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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6700&local_id=10011364
국립묘지의 전사자와 제주 4.3 희생자에 관한 위령의례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국립묘지의 전사자와 제주 4.3 희생자에 관한 위령의례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지영임(제주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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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41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4월 3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군인과 경찰은 매년 현충일에 ‘영령’으로 모셔지며 반공전선의 고귀한 희생으로 국가의 위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치러지던 공식위령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에 의해 국가가 부여한 정당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노출하게 된다. 제주4·3의 경우, 4·3특별법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하지 않고 4·3희생자로 선정하여 위령제의 제단에 이름을 올리고 모든 4·3희생자에 대한 위령제가 거행되자 ‘폭도’에게 희생된 군인과 경찰 및 민간인들에 의한 반발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군·경 중심의 위령제에서 4·3희생자 위령제로 변해가는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고, 두 개의 대립되는 위령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존하는지 비교·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주4·3 당시 박진경 연대장의 피살사건은 육군장 1호로 기록된 고급장교의 첫 희생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언론에서도 재판과정이 비중있게 다루어졌으며, 1969년에 국립묘지에 안장이 된다. 박진경의 장례를 시작으로 군·경 전사자와 우익단체 희생자들의 장례에 있어서 국가는 대대적인 의례를 거행하게 되며, 또한 제주도 각 마을에는 충혼비가 세워지고 한국전쟁 후에 조성된 충혼묘지에는 4·3으로 희생된 경찰이 안장된다. 반면, 1987년 이전까지 금기시되어왔던 4·3민간인 희생자들의 위령제는 민주화운동의 진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는 1989년에 처음으로 군·경유가족들과 함께 공식적인 위령제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군·경 및 우익단체원 유족들은 ‘폭도’들과 같은 제상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이유로 현충일이나 매년 충혼각에서 열리는 ‘전몰군경합동대제’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제주4·3이 민간의 각종 진상규명 활동으로 ‘공산폭동’이 아니라 ‘민중항쟁’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제주4·3희생자위령제’는 제주4·3을 공산주의 반란 혹은 폭동으로 보는 4·3희생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이후 단합된 움직임을 보였던 제주4·3희생자 관련 희생자 위령제가 국립묘지, 4·3평화공원, 충혼묘지, 충혼각 등 여러 위령공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표출시키면서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English
  • The KIAs(Killed in Action) who were buried in Korea national memorial cemetery are worshiped as 'the spirit of the war dead' in memorial day every year. Their death are regarded as the noble sacrifice and are taken memorial service by the nation.
    But, since the June uprising in 1987, the formal memorial service has been exposed troubles because the cause which is given by the nation is shaken by various forces of civic society.
    In case of Jeju 4.3 memorial service, according to the 4.3 special law, the government list the dead names on the altar and hold the 4.3 memorial service for all the dead without identifying perpetrators and victims.
    For this reason, the soldiers, policemen and some civilians whose their families or themselves were injured or killed by so-called 'rioters' have the ongoing feeling of antipathy to the memorial service.
    Therefore, this thesis tries to review the shift of change from military-police centered memorial service to 4.3 victims' memorial service. This thesis also tries to compare and analyze the two services which are dissimilar in character.
    The assassination of Col. Park, Jin-Kyung during the Jeju 4.3 uprising had came into the spotlight because he is the first victim in senior officers in South Korea military history. And his funeral ceremony is recorded as the first ceremony of the Korean Army funeral ceremonies and the trial process of his assassins were covered by the media. His body were buried in the national memorial cemetery in 1969. Since the funeral service of Col. Park, Jin-Kyung, the nation hold the memorial services extensively for the KIAs of military, police and right wing groups. In Jejudo, monuments to the loyal dead have been erected in every village and the policemen who were dead during the Jeju 4.3 uprising were buried in the loyal dead cemetery which were made after the Korean War.
    On the other hand, the formal 4.3 memorial service for the civilians which were forbidden until the June uprising in 1987,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were held for the first time in 1989 with military and police victims' families.
    But, the bereaved family of military, police and right wing groups attach more importance to 'the joint great memorial ceremony for the dead soldiers and policemen' which is held in the memorial day or in the house for the loyal dead every year than the formal 4.3 memorial service because they think they can't hold the ritual ceremony with the rioters in the same table.
    As the nature of Jeju 4.3 uprising is not the communist riot but people's uprising by the various fact-finding activities, 'Jeju 4.3 victims' memorial service' bring about the result of the exclusion the 4.3 victims who regard Jeju 4.3 uprising as rebellion by communists or riot.
