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일제하 『조선일보』(1920-1940)에 수록된 성병과 관련된 담론들을 분석하여, 성(性)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일제하 기층여성들의 현실을 고찰하고, 그것에 반영된 당대 여성인식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성병은 일제시대 내내 두 ...
본 연구는 일제하 『조선일보』(1920-1940)에 수록된 성병과 관련된 담론들을 분석하여, 성(性)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일제하 기층여성들의 현실을 고찰하고, 그것에 반영된 당대 여성인식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성병은 일제시대 내내 두 번째로 환자수가 많은 민족적 전염병이었다. 일제하 성병의 만연은 세균이라는 외부의 병원(病原)이 조선의 가장 은밀한 부위, 즉 여성과 가정과 일상생활 속에까지 침범해 들어옴에 대한 일종의 은유라 할 수 있다. 성병은 공포에 가득찬 질병이자, 오염의 메타포가 강해, 감염자에게 고통 이전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일제 강점기하 매독은 대부분 자신이 매독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보균자를 통해, 뜻밖의 사람에게 ‘전달’되거나 ‘옮겨지는’ 잔인한 선물이었다. 가정부인도 예기치 않게 성병에 걸리면, ‘방탕’, ‘침입’, ‘오염’, ‘불결’의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감염자에게 치료의 소극성을 낳는다. 성병담론은 감염경로의 차단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서구적 의약체계의 산물인 치료제 구매를 종용하는 논리 일색이어서, ‘몹쓸 병’을 안겨 주고 ‘비싼 약갑’마저 요구하는 식이다. 이는 제국주의적 국가권력과 가부장제적 사회인식, 근대적 의학체제의 횡포가 개인의 몸을 강탈하고, 거기에 근대적 규율체제를 각인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성병은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남성의 욕망과 여성들의 억압적 현실이 응집된 부위의 문제 상황이므로, 그것을 둘러싼 담론에는 성별 이해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데, 이들에서 여성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하다. 일제시대 상위담론에서 여성선각자인 신여성들이 아무리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민족주의적 지성인들이 여성교육론을 강조해도, 성병을 둘러싼 생활담론에 있어서 피해자인 기층여성에게 가해자인 양, 수치심과 죄의식, 책임론과 치료의무 그 모두를 떠넘기는 논리가 횡행한다.
일제하 『조선일보』에 수록된 성병관련 담론은 독자층을 여성으로 상정한 것이 많고, 내용은 성병의 위험성, 특히 태아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여성들에게 성병의 확산을 막고 치료에 힘쓸 것을 강조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성병을 둘러싼 일간지의 논의는 총독부나 경찰국의 성병퇴치를 위한 활동보고성 기사 이외에는 성병치료제 소개와 성병을 방치했을 때의 위험을 알리는 데 치중해 있다. 성병으로 인한 가정파탄이나 자살, 방화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치닫는 사건에 대한 보도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일간지의 성병담론은 식민지인의 심신에 성병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고 그 터전 위에 근대적 의학체제의 힘과 귄위를 각인시키며, 아서구인 일제국의 식민지 의료관리 체계와 문명의 우월성을 각인시킨다. 성병을 ‘문명병’이며, ‘화류병’이자 ‘유전병’, ‘불치병’이라는 인식의 유포는 성병감염원에 대한 통제나 단속, 죄의식 부여는 뒷전이고, 죄없이 질병을 떠안게 된 조선의 기층여성들에게 풍기문란에 따른 사회적 질타와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을 드리운 민족의 죄인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 결국 자기내부적 검열을 통과할 수 없게 하여 죽음으로 내몬다. 성병담론은 조선의 기층여성 내부를 기생집단과 가정부인이라는 두 개 계층으로 성층화시켜 서로의 이질성을 첨예하게 대립시키지만, 이들은 모두 가부장제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전방위적 시선에 의해 불결과 전근대, 격리와 죄인의 이미지 속에 함께 묶여 끊임없는 계몽과 통제, 관리의 대상으로 타자화된다. 때문에 식민지의 성병담론은 기층여성을 탈성화시키고 도구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지극히 성별화된 권력담론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