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의 목표는 소외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개인의 해방이자 동시에 사회적 해방이다. 라깡은 이러한 정신분석의 목표를 환상의 통과, 주체적 궁핍, 증상과의 동일화로 정리한다. 이는 사회적 소외로 인해 빼앗긴 주체의 향유를 되찾는 ...
정신분석의 목표는 소외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개인의 해방이자 동시에 사회적 해방이다. 라깡은 이러한 정신분석의 목표를 환상의 통과, 주체적 궁핍, 증상과의 동일화로 정리한다. 이는 사회적 소외로 인해 빼앗긴 주체의 향유를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성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해 논의하며 버틀러의 이론을 라깡의 성정치학과 비교 검토한다. 버틀러는 이성애적 실천은 사회적 권력이 주체의 심리적 삶을 지배하는 대표적 형태로 간주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이성애란 ‘이중의 부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자의 경우 이성애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부인, 그리고 상실된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부인이라는 이중의 부인을 통해 형성된다. 반면 남자이성애자는 최초의 사랑인 어머니를 긍정하므로 버틀러에 따르면 이성애적 남자는 여자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최초의 주체는 성구분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적다. 버틀러는 여자동성애자의 어머니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의 중요성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 선행하는 변수로 간주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버틀러는 동성애적 실천만을 과도하게 중시하고 다시금 여성동성애를 본질주의화하는 오류에 빠진다. 이러한 내용적, 임상적 오류는 버틀러로 하여금 방법론적으로 동성애의 우위라는 형식주의의 오류를 범하도록 한다.
끝으로 본 연구는 정치적 함의를 가진 정신분석의 끝 개념을 라깡과 지젝의 행위 개념과 접목시켜 논의한다. 정신분석적 행위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며, 필연적으로 이는 정치적 급진성을 가진다. 소외된 상태에 빠져있는 주체의 욕망과 향유는 필연적으로 상징적 맥락에서 형성되며, 따라서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향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위는, 사회적 맥락에의 적대와 관련해 사회적, 정치적 정세의 균형을 교란시키는 것을 목표로 자신을 투입하는 행위이고, 진정하지 않은 행위는 사회적 균형의 지속적인 유지에 봉사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행위가 ‘아닌 것’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는 효율성에 의해 평가되지 않으며, 반사적 행동이 아니다. 예컨대 생물학적 반작용은 행위가 아니다. 또한 행위는 단순히 상징적 한계를 단순히 넘어서는 것, 혹은 위반이 아니라, 오히려 상징적 한계를 넘어서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예컨대 상징적 한계를 넘어서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행위이다. 이는, 성도착자의 위반의 행위가 진정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대타자의 법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단순한 공적이나 뛰어난 성과를 동반한 행동도 행위가 아니다. 정신병리적 소외의 극복을 위해 정신분석작업을 하는 것을 통해 행위에 도달할 수 있으나 정신분석작업이 오히려 주체를 소외로 이끄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또한 ‘확립된’ 도덕을 존중하는 것도 행위로 기능하지 않는다. 요컨대 행위란 어떤 이상, 대의(Cause)에 충실한 행위로서 이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또한 진정한 행위는 이성적 타산(calculation) 혹은 추론의 결과가 아니다. 대의(Cause)를 인식하면서, 상징적 지배 질서를 바탕으로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고독한 행위로서 진정한 행위는 결과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면서 원인(대의)의 존재를 승인하며 이것에 충실한(fidèle)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홀로, 고독하게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가진다. 행위란, 주체 속에는 대타자(정치, 기표의 질서, 상징적 질서, 권력 등)에 의해 결정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주체가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지고의 것이다. 행위는 어떤 신비적인 고행이나 황홀경으로의 침잠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성의 관점으로부터 출발해 어떤 사회적 영역으로 개입해 대타자를 폐기함으로써 새로운 대타자의 설립을 목표로 삼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