    Jeju 4.3 victims' memorial service which had seemed to bring together coexist in the various memorial service sites such as national memorial cemetery, Jeju 4.3 Peace Park, The Loyal Dead Cemetery, The House for the loyal dead, etc with exposing the troubles continuousl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군인과 경찰은 매년 현충일에 ‘영령’으로 모셔지며 반공전선의 고귀한 희생으로 국가의 위령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치러지던 공식위령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에 의해 국가가 부여한 정당성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갈등을 노출하게 된다. 제주4·3의 경우, 4·3특별법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하지 않고 4·3희생자로 선정하여 위령제의 제단에 이름을 올리고 모든 4·3희생자에 대한 위령제가 거행되자 ‘폭도’에게 희생된 군인과 경찰 및 민간인들에 의한 반발이 끊임없이 존재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군·경 중심의 위령제에서 4·3희생자 위령제로 변해가는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고, 두 개의 대립되는 위령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공존하는지 비교·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주4·3 당시 박진경 연대장의 피살사건은 육군장 1호로 기록된 고급장교의 첫 희생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언론에서도 재판과정이 비중있게 다루어졌으며, 1969년에 국립묘지에 안장이 된다. 박진경의 장례를 시작으로 군·경 전사자와 우익단체 희생자들의 장례에 있어서 국가는 대대적인 의례를 거행하게 되며, 또한 제주도 각 마을에는 충혼비가 세워지고 한국전쟁 후에 조성된 충혼묘지에는 4·3으로 희생된 경찰이 안장된다. 반면, 1987년 이전까지 금기시되어왔던 4·3민간인 희생자들의 위령제는 민주화운동의 진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는 1989년에 처음으로 군·경유가족들과 함께 공식적인 위령제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군·경 및 우익단체원 유족들은 ‘폭도’들과 같은 제상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이유로 현충일이나 매년 충혼각에서 열리는 ‘전몰군경합동대제’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제주4·3이 민간의 각종 진상규명 활동으로 ‘공산폭동’이 아니라 ‘민중항쟁’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제주4·3희생자위령제’는 제주4·3을 공산주의 반란 혹은 폭동으로 보는 4·3희생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이후 단합된 움직임을 보였던 제주4·3희생자 관련 희생자 위령제가 국립묘지, 4·3평화공원, 충혼묘지, 충혼각 등 여러 위령공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표출시키면서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는 지금까지 언급되어 온 적이 없었던 무장대에 희생된 군인전사자 180명, 경찰전사자 140명, 민간인 국가유공자 639명이 어떠한 방식으로 위령되어왔는지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1948년 이후부터 군·경의 위령은 국가에 의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왔으며, 1950년대는 한국전쟁전사자 위령 안에 포함되어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위령제가 거행되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제주에서도 충혼묘지, 충혼각에서 군·경을 위한 위령제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며, 1989년부터 군·경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 희생자위령제가 함께 치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4·3이 ‘민중항쟁’으로 자리잡아 감에 따라 군인과 경찰 유족들은 제주4·3희생자 위령제 참가를 거부하게 된다. 군·경, 우익단체 유가족들에게 있어 중요한 위령제는 현충일의 충혼묘지 참배, 충혼각에서의 전몰군경합동위령대제이며, 이러한 행사는 ‘대한민국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위령하기 위한 그들만의 유일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4·3진상규명과 4·3성격을 재규정하려는 움직임이 강했던 4·3연구분야에서 강경진압의 대상이었던 군·경, 우익단체 유족들을 연구대상으로 함으로써 제주4·3의 전체상을 파악하는데 일조 할 수 있다. 나아가 4·3평화공원의 사료관 건립과 위령공간구성에 있어서 군·경 유족들의 시점을 도입함으로써 4·3을 한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재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과거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기념공원 조성이 부정되었으나 새로운 정권이 수립되고 그들에 의해 지금까지 침묵을 강요당해 왔던 사건들이 재평가됨에 따라 전국각지에서 위령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국립묘지와 4·3을 연계하여 고찰함으로써 한국전쟁에서 국군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위령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제시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 연구가 그러한 문제해결에 일조하리라 확신한다.
  • Index terms
  • 국립묘지, 제주4.3, 제주4.3희생자위령의례, 충혼비, 충혼묘지, 4.3평화공원, 국가유공자, 민주화운동, 전몰군경합동대제,위령공간 National Memorial Cemetery, Jeju 4.3 uprising, Jeju 4.3 victims' memorial service, Monument to the loyal dead, The loyal dead cemetery, Jeju 4.3 Peace Park, men of merit, democratization movement, the joint great memorial ceremony for the dead soldiers and policemen, memorial servic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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