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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代 墓葬 및 縣城의 분포를 통해 본 취락구조의 변화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漢代 墓葬 및 縣城의 분포를 통해 본 취락구조의 변화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병준(한림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42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3월 0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필자는 전한과 후한의 통치 방식 사이에 확인되는 일정한 변화가 단지 국가권력의 强弱이라든가 혹은 정권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취락의 분포 형태의 변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한대의 묘장 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았다. 즉 본고에서는 묘장의 위치와 취락의 위치가 거의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서 묘장의 분포를 통해 취락의 분포를 추적해 보았다. 기존에 발표된 모든 발굴보고서와 자료들을 동원하고, 또 필자가 직접 실측한 경위도 좌표를 이용하여 현성과 묘장의 거리를 가능한 정확하게 산출해 보았다. 그 결과 전한시대에는 대부분의 묘장이 현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소농민 역시 현성 내부 혹은 인접한 곳에 집중해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점은 전한시대까지 국가권력의 제민지배체제가 관철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후한시대에는 현성 근처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멀리 떨어진 곳까지 넓고 불규칙하게 취락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후한의 이러한 특징은 각종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집단 이산, 호족들의 장원 건설 등으로 말미암아 현성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취락이 형성·분포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전한시대에 비해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취락에 침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물론 후한시대에도 전한시대와 같이 현성 근처에 분포한 취락이 절반에 가깝다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지배체제는 지속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전한시대와 비교할 경우, 후한시대에 들어서 기존과 같은 제민지배체제의 관철이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지배 형태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은 그 원인을 이런 취락 분포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영문
  • This paper ar focusing the fact that changes in the administraion of Western and Eastern Han period results from the differences in ther form of villages where the actcual local administration was put on. In order to solve this problem, I tracked the changes the distances of villages from the prefectual city in the Han period. In result, I acquired the conclusions as followings. First, the distance of village from the prefectual city in the Western Han period is very short. Second, on the contrary to Western period, a lot of villages were located very far away from prefectual city in the Eastern Han period. These fact explains that Eastern dynasty can not help changing its administration wa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는 縣 내의 거주 공간의 위치에 따라 율령지배의 실시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즉 국가권력의 지방 거점지라고 할 수 있는 현성 및 그 인접 지역의 취락과, 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취락 사이에는 국가권력의 관철 정도가 달랐을 것이며, 이 점은 특정 동일 시점에 발생할 수 있는 지역적 차이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도 다양한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필자는 전한과 후한의 통치 방식 사이에 확인되는 일정한 변화가 단지 국가권력의 强弱이라든가 혹은 정권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취락의 분포 형태의 변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한대의 묘장 자료를 중심으로 추적해 보았다. 즉 본고에서는 묘장의 위치와 취락의 위치가 거의 일치한다는 전제 하에서 묘장의 분포를 통해 취락의 분포를 추적해 보았다. 기존에 발표된 모든 발굴보고서와 자료들을 동원하고, 또 필자가 직접 실측한 경위도 좌표를 이용하여 현성과 묘장의 거리를 가능한 정확하게 산출해 보았다. 그 결과 전한시대에는 대부분의 묘장이 현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소농민 역시 현성 내부 혹은 인접한 곳에 집중해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점은 전한시대까지 국가권력의 제민지배체제가 관철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후한시대에는 현성 근처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멀리 떨어진 곳까지 넓고 불규칙하게 취락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후한의 이러한 특징은 각종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집단 이산, 호족들의 장원 건설 등으로 말미암아 현성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취락이 형성·분포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전한시대에 비해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취락에 침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물론 후한시대에도 전한시대와 같이 현성 근처에 분포한 취락이 절반에 가깝다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지배체제는 지속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전한시대와 비교할 경우, 후한시대에 들어서 기존과 같은 제민지배체제의 관철이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지배 형태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은 그 원인을 이런 취락 분포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취락의 분포 상황만으로 자연촌과 행정촌인가 여부는 결정할 수 없지만, 현성 가까이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작위적 재편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므로 전한시대의 취락 및 후한시대의 상당수 취락은 행정촌의 성격이 강했고, 후한시대에 먼 곳에 형성되는 신취락의 경우 자연촌락의 성격을 많이 띠게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고의 분석 결과 전한시대에는 대부분의 묘장이 현성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소농민 역시 현성 내부 혹은 인접한 곳에 집중해서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점은 전한시대까지 국가권력의 제민지배체제가 관철되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후한시대에는 현성 근처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멀리 떨어진 곳까지 넓고 불규칙하게 취락이 분포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후한의 이러한 특징은 각종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집단 이산, 호족들의 장원 건설 등으로 말미암아 현성에서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취락이 형성·분포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전한시대에 비해 국가권력이 상대적으로 취락에 침투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물론 후한시대에도 전한시대와 같이 현성 근처에 분포한 취락이 절반에 가깝다는 것은 이곳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지배체제는 지속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전한시대와 비교할 경우, 후한시대에 들어서 기존과 같은 제민지배체제의 관철이 일정한 한계에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지배 형태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은 그 원인을 이런 취락 분포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취락의 분포 상황만으로 자연촌과 행정촌인가 여부는 결정할 수 없지만, 현성 가까이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작위적 재편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므로 전한시대의 취락 및 후한시대의 상당수 취락은 행정촌의 성격이 강했고, 후한시대에 먼 곳에 형성되는 신취락의 경우 자연촌락의 성격을 많이 띠게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본고에서 분석한 결과는 앞으로 몇 가지 중요한 작업을 남겨 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본문에서는 각 성별로 취락 분포의 차이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였는데, 앞으로 성별 분포를 한대의 행정구역인 郡別로 나누어 內郡과 外郡 혹은 지형별 차이를 본격적으로 추적해 볼 수 있다. 본고가 전후한의 차이를 지적한 데 그쳤지만, 지역별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또한 필자는 전한시기에도 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예외적 존재를 인정했으며, 후한시기에도 현성에 가까이 인접해 있는 묘장과 수십 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묘장의 병존을 지적했는데, 이들 각 묘장의 부장품과 규모 및 매장 주체부의 구조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분포 위치에 따른 차이가 확인된다면 필자의 결론은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이 작업은 기존 漢墓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 연구 방법론을 가져올 수 있다고 기대한다.
  • 색인어
  • 聚落(village), 墓葬(tomb), 縣城(city of prefecture), 齊民支配體制(State Control of the Commoners), 集住(integrated dwelling), 行政村(administrative community), 自然村(natural community), GPS, G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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