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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한중국경인식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18-19세기 서양고지도에 나타난 한중국경인식 | 2004 년 | 오일환(경희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2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24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18-19세기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이 어떻게 나타나고 변화하였는가를 살펴보고자한 기초연구이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고지도에 등장하기 시작한 16세기말부터 랑그렌이나 테이세이라 등의 지도에 섬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중국에 머물던 선교사 마테오리치 이후 마르티니를 비롯한 서양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점차 여러 모습의 반도형태로 그리면서 한중간의 지리적 경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북지역의 요녕과 길림지역에서 발원하는 형태와 커다란 산맥이 묘사되면서 경계의 표현이 섬에서 반도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한중간 경계인식은 서양선교사들이 중국 청나라 강희황제의 명으로 1708년부터 중국 전역을 측량하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표면화되었다. 특히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에서 나타난 경계인식은 중국 청나라가 장성이나 유조변장 중심의 지리적 경계의 개념이었지만 우리 민족은 지리적 경계가 아닌 민족적 문화경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민족적 문화경계인식은 중국에서 1718년에 완성된 ‘황여전람도’를 바탕으로 서양에서 1737년 제작된 당빌의 지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위쪽에 한중간의 경계선이 나타나고 중국식 발음으로 조선의 지명을 표기하고 있다. 이에 18세기 중반부터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의 대부분은 한중간의 지리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서양과 일본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하자 한중간의 경계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고착되어 갔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한중간의 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설정된 지도를 바탕으로 민족적 문화경계가 아닌 지리적 경계인식이 반영된 지도를 대량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 영문
  • The understanding of the Korean-Chinese border in European ancient maps in 18th-19th centur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18-19세기 서양에서 제작된 고지도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선이 어떻게 나타나고 변화하였는가를 살펴보고자한 기초연구이다.
    우리나라는 서양의 고지도에 등장하기 시작한 16세기말부터 랑그렌이나 테이세이라 등의 지도에 섬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중국에 머물던 선교사 마테오리치 이후 마르티니를 비롯한 서양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점차 여러 모습의 반도형태로 그리면서 한중간의 지리적 경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북지역의 요녕과 길림지역에서 발원하는 형태와 커다란 산맥이 묘사되면서 경계의 표현이 섬에서 반도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한중간 경계인식은 서양선교사들이 중국 청나라 강희황제의 명으로 1708년부터 중국 전역을 측량하기 시작하면서 충돌이 표면화되었다. 특히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에서 나타난 경계인식은 중국 청나라가 장성이나 유조변장 중심의 지리적 경계의 개념이었지만 우리 민족은 지리적 경계가 아닌 민족적 문화경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민족적 문화경계인식은 중국에서 1718년에 완성된 ‘황여전람도’를 바탕으로 서양에서 1737년 제작된 당빌의 지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위쪽에 한중간의 경계선이 나타나고 중국식 발음으로 조선의 지명을 표기하고 있다. 이에 18세기 중반부터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의 대부분은 한중간의 지리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서양과 일본의 활발한 교류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하자 한중간의 경계선은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고착되어 갔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한중간의 경계를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설정된 지도를 바탕으로 민족적 문화경계가 아닌 지리적 경계인식이 반영된 지도를 대량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본 연구결과는 연구계획서( 2.연구내용 범위 및 방법-5)에 의거하여 경희대학교 혜정문화연구소/박물관에서 개최한 제5회 특별전시회 ‘영토의 경계 삶의 흔적’이라는 특별전에 반영되었다. 특별전에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코리아/대륙의 경계/백두산과 정계비/간도와 간도협약/민족의 무대/삶의 터전/민족교육/독립의 꿈/민족 전통의 계승/천하의 중심/삶의 세계/광개토대왕비/대륙을 연결하는 압록강/서양인이 본 코리아 등의 소주제로 나누어 서양고지도, 견문록, 사진자료 등 100여점이 2005.10.20부터 2개월에 걸쳐 전시하였다.
    2. 연구결과는 초중고 및 사회교과 관련의 교육적 시각자료 뿐 아니라 평생교육 학습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화 및 Future korea사업과 연계하여야 연구결과의 교육적 효과가 증가할 것이다.
  • 색인어
  • 18-19세기, 서양고지도, 한국과 중국, 국경(경계)인식, 백두산정계비, 고구려, 간도, 동북공정,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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