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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관계 연구: 카자흐스탄 사례를 중심으로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관계 연구: 카자흐스탄 사례를 중심으로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상철(Kazakh State National Univ.)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058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5월 27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18세기 제정러시아의 진출이전 단일민족 다부족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카작민족은 제정러시아의 진출과 함께 유입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타르, 까자끼, 독일인 등으로 단일민족사회가 다민족사회로 변화하게 되었다.
    제정러시아의 지속적인 농민 유입정책으로 인해 카작인들의 목초지는 농지로 계속 전환되었고, 이로 인해 유목민인 카작민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제정러시아 시기에 각 민족의 이주 배경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농업이민의 차원에서, 까자끼는 제정러시아 중앙아시아 진출의 첨병으로, 독일인은 고급관리 및 농업으로, 타타르는 제정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통치 수월화를 위한 통역의 역할, 위구르는 청나라의 위협으로부터의 탈출, 폴란드는 유형 이민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제정러시아 시기 카작스탄에서는 민족집단간의 접촉이나 교류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산업적으로도 토착민족인 카작민족은 유목에 종사하고, 이주민들인 소수민족들은 농업에 종사함에 따라 적극적인 민족관계가 발전될 계기는 만들어 지지 않았다.
    소련체제가 초기에 내세운 영토-민족 단위 구성공화국 수립,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의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이용으로 인해 토착민족 집단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 있었고, 근대화된 토착민족 카작인 지식인 집단의 활동도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제정러시아 말기와 소련설립 초기의 혼란, 경제적인 어려움, 국가설립 직후 내전으로 인해 카작 민족의 감소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제정러시아에 시작된 러시아계를 중심으로 하는 타민족 집단의 유입은 소련시기에도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계속되어, 토착민족 집단과 비토착 소수민족집단간의 인구차이는 감소하였다.
    1920년대말과 1930년대초의 대기근과 집산화에 대한 토착민족 집단의 저항, 그리고 러시아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소비에트화의 추진으로 대규모 토착엘리트 집단의 희생을 가져왔고, 집산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토착민족인 카작민족의 감소 추세는 가속화 되어,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카작인의 규모는 더 감소하여 더 이상 다수 집단이 아니었다.
    토착민족 집단인 카작민족이 카작스탄에서 토착민족임에도 소수민족 집단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추진된 소련당국의 처녀지 개발 및 공업화가 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이후 소련체제내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초기에 생겨난 인구학적인 카작민족의 공백이 비카작민족의 유입으로 인해 채워지게 됨에 따라 러시아 문화가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수민족집단들은 토착민족 문화보다는 러시아문화의 지배적인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
    소련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유입되었던 비토착민족집단들의 유출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유럽계 민족집단들의 유출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 가운데에는 독일인의 유출현상이 가장 심했다.
    독립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양상은 사회전반을 제정러시아와 소련체제를 통해 사회의 기반문화로 러시아문화, 러시아어가 토대를 굳건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작민족주의 세력 및 카작정부가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위적으로 이를 토착민족의 문화와 언어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카작스탄의 민족관계 및 소수민족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와 함께 개별 민족들의 문화 및 독자성 보존에 대한 활동도 보장되고 있어, 토착민족의 자민족중심주의적 경향은 그리 심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국가어로써의 카작어 위상의 강화가 두드러질 뿐이다.
    현재 카작스탄의 민족정책은 사회전반에 걸쳐 카작어 사용 확대를 통한 카작문화의 다수 집단 문화로써의 자리매김을 추진하는 정책, 이와는 반대되는 소수민족집단의 문화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소수민족집단들이 소련시기와는 달리 다수집단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 English
  • With the expansion of imperial russia the character of Kazakh nation was changed. Before contacting and annexing to russia Kazakh had kept multi-clan system which was based one nation, common culture and common language.
    In the imperial russian kazakhstani period, so many foreign ethnic groups immirgrated to the land of nomads. Most of them were russian, ukranian, tatar, Kazaki(caucasus), german, uighur, poland and other ethnic groups. In that period they were ethnically minority group, but the number of these ethnic groups increased.
    In the Soviet union relations and situation of ethnic relations in soviet kazakhstan showd difference, comparing with that of imperial russian times. In the early time of Soviet Union, the size of indogenous kazakh ethnic group was decreased by civil war in 1910ties, great hunger and economic depression. But they kept the state of majority in the Kazkhstan.
