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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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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선' 일본인 지식사회 연구--1930년대 인문학계를 중심으로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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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
A00203 |
선정년도 |
2004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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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진행현황 |
종료 |
제출상태 |
재단승인 |
등록완료일 |
2006년 06월 22일 |
연차구분 |
결과보고 |
결과보고년도 |
2006년 |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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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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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는 일본제국이 조선에 대한 자기 확대의 일환으로 행해진 ‘민도(民度)’조사 차원의 식민사업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민도조사란 조선의 사회, 경제, 교육, 역사 등 모든 방면의 근대적 계수치인 지표의 제작을 위한 각종 조사 사 ...
본고에서는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는 일본제국이 조선에 대한 자기 확대의 일환으로 행해진 ‘민도(民度)’조사 차원의 식민사업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민도조사란 조선의 사회, 경제, 교육, 역사 등 모든 방면의 근대적 계수치인 지표의 제작을 위한 각종 조사 사업과 민족성의 개조를 위한 학무정책이 중심이 된 학적(學的) 실천이었다. 총독부 시정(施政) 25년을 즈음해 성행한 ‘신조선’ 담론이 말해주듯,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 총독부는 조선에 대한 ‘문명화의 사명’이 다시금 되돌아볼만한 큰 성과를 이뤘다고 자임했다. 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구관제도조사(朝鮮舊慣制度調査)(1938)도 그 중 한 예인데, 그런 담론 생산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바로 재조일본인 지식사회였다. 또한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즉 자기정의나 아이덴티티의 모색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그런 자기정의의 과정은 조선과 자기, 혹은 ‘내지’와 자기 사이의 거리감과 친밀감을 교묘하게 혼재시켜 가며 수사하는 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은 재조일본인으로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방법을 통해 진행되었다. 1930년대는 그러한 방법적인 특징을 확연하게 보여준 시기이자, 그들이 자기정의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기적 성격을 지닌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고찰하는 데는 당시 사회적 담론 속의 개별 민족(언어)의 ‘모놀로그’만이 아닌 민족(언어) 간의 ‘다이얼로그’를 찾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즉, 그 다이얼로그 안에 혼재된 ‘동화’와 ‘배제’의 논리를 찾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더 나아가 당시 ‘내선인’ 지식사회의 존재나 관계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내선인’은 서로 ‘그들’(‘당신네’)을 통해 ‘우리’를 동일화하거나 ‘우리’를 규정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을 동일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1930년대 후반부터 재조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 이원적인 사고가 주요 비판의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선(땅)과의 일체화된 자기상을 제작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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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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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intellectual society inside Joseon was formed while Japanese colonizers were conducting a research on the cultural standard of Korean people as a colonization project which Japanese empire had planned as one of the efforts for occupying Joseo ...
Japanese intellectual society inside Joseon was formed while Japanese colonizers were conducting a research on the cultural standard of Korean people as a colonization project which Japanese empire had planned as one of the efforts for occupying Joseon. The research was performed academically, which centered on several kinds of surveys for measuring Josean's society as modern statistical indexes including areas such as economy, education, and history etc, as well as the enforcements of educational policies for the purpose of the transformation of Korean people's consciousness. In 1930s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boasted that so called 'the task of civilizing Joseon' had made considerable progress, as is also appeared in the discourses of 'Shin-Joseon(a new Joseon)' which were circulating in about 25th year of the Government-General. Joseon Gugwanjedo Josa issued by the Government-General was also one example of such discourses, which were produced by Japanese intellectual society inside Joseon. These discourses are characterized as efforts to solve such questions as how Japanese intellectuals inside Joseon self-define themselves, in the process of the exploration of self-definition or identification. This process of self-definition necessarily demanded unique rhetorics mixing sophisticatedly both distance and closeness between Joseon and a self as well as Japan and a self. In addition, in this process they tried to relativize their present and future from their past. The 1930s was a period when these methodological approaches were prevalently adopted while their self-definition were rising to a turning point.
To study the Japanese intellectual society inside Joseon during 1930s, It is essential to look through and examine closely the 'dialogues' between nations(languages) as well as the 'monologues' of a individual nation(language). Furthermore, we need to analyze the logics of 'assimilation' and 'exclusion' intermingled inside these dialogues especially to understand the aspects of the existence and relationships of such intellectual society. That's because Japanese inside Joseon identified 'we' through 'they(you)' or 'they' in the process of defining 'we'. Finally, we have to take into consideration the fact that these binary logics were also one of targets for major criticisms. However, this whole discourses including criticisms show us how they tried to fashion the selves which came to assimilate into Joseon land.

