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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7191&local_id=10012066
18세기 예술․사회사와 옥소(玉所) 권섭(權燮)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18세기 예술․사회사와 옥소(玉所) 권섭(權燮) | 2004 Year | 이창희(고려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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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49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창희, 「옥소 영사시의 연구」: 본 논문은 옥소의 영사시 일부를 중심으로 18세기 호서지역의 재지사족의 역사관과 세계관의 일면을 고찰해 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옥소 영사시의 내용적 특징으로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유학의 전승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선조 유학의 학맥이 우암 송시열과 한수재 권상하로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하려는 의도에서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의리와 보답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대부들에게서는 충절의 모습으로, 일반 서민들에게서는 정절과 의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끝으로 득의의 어려움과 안분자족(安分自足)적 삶의 지향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극심한 당쟁으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난 의식이라고 하겠다.
    신경숙,「옥소 권섭의 음악 경험과 18세기 음악 환경」: 권섭의 음악경험을 통해, 18세기 음악사회 내부에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즉 한편에서는 시대보다 앞선 선구적인 음악이 실험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다수의 애호를 받는 전형적인 시대취향을 보여주는 음악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권섭의 경험은 후자를 보여준다.
    장정수,「옥소 권섭의 시조 한역시 <翻老婆歌曲十五章>」: <번노파가곡십오장> 15수는 가련이 부른 가곡을 한역한 것으로, 옥소와의 첫만남, 함께 보낸 시간들, 옥소를 흠모하는 마음, 이별의 슬픔, 이별 후의 그리움 등을 순차적으로 노래하였다. 그 외 <답함산노파> 1수와 <번노파가곡> 2수, <답기함파> 2수는 헤어진 후 서로 그리워하며 옛날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작품은 그 유기성이 긴밀하지는 않으나 한 편의 서사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성욱,「권섭의 산수 유기 연구」: 옥소에게 있어 탐승의 욕구는 식욕과 색욕을 억제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까닭에 老年에도 산수 유람을 멈추지 않았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결행하였던 것이다. 그는 탐승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정감을 산수에 투사시킨다. 또 이를 통해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고 그것은 그의 정신과 육체를 산수 유람 이전보다 한층 강건하게 만든다. 그것이 그를 평생 동안 산수의 기승(奇勝)을 추구하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강고한 산수벽을 지녔으면서도 그는 산수유기에서 산수 유람의 흥취와 견문만 적지 않았다. 산수 유람의 전 과정이 모두 소중하였기에 어디를 어떻게 다녔는지 그리고 누구와 어떻게 어울렸는지는 빠짐없이 적었던 것이다.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산수 유람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최호석,「옥소 문집의 서지적 고찰」: 현재 필사본으로는 제천본 45책과 문경본 17책이 전하는데, 남아있는 책의 규모나 다양성 면에서 볼 때 제천본이 문경본보다 완질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천본에는 중복 수록된 작품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제천본은 문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일단 수집 가능한 모든 작품을 수록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문경본은 중복 수록된 작품도 없으며 부분적으로 제천본과 다른 편제를 갖는, 약간은 완정된 형태의 문집이라고 하겠다. 한편 석인본은 제천본을 바탕으로 하였는데, 거기에는 국문시가가 모두 빠져 있으며 한시도 필사본의 5% 정도만 실리는 등 필사본에 있는 작품 중에서 극히 소수의 작품만이 수록되어 연구의 텍스트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
    최원석,「옥소 권섭의 풍수적 인식과 실천」: 옥소의 문집을 고찰한 결과 풍수는 옥소의 산수관 및 산수미학의 구성에 영향을 준 일정한 요소라고 볼 수 있었다. 옥소의 산수미학 및 문학을 구성하고 있었던 요소와 사상, 그리고 가치들은 그의 정신적 본령인 유가사상 뿐만 아니라 불가, 도가사상 등 실로 다양한 속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중에 풍수도 있었다. 이러한 연유는 옥소가 오랫동안 풍수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풍수서 및 秘記類를 탐독하여 지식을 쌓고 여러 차례의 현지답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진영,「옥소 권섭의 회화관과 18세기 화단」 : 「옥소고」의 회화 관련 내용은 18세기의 문화와 예술의 동향과 새로운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18세기 화단의 동향이 그림을 애호한 선비들에게 어떻게 소통되고 있는가를 엿보게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시대 회화 예술의 실상과 단면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English
  • Shin, Kyung-Sook, 「Kwon, Sup's experiences in music and the musical environment in the 18th century」 :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find out Kwon, Sup's experiences in music as a member of Nhoron group in political parties in the 18th century and clarify the meaning of the musical history from his experiences in music at that time. It showed that there were various classes of musical world in the 18th century through Kwon, Sup's experiences in music. that is, on the one hand, there was a new pioneering experiment in music being ahead of the times, on the other hand, the musics enjoyed by the majority of people were performed. Kwon, Sup's experience has showd the latter.
    Choi, Ho-Suk, 「A Bibliographical Study about a Collection of Okso's Work」 : In this thesis, I tried to introduce two transcriptional versions(筆寫本) and one lithographic printing version(石印本) of a collection of Okso(玉所) Kwon, Seop(權燮, 1671~1759)'s work. And also I researched the relation of those versions.