    After World War II Soviet Kazakhstan droved industrialization and virgin land movement for economic development, and central government of soviet union directly controlled these process. So the second mass immgraiton of slavic ethnic gruops began in the middle of 1950tis to 1960ties. After this immigration, ethnic indigenous kazakh became ethnic minority in his homeland. So in the soviet Kazakh society the dominace of russian culture and russian ethnic group continued to the end of Soviet Union. After breaking of Soviet union many european etnic groups started to emmigrated. With this emigration 70% of ethnic germans returned to their homeland. But in the slavic group, firstly they choosed to emigrate, and some of them return to their second homeland. So in the contemporary Kazakhstan, russianized-kazakh dominance in cultural sector will be sustained.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18세기 제정러시아의 진출이전 단일민족 다부족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카작민족은 제정러시아의 진출과 함께 유입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타르, 까자끼, 독일인 등으로 단일민족사회가 다민족사회로 변화하게 되었다.
    제정러시아의 지속적인 농민 유입정책으로 인해 카작인들의 목초지는 농지로 계속 전환되었고, 이로 인해 유목민인 카작민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제정러시아 시기에 각 민족의 이주 배경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농업이민의 차원에서, 까자끼는 제정러시아 중앙아시아 진출의 첨병으로, 독일인은 고급관리 및 농업으로, 타타르는 제정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통치 수월화를 위한 통역의 역할, 위구르는 청나라의 위협으로부터의 탈출, 폴란드는 유형 이민의 성격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제정러시아 시기 카작스탄에서는 민족집단간의 접촉이나 교류는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산업적으로도 토착민족인 카작민족은 유목에 종사하고, 이주민들인 소수민족들은 농업에 종사함에 따라 적극적인 민족관계가 발전될 계기는 만들어 지지 않았다.
    소련체제가 초기에 내세운 영토-민족 단위 구성공화국 수립,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의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이용으로 인해 토착민족 집단의 영향력은 확대될 수 있었고, 근대화된 토착민족 카작인 지식인 집단의 활동도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제정러시아 말기와 소련설립 초기의 혼란, 경제적인 어려움, 국가설립 직후 내전으로 인해 카작 민족의 감소 양상이 나타나게 되었고, 제정러시아에 시작된 러시아계를 중심으로 하는 타민족 집단의 유입은 소련시기에도 국가의 정책 차원에서 계속되어, 토착민족 집단과 비토착 소수민족집단간의 인구차이는 감소하였다.
    1920년대말과 1930년대초의 대기근과 집산화에 대한 토착민족 집단의 저항, 그리고 러시아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소비에트화의 추진으로 대규모 토착엘리트 집단의 희생을 가져왔고, 집산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토착민족인 카작민족의 감소 추세는 가속화 되어,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카작인의 규모는 더 감소하여 더 이상 다수 집단이 아니었다.
    토착민족 집단인 카작민족이 카작스탄에서 토착민족임에도 소수민족 집단으로 전락하는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추진된 소련당국의 처녀지 개발 및 공업화가 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이후 소련체제내내 지속되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초기에 생겨난 인구학적인 카작민족의 공백이 비카작민족의 유입으로 인해 채워지게 됨에 따라 러시아 문화가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수민족집단들은 토착민족 문화보다는 러시아문화의 지배적인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다.
    소련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 유입되었던 비토착민족집단들의 유출현상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유럽계 민족집단들의 유출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이 가운데에는 독일인의 유출현상이 가장 심했다.
    독립이후 나타난 두드러진 양상은 사회전반을 제정러시아와 소련체제를 통해 사회의 기반문화로 러시아문화, 러시아어가 토대를 굳건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카작민족주의 세력 및 카작정부가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위적으로 이를 토착민족의 문화와 언어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카작스탄의 민족관계 및 소수민족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와 함께 개별 민족들의 문화 및 독자성 보존에 대한 활동도 보장되고 있어, 토착민족의 자민족중심주의적 경향은 그리 심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국가어로써의 카작어 위상의 강화가 두드러질 뿐이다.
    현재 카작스탄의 민족정책은 사회전반에 걸쳐 카작어 사용 확대를 통한 카작문화의 다수 집단 문화로써의 자리매김을 추진하는 정책, 이와는 반대되는 소수민족집단의 문화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소수민족집단들이 소련시기와는 달리 다수집단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카작스탄의 소수민족 관계는 카작스탄이 제정러시아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제정러시아의 비토착민족 유입정책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책은 카작사회에 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경제정책, 민족정책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추세는 소련시기에도 지속되었다. 소련시기에 들어와서 카작인은 토착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집단이 되었고, 이러한 차원에서 카작스탄에서는 원래의 소수민족들에게는 문화적인 자치의 여지가 허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측면은 소련체제 붕괴이후의 신생독립 카작스탄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단지 소수민족집단에게 있어서 차이점이라면 소련시기에는 지배적인 문화 및 민족이 러시아였지만, 독립 카작스탄에서는 러시아문화의 영향을 받은 카작중심 문화와 카작민족이 지배적이라는 차이가 있으며, 다문화의 공존적인 구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 Index terms
  • 카작스탄, 카자흐스탄, 소련, 민족문제,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카작민족, 러시아 민족, 독일민족, 우크라이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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