연구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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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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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일본인 지식사회는 일본제국이 조선에 대한 자기 확대의 일환으로 행해진 ‘민도(民度)’조사 차원의 식민사업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민도조사란 조선의 사회, 경제, 교육, 역사 등 모든 방면의 근대적 계수치인 지표의 제작을 위한 각종 조사 사업과 민족성 ...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는 일본제국이 조선에 대한 자기 확대의 일환으로 행해진 ‘민도(民度)’조사 차원의 식민사업을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의 민도조사란 조선의 사회, 경제, 교육, 역사 등 모든 방면의 근대적 계수치인 지표의 제작을 위한 각종 조사 사업과 민족성의 개조를 위한 학무정책이 중심이 된 학적(學的) 실천이었다. 총독부 시정(施政) 25년을 즈음해 성행한 ‘신조선’ 담론이 말해주듯,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 총독부는 조선에 대한 ‘문명화의 사명’이 다시금 되돌아볼만한 큰 성과를 이뤘다고 자임했다. 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구관제도조사(朝鮮舊慣制度調査)(1938)도 그 중 한 예인데, 그런 담론 생산에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집단은 바로 재조일본인 지식사회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즉 자기정의나 아이덴티티의 모색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그런 자기정의의 과정은 조선과 자기, 혹은 ‘내지’와 자기 사이의 거리감과 친밀감을 교묘하게 혼재시켜가며 수사하는 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은 재조일본인으로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방법을 통해 진행되었다. 1930년대는 그러한 방법적인 특징을 확연하게 보여준 시기이자, 그들이 자기정의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기적 성격을 지닌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고찰하는 데는 당시 사회적 담론 속의 개별 민족(언어)의 ‘모놀로그’만이 아닌 민족(언어) 간의 ‘다이얼로그’를 찾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즉, 그 다이얼로그 안에 혼재된 ‘동화’와 ‘배제’의 논리를 찾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더 나아가 당시 ‘내선인’ 지식사회의 존재나 관계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내선인’은 서로 ‘그들’(‘당신네’)을 통해 ‘우리’를 동일화하거나 ‘우리’를 규정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을 동일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1930년대 후반부터 재조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 이원적인 사고가 주요 비판의 대상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선(땅)과의 일체화된 자기상을 제작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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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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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연구에서는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규명하기 위해 앞선 시기와의 비교 및 관련양상의 검토를 통해 그 성격적 특징과 형성 원리, 그리고 사적 의미를 고찰했다.
2) 본 연구는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연구함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식민지 조선에 ...
1) 본 연구에서는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규명하기 위해 앞선 시기와의 비교 및 관련양상의 검토를 통해 그 성격적 특징과 형성 원리, 그리고 사적 의미를 고찰했다.
2) 본 연구는 1930년대 재조일본인 지식사회를 연구함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식민지 조선에는 내선(內鮮)지식인이 동서(同棲)하고 있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내선(內鮮)의 두 지식사회의 관련 양상도 살폈다.
3)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지식사회 연구는 사학, 문학, 철학, 사회학 등 통학문적 연구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과제이다. 그러면서도 본 연구는 식민지 시기에 관한 연구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과 일본 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트랜스내셔널한 인식 방법을 절대 필요로 한다. 향후 한국학과 일본학 사이의 의사소통방식을 구체적인 연구 성과를 통해 제시하였다. 두 지식사회 사이의 다이얼로그 안에 내재된 동화와 배제의 원리를 찾아내었다.
4) 연구 기간 내내 연구소의 연구원이나 대학원 과정의 연구자들과 세미나팀을 꾸려, 당시 국문과 일문 자료를 읽어가면서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구체적인 공동 연구들을 공유해 왔다. 향후 그 성과들은 학회를 통해 계속적으로 발표해갈 예정이다.
5) 이상의 연구성과 및 활용을 통해 본 연구는 향후 학계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식민지 조선의 지식사 및 지식사회사를 기술하는데 중요한 문제제기 및 활용방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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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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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일본인, 지식인, 지식사회, 인문학계, 1930년대, 문명화, 조사, 학술, 신조선, 내선인(內鮮人), 경성제국대학, 배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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