    Hong, Seong-uk, 「The Study on the Sansuyugi of Kwon Seop」 : Kwon Seop was disillusioned about political reality through experiencing Kisahwanguk(Returning to former political system through Political strife) and he spent his life in going on a trip to see the beautiful mountains and rivers while giving up the entrance into the governmental office. For him, mountains and rivers are free spaces to be separated from the world. Mountains and rivers were just objects of exploring beauty for him but not spaces to find the morality and righteousness, pursued by people of noble birth. In order to explore the beauty of mountains and rivers, and enjoy the spiritual freedom, he travelled the whole nation at his old age in spite of persuasion of his family. He was absorbed in exploring the beauties of mountains and rivers and eventually left travel sketches called "SANSUYUGI", which are written with various forms.
    Choe, Won-Seok, 「A Study on geomantic perception and practice of Okso(玉所) Gweonseop(權燮)」 : This thesis is studied on geomantic perception and practice of Okso(玉所) Gweonseop(權燮 ; 1671~1759) who was born of a intellectual confucianist family in 18th Chosun Dynasty. Through this research, I conclude that Geomancy had an partly impact on the aesthetics and literature of Okso(玉所). To research the geomantic perception and practice of Okso, I red a collection of his works, specially named 'Tombs located at Mountain(『墓山』)', and then interpreted his geomantic pictures(山圖) as well as his comments on tomb.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는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59)의 조선후기 지식인으로서 삶과 예술 활동을 살피고, 이를 토대로 조선후기 예술 및 사회사의 일면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옥소 권섭이 살았던 숙종(肅宗) ~ 영조(英祖) 연간은 조선후기 문예의 중흥기(中興期)라 일컫는 시기였으며, 예송논쟁과 탕평의 정국이 부침을 겪는 시기인 한편,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한 자각과 주체의식이 고양된 시기였다. 즉, 학문적으로는 성리학의 완고한 이념과 권위가 약화되고 대신 실학의 사실적인 사조가 대두하고, 김만중과 같이 우리글과 우리 작품에 대하여 긍정적 인식을 가진 양반 문인이 등장하는 등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이 있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또한 미술에서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화를 비롯한 풍속화(風俗畵)가 나타나 조선 문화의 고유성(固有性)이 다채롭게 발현된 시기였으며, 평민층의 미의식과 생활감정을 담은 국문시가 작품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옥소 권섭은 바로 이러한 시대에 노론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나 백부인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와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등에게서 수학하였다가, 일찍이 과거에 뜻을 버리고 문예에 침착하여 처사적인 삶을 택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80여 년을 사는 동안 시·서·화(詩書畵)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러한 관심은 그의 문집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현재 그의 문집에는 3,000여 수에 가까운 한시와 가사 2편, 시조 75수와 한역소설(漢譯小說)인 <번설경전(翻薛卿傳)> 등의 적지 않은 작품이 남아 있으며, 그의 가문에서 한글소설을 필사·분배한 것과 겸재 정선을 비롯한 당대 예인(藝人)들과의 교유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이와 같이 권섭이 남긴 방대한 문학 작품과 시(詩)·서(書)·화(畵)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조예는 18세기의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데에 매우 주목해야 할 대상이라고 하겠다. 본 연구에서 옥소 권섭의 삶과 예술 활동을 주제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옥소 권섭이 향유한 당대의 문화 예술은 18세기 지식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는 자신이 누린 것을 충실하게 기록하여 두었다. 우리는 그로 인해 18세기 지식인의 삶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으며, 당대의 문화 예술에 대한 새로운 앎을 얻을 수 있었다. 옥소 권섭의 저작물이 당대의 문화 예술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 있는 만큼 본 연구 또한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문학(고전문학, 한문학)·사학(미술사학)·지리학(풍수지리학) 연구자가 함께 옥소의 저작을 면밀히 고찰하게 되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연구자 개인의 전공영역에 따라 연구분야를 세분하였다. 이는 연구대상인 옥소의 관심분야가 시조·가사 등의 국문학, 한시나 산문 등의 한문학, 풍수·서화에 대한 관심, 세시풍속에 대한 관심 등 그 영역이 실로 다양하였기 때문에 절실하게 요청되는 부분이었다. 따라서 본 연구팀에서는 문학(고전문학, 한문학)·사학(미술사학)·지리학(풍수지리학) 으로 나누어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옥소 영사시의 연구(이창희)], [옥소 권섭의 음악 경험과 18세기 음악 환경(신경숙)], [옥소 권섭의 시조 한역시 <翻老婆歌曲十五章>(장정수)], [권섭의 산수(山水) 유기(遊記) 연구(硏究)(홍성욱)], [옥소 문집의 서지적 고찰(최호석)], [옥소 권섭의 풍수적 인식과 실천(최원석)], [옥소 권섭의 회화관(繪畫觀)과 18세기 화단(윤진영)].
    이러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은 활용방안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연구자에게 유용한 서지정보 및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옥소 일개인이 겪었던 여러가지 예술장르에 대한 체험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에 18세기 연구자들에게 통합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Index terms
  • 옥소 권섭, 한수재, 권상하,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도곡 이의현, 한역소설, 영삼별곡, 도통가, 황강구곡가, 산도, 겸재 정선, 몽화, 몽도, 이하곤, 예술사, 연행예술, 시조, 시조창, 가사, 소현성록, 삼국지, 풍수지리, 풍속화, 풍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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