 오례와 왕권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신문왕대 수용된〈길흉요례〉는 국가제도 전반인 길례에서 흉례에 이르는 오례의 요긴한 내용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로 볼 때 신문왕대 오례는 수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진덕왕대 김춘추가 당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서 받은 <<진서>>의 예지가 오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그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라에 수용된 오례는 당 <개원례>의 내용으로 볼 때 왕권의례였다고 보았다. 신라 중대 오례 내용을 보면 길례의 경우는 신문왕대 오묘제의 시정에서, 빈례의 경우는 진덕왕 5년 영객전이 영객부로 승격하고 경덕왕대 사빈부로 개칭된 데서, 군례의 내용은 문무왕 17년 ‘강무전’에서 ‘관사’했다는 기사에서, 가례의 내용은 신문왕 3년 왕의 혼인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흉례의 내용은 신문왕이 문무왕의 구전에서 즉위하였다든가, 오묘제 시정 이후 예제상의 관행에 따라 오묘의 신위가 개편되었다는 데서 그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왕권의례는 각각 담당한 관부와 관서가 있었는데, 이 중 국학은 왕권의례에 대한 이론을 담당하였을 것이고, 전사서를 비롯한 예부의 부속관서와 영객부, 그리고 내성의 의례관부들은 왕권 의례 때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관부와 관서들은 신라 중대 오례로 대표되는 왕권의례를 보다 확고히 뒷받침해주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 English
  • We studied in this research on Orye and the royal authority in the middle of Shilla. <Gilhyungyorye> accepted in king Shin-mun's period included all the contents from Gil-rye to Hyung-rye which has been the general national system. It told us Orye had been accepted in the king Shin-mun's period. This related closely that Kim Chun-chu at queen Jinduk's period had taken systems of Tang dynasty positively. Especially It was notable that Orye consisted of Jinseo which had been taken from king Taejong of Tang dynasty by Kim chun-chu. Now we were known this Orye's details had been accepted in the middle age of Shilla and it was the ceremony of royal authority given from <Gyewon-rye>. Also this ceremony of royal authority was very closely related to that of middle age of Shilla which had been charged by the official departments such as Kukhak.


    KEY WORD:the middle age of Shilla, Orye, Kilhyungyorye, Gyewon-rye, the royal authority, the ceremony of royal authorit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신라 중대 오례와 왕권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신문왕대 수용된〈길흉요례〉는 국가제도 전반인 길례에서 흉례에 이르는 오례의 요긴한 내용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로 볼 때 신문왕대 오례는 수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진덕왕대 김춘추가 당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서 받은 <<진서>>의 예지가 오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그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라에 수용된 오례는 당 <개원례>의 내용으로 볼 때 왕권의례였다고 보았다. 신라 중대 오례 내용을 보면 길례의 경우는 신문왕대 오묘제의 시정에서, 빈례의 경우는 진덕왕 5년 영객전이 영객부로 승격하고 경덕왕대 사빈부로 개칭된 데서, 군례의 내용은 문무왕 17년 ‘강무전’에서 ‘관사’했다는 기사에서, 가례의 내용은 신문왕 3년 왕의 혼인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흉례의 내용은 신문왕이 문무왕의 구전에서 즉위하였다든가, 오묘제 시정 이후 예제상의 관행에 따라 오묘의 신위가 개편되었다는 데서 그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왕권의례는 각각 담당한 관부와 관서가 있었는데, 이 중 국학은 왕권의례에 대한 이론을 담당하였을 것이고, 전사서를 비롯한 예부의 부속관서와 영객부, 그리고 내성의 의례관부들은 왕권 의례 때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관부와 관서들은 신라 중대 오례로 대표되는 왕권의례를 보다 확고히 뒷받침해주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유교사상에서 禮는 현실의 질서를 규범적․구조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그 질서의 내용구조로 구현되면서 바로 ‘五禮’의 형식을 갖고 역사에 나타나고 있다. 중국사에서 가장 먼저 ‘오례’의 구조를 역사무대에 선보인 시기는 진왕조였으며, 오례를 왕권의 논리이며 국가 정치질서의 축으로 자리잡아 정비한 것은 당왕조였다. 당대에 기초가 마련된 오례체계는 이후 중국 역대왕조는 물론이고 한국사에서 고려시기 이후 왕권이 국가질서의 축임을 설명하고 왕권의 절대우위를 강조하는 명분논리로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오례는 5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정치분야를 조정하여 왕권을 최고의 위상으로 분류하고 왕에게 최고의 권위를 향유토록 한 의례체계이다. 吉禮는 諸神(천신․지신․인신)에 대한 이들 신위에게 의례(祀․祭․享․釋奠)를 행례할 때 국가를 대표하여 왕만이 행례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예컨대 祀天儀는 大祀로써 천명을 받은 황제만이 행할 수 있는 의례이며 국가의 안녕을 기구하는 의례인 것이다. 嘉禮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는 광범한 사회계층을 포함하는 만민이 상규토록 하는 의례인 것인데, 왕이 주인의 役을 담당하는 것이다. 대체로 통과의례적 성격의 내용이다. 특히 왕실의 의례에 격조와 위엄을 특별하게 함으로써 역시 왕실과 왕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賓禮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친화를 유지하도록 하려는 의례이다. 내용은 대외․대내로 분류된다. 전자는 국가간의 외교적 의례에서 왕이 국가를 대표하여 국가간의 위상을 의례 내에서 구현하고 후자에서는 지방관과 만남에서 왕권의 위상이 至高임을 밝히어 왕권이 구체적으로 대외․대내의 정치에서 정치적 구심임을 보여주는 의례인 것이다. 軍禮는 국가를 유지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 군례의 위엄으로써 가능한 것인데, 바로 그 군례 안에서 절대적인 책임과 권위를 왕만이 갖는 것이다. 凶禮는 국가의 災禍․疾病․死亡 등의 슬픔을 위로하여 극복하려는 의례이다. 모든 의례에서 주인은 왕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왕의 죽음으로 인한 대권의 계승에서 오는 혼란을 국가적인 재난으로 보면서 이를 흉례의식에서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왕권의 위상이 최고임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오례의 예론은 왕권과 왕실의 정치적 권위를 명분화하려는 광범한 유교문화이념의 내용으로부터 기초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왕권을 예워싼 사회계층의 정치질서 이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연구에 의하면 오례의 예론에 의한 왕권의 수립과 운영을 가능하게 한 시기는 고려시기부터였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오례체계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고, 그 절정은 조선시대로 대체로 보고 있다. 그런데 본 연구는 신라 중대 오례가 수용되었고, 王子들이 이를 통해 그들의 정치적 권위를 내세우고 정치권력의 명분을 제공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로 볼 때 본 연구는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오례를 이해하고 한국사에서 오례가 변화,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밝히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 Index terms
  • 신라 중대, 오례, 길흉요례, 개원례, 왕권, 왕권의례
  • List of digital content of this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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