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과제의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朝鮮朝 政策過程의 特性과 含意
經國大典 체제에서의 정책과정의 특성은 첫째, 각 행정관청은 계선기능과 참모기능의 혼합을 통한 특수한 결정체제를 갖추고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토록 하였다. 둘째, 정책결정에 있어 ...
본 과제의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朝鮮朝 政策過程의 特性과 含意
經國大典 체제에서의 정책과정의 특성은 첫째, 각 행정관청은 계선기능과 참모기능의 혼합을 통한 특수한 결정체제를 갖추고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토록 하였다. 둘째, 정책결정에 있어서 ‘공론’과정이 공개적, 즉각적이었다. 셋째, 경연제도와 같이 보다 자유스럽고 심화된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넷째, 원임대신의 의견수렴 등 ‘인재의 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끝으로, 史官制의 장점을 들 수 있다.
2. 朝鮮初期 國政運營體制와 國政運營
조선은 개국과 함께 고려말의 도평의사사가 중심이 된 ‘王-都評議使司-六曹, 百司, 道’ 체제를 계승하였고, 이후 왕권강화와 국왕의 국정총람, 의정부의 대두 등과 관련되어 ‘의정부서사제’와 ‘육조직계제’ 체제가 교차 운영되었다. 국왕의 의정부 정무협찬 인식, 의정의 학식과 경륜, 국왕의 신임 여부에 따라 의정부의 국정참여 범위 및 정도가 결정되었으나, 실제로는 의정부가 국왕을 받들고 육조를 지휘하면서 국정을 영위하는 경향이 현저하였다.
3. 조선 영조년간의 都政과 인사실태
영조 11년부터 51년까지 7개년(政事冊 출전)의 도정과 인사실태를 살펴본 결과, 散政이 매달 수차례 시행되었다. 인사담당자인 이조의 三堂上은 受由와 奉命, 牌招不進, 疏批末下 등 다양한 사유로 불참하는 사례가 매우 많았다. 이 도정에서 육조판서의 인사는 그 대상자가 모두 128명이었다. 이들 중 116명이 문과합격자였으며, 전직자는 45명으로 약 30% 이상이 음관 출신이었다. 이들은 46개 성관으로 분류되며, 문벌 가문 출신이 대다수였다.
4. 고종황제 즉위식의 상징적 함의
고종은 稱帝를 허가한 후 환구단을 정비하여 황제 및 황실의 권위를 높이는 등 중국제도와 가깝게 만들었다. 상제에게 고유제를 올린 후 바로 그 자리에서 天命을 받아 황제에 등극함으로써, 자주적인 대한제국의 위상을 과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제 즉위식에 고종은 각계각층의 여론을 적극 활용하였다.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의 발생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한 분노가 비등해짐에 따라 황제즉위의 요구가 거세었던 것이다.
5. 조선 후기 民意 收斂에 관한 연구
조선시대 민의 수렴장치 중에서 가장 중시할 점은 그 기본정신이다.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한 국정 운영원칙은 이후 민의 수렴의 수월성과 양적 팽창으로 나타났다. 둘째, 오늘날 국민들의 의견표출에 대한 당국자의 자세에 상소제도를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조작된 여론에 대한 엄정한 대처이다. 이외에도 신문고와 상언, 격쟁, 어사 파견 등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6. 조선시대 지방 자치와 주민 참여
조선 초기에 고려의 속현이 거의 대부분 없어진 것은 그만큼 중앙정부의 지방 지배력이 강화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향리와 품관의 토호적 성격은 여전하여, 국가에서는 ‘원악향리처벌법’과 ‘부민고소금지법’ 등을 통해 이들을 억제하였다. 반면에, 지방관의 부정과 자의적인 통치를 방지하기 위하여 중앙정부에서는 行臺監察을 수시로 파견하였고, 부민들에게도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고소할 수 있도록 하였다.
7. 朝鮮 前期 田稅 改編의 내용과 시사점
세종년간에 공법이 정착되는 과정에서의 세제개편의 특성은 첫째,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둘째, 졸속행정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논의와 검토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셋째, 제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도상의 허점이 드러났다. 이는 국가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 정책의 합리성과 집행가능성이 조화롭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8. 조선시대 사회복지정책의 제도화 과정의 실패와 교훈-조선의 還政과 영국의 救貧정책의 비교분석-
조선과 영국의 사회복지 정책의 비교검토 결과, 사회적 수요의 성공적인 제도화는 정책투입이 아니라 실제적인 정책 대상자를 위한 대변자 및 매개자 역할을 해주는 사회적 기구의 유무가 중요하다. 영국에서는 의회가 이러한 역할을 해주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 밖의 큰 시사점은 영국에서는 사회복지 정책과정에서 민간단체의 영향력이 1601년부터이며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조선과 영국의 흥망성쇠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