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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복식을 통해 본 고구려적 요소 고찰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발해 복식을 통해 본 고구려적 요소 고찰 | 2004 년 | 전현실(가톨릭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C00001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2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구려와 발해는 문화적 동질성에 따라 단일문화체계가 발해 문화의 대부분을 형성시켰고, 이는 발해가 동일 시기의 주변 국가와는 다른 문화적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7세기말-10세기초반까지 약 300년간 존속했었던 발해의 문화는 현재까지 문왕대부터 이루어진 唐 문화의 적극적인 유입에 의한 내용이 강조되어 문화 전반에 걸친 당 문화 영향성에 관한 내용이 주로 언급되어 왔었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당과의 교류가 있던 시기에도 발해 문화 기저에는 고구려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복식 문화에도 적용이 되어 발해 복식의 官服, 쓰개, 장신구는 고구려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되었다. 발해의 관복은 문왕대를 전후로 하여 당 체제로 정리되기 이전 우리나라 고유복식 형태를 바탕으로 하는 이부식 구조가 계승되어 발해 초기의 대외관계에서 公式服으로 착용되었다. 또한 삼국시대의 이러한 고유 의복형태는 발해인들의 활동적인 생활양식에 의해 일반인들의 복식으로도 이용되었다. 쓰개는 抹額과 변형 鳥羽冠이 나타나고 있는데, 말액은 巾을, 조우관은 변상관모에 金·銀의 인공식 조우를 사용함으로써 고구려의 기본 형태에서 발전된 형의 관모를 착용하였다. 고구려 시대의 장신구는 삼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垂飾部가 간결하고 소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발해의 장신구도 이와 유사한 디자인을 계승하여 다른 품목에 비해 발전시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를 통해 발해 복식 문화의 독자성은 크게 고구려 복식의 계승과 고구려와 말갈 복식의 복합적 요소로 분류할 수 있다. 고구려 복식을 계승한 측면이 발해 고유의 문화가 발전되는 원동력이었다고 한다면, 고구려와 말갈 복식의 복합적 요소가 발해 문화로 이입된 것은 발해 문화가 고구려와는 다른 특징을 보일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 영문
  • The unique cultural system of Koguryo and Parhae through the cultural similarity is constituted the most of Parhae culture. This is the fact of the cultural peculiarity that is distinguished from the surrounding conturies.
    Up to now the Parhae culture has been emphasized the influence of Tang from King Mun but in the base of the Parhae culture is the Koguryo culture because the Parhae form the foundation of a culture by the Koguryo.
    This fact is applied to the Parhae costume culture, the official uniform, headgear and accessaries.
    The official uniform of the early years of the Parhae was based on the costume of the three Kingdoms, that is, Yu, Go, after that, which the 3th King Mun. Also this coustume is dressed by the Parhae people with the active life style. The headgear, Ma-rek, transformed Jo-u-gwan have been succeeded that of Koguryo, Geon and the conical hat with the natural feather ornament. The accessaries have been succeeded that of Koguryo of the simple design than Baekje and Silra.
    Therefore, the peculiarity of the Parhae culture is classified into the two factor, the succession of the Koguryo costume culture and the composition of the Koguryo and Malgal costume. And the composition factor is the unique character of the Parhae costume culture distinguished the Koguryo costume cultur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최근 중국에서는 東北工程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역사 전체에 대해 연구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중국은 역사적 사실을 자국 중심 시각으로 그들만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고, 그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한 예로, 환인·집안 박물관에서는 학문적으로 왜곡된 내용을 고구려 유적이 있는 현장에서 사실로 기정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하였고, 학문적인 단계를 벗어나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사실을 국내외 관람객에게 심어주는 교육장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큰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일련의 연구 사업은 중국 자체의 역사를 과장하고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高句麗·渤海를 포함하는 우리나라의 古代史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편 고구려 문화의 특성은 복식 문화에도 영향을 미쳐 渤海의 服飾은 발해 건국 이전의 高句麗 服飾文化에 대한 계승을 통해 그 근본을 이루었고, 이러한 문화적 기저 속에서 발해 복식문화의 독자성 또한 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발해의 복식문화는 同時代의 唐을 중심으로 古代 日本의 奈良時代 복식문화와 공유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 바탕에는 中國의 服飾文化와는 다른 우리나라의 북방계 고유복식 형태, 즉 上下二部式의 襦와 袴의 구성이 발해인들의 기본적인 복식문화에 남아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문화이론을 접목시켜 크게 의복의 품목구성 및 관복, 쓰개, 장신구 세 부분으로 분류하여 고구려의 복식문화가 발해의 복식문화에 미친 영향과 발해복식문화로의 이입 및 계승과정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발해복식의 독자성 개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또한 고구려 문화를 근본적으로 계승한 발해라는 특정 문화 집단을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와 발해가 공유하는 복식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는 동시에 발해가 고구려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고구려 멸망 후 독자적으로 발달시킨 발해 복식의 고유한 문화 특징도 고찰해볼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고구려와 발해는 문화적 동질성에 따라 단일문화체계가 발해 문화의 대부분을 형성시켰고, 이는 발해가 동일 시기의 주변 국가와는 다른 문화적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7세기말-10세기초반까지 약 300년간 존속했었던 渤海의 복식 문화는 문왕대부터 이루어진 唐 문화의 적극적인 유입에 의한 내용이 강조되어 문화 전반에 걸친 당 문화 영향성에 관한 내용이 주로 언급되어 왔었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당과의 교류가 있던 시기에도 발해 문화 기저에는 고구려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복식 문화에도 적용이 되어 발해 복식의 官服, 쓰개, 장신구는 고구려 요소를 바탕으로 발전되었다. 발해의 관복은 문왕대를 전후로 하여 당 체제로 정리되기 이전 우리나라 고유복식 형태, 즉 유·고를 바탕으로 하는 上衣下裳의 이부식 구조가 계승되어 발해 초기의 대외관계에서 公式服으로 착용되었다. 또한 삼국시대의 이러한 고유 의복형태는 발해인들의 활동적인 생활양식에 의해 일반인들의 복식으로도 이용되었다. 쓰개는 抹額과 변형 鳥羽冠이 나타나고 있는데, 말액은 巾을, 조우관은 변상관모에 金·銀의 인공식 조우를 사용함으로써 고구려의 기본 형태에서 발전된 형의 관모를 착용하였다. 고구려 시대의 장신구는 삼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垂飾部가 간결하고 소박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발해의 장신구도 이와 유사한 디자인을 계승하여 다른 품목에 비해 발전시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를 통해 발해 남자 복식 문화의 독자성은 크게 고구려 복식의 계승과 고구려와 말갈 복식의 복합적 요소로 분류할 수 있다. 고구려 복식을 계승한 측면이 발해 고유의 문화가 발전되는 원동력이었다고 한다면, 고구려와 말갈 복식의 복합적 요소가 발해 문화로 이입된 것은 발해 문화가 고구려와는 다른 특징을 보일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발해가 三國時代 이후 우리나라의 古代 服飾文化를 統一新羅와 함께 발전시켰으며, 이후 高麗, 朝鮮이라는 역사 흐름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색인어
  • 고구려 문화 계승, 발해 관복(官服), 쓰개, 장신구, 발해 문화 독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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