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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항장 도시의 식민성과 근대성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 개항장 도시의 식민성과 근대성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고석규(국립목포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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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A00012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3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근대도시 목포의 대중문화를 통해 본 식민지 근대성(고석규) : 이 연구에서는 조선인 마을과 일본인 마을로 대별되는 근대도시 목포의 공간적 차별, 그에 따른 문화적 차별과 차이, 그리고 대립되는 마을 사이에 들어선 대중문화 시설의 타협적 역할 등을 살펴보면서 목포의 식민지 근대성을 이해하여 보고자 하였다. 목포에서는 종교뿐만 아니라 학교, 체육, 청년활동 등 모든 면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은 서로 다른 공간과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활동을 하였다. 이는 두 집단 간에 뚜렷한 차별적 차이로 나타났고, 그런 차이들이 식민성을 배태했다. 이처럼 목포의 식민성은 이중공간과 이중공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갈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이런 차별적 이중 공간구조를 지닌 근대도시 목포에서 타협공간의 역할을 맡고 배치된 것이 대중문화와 관련 시설들이었다. 근대 문명의 전파와 함께 등장한 대중문화는 1930년 전후하여 목포에서도 급격히 확산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중가요, 영화, 신파극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한편 목포극장·평화관 등 대중문화를 위한 시설들은 모순 대립적인 두 마을 사이에 마치 이율배반적인 공간처럼 자리잡았다. 그리고 거기서 행해지던 대중문화들을 통해 대중들의 정서, 즉 신파성을 반복 재생산하여 목포 대중문화의 식민지 근대성을 규정하였다.
    대한제국기 군산 객주의 상회사 설립과 경제사회운동(김태웅):일제가 강점을 계기로 군산 객주를 무력화시키고 활동 공간을 축소시킴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이 전라북도 여러 지역 중 군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으며 여기에 많은 학생과 상인층이 참여하였다. 이는 이전 시기 군산 객주의 내재적 기반과 함께 대한제국기에 객주들이 전개한 경제․사회운동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여전히 작용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후 일제가 군산을 급속하게 근대화시키고 도시화시켜 나아갔지만 이는 오히려 조선인과 일본인의 긴장과 갈등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점에서 대한제국기 군산 객주의 경제․사회운동은 근대 군산의 역사적 기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개항장공간의 조직과 근대성의 표상(김주관):목포 개항장에 있어서 공간 조직의 변화와 행위자로서 그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주관적 관념으로서 근대성의 형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개항 초기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거주 공간의 구별은 없었지만, 매립을 통한 물리적 공간의 확장은 점차 일본인 거주지와 조선인 거주지를 분리하게 되는 토대를 제공하였고, 이에 덧붙여 이 두 공간을 차별화하는 다양한 기제들이 이러한 분리를 단순히 지리적인 구분을 넘어서는 인지상의 구분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박화성소설에 나타난 식민지근대성연구(변화영):박화성의 일제강점기 소설들은 사람과 공간의 상호 역동적 관계를 바탕으로 목포 민중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려내려는 사실성에 입각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은 식민지 근대성이 내재된 목포의 도시적 특성을 공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목포의 식민지 근대성이 그 배후지인 나주평야와 관련하여 형상화되어 있어, 박화성의 소설들은 목포의 도시 발달 과정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목포개항장 상인층의 존재양태와 그 성격(박이준):개항장 목포의 상인층은 개항초기부터 한국인 상인층과 일본인 상인층간에 상권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면서 성장하였다. 식민지시기를 걸치면서 이들의 성격 역시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영문
  • Colonial Modernity in the Popular Culture of the Modern City of Mokpo (Ko, Seok-kyu) : This essay examines colonial modernity in Mokpo in terms of the spatial distinction between the Korean villages and the Japanese villages and consequent cultural differences, and the reconciling role of popular cultural facilities situated between the two confronting villages in the modern city of Mokpo. In Mokpo, Koreans and Japanese had engaged in various social activities including religion, school, physical education, youth activities, and the like, in a clearly different space and environment from each other. Such clear spatial and environmental distinction between the two groups resulted in discrimination between the two, which led to the birth of colonialism. The colonialism of Mokpo can be found in the cultural tension created by the dualistic space and differences between these two spaces. However, popular culture and related facilities introduced in the space between the two played a mediating role in the discriminatory structure of the dualism in the modern city of Mokpo. Popular culture, which was introduced as part of modern civilization, rapidly spread in Mokpo as well as in other cities in Korea around 1930. The major genres of the popular culture at that time included popular songs, films, and modernized dramas (sinpa dramas). Popular facilities such as Mokpo Theater and Pyeonghwa-gwan were established in what could be viewed as a contradictory space between the two conflicting villages. Various popular cultural activities in that space eventually defined the colonial modernity of popular culture in Mokpo through the constant reproduction of popular, or, in other words, modern sentiments.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Companies and the Economic-Social Movements of Inland Brokers(Gaek-ju, 客主) on Gunsan in the Period of Korean Empire(Kim, Tae-woong):After the compulsory occupation in 1910, Japanese Imperialism enforced the Company Law, the Market Regulation, the Chamber of Commerce Law. Therefore Korean brokers on Gunsan as many Korean brokers on the other regions could not realize the modern company system. But their efforts influenced the national movements on Gusan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The Spatial Organization and the Representation of Modernity in a Korean Open Port(Joo-Kwan Kim):The representation of modernity in Mokpo was made by several means in addition to the well-planned routes, which were the new styles of architectures, the functions of the Japanese district, and the place names. These means made the residents differentiate the city, and recognize the Japanese district as modern.
    The Colonial Modernity of Mokpo as Represented in Park Hwa-seong's short stories (Byun Hwa-yeong):The ordinary lives of the people of Mokpo city and adjacent rural areas were depicted realistically based on the real history in her short stories of Japanese colonial rule. Her works are interwoven by the interaction between human beings and the space they lived in during these times and can be evaluated as important cultural material through which we can specifically understand the colonial modernity of Mokpo city and how it relates to the adjacent rural areas.
    Mercantile Practice and Conditions in the Mokpo Open Port Market(Bark, Lee-joon):Mokpo merchants of opening port competed and developed between Korean merchants and Japanese merchants in the early of opening port. Their characteristics showed modernity and colonialness at the same time through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협동연구에는 역사학과 문화인류학, 그리고 문학이 함께하였다. 최근 학계에서는 개항부터 일제강점기 시기의 이른바 ‘식민지 근대성(Colonial Modernity)’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방보다는 중앙 중심의 논의에 머물고 있다. 정작 근대의 길목에 서서 ‘식민지 근대성’을 가장 잘 표출하고 있는 개항장 도시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 협동연구의 대상이 된 개항장은 대한제국기 근대적 개혁을 위해 정부 스스로 문을 연 호남의 두 개항장, 목포(1897년)와 군산(1899년)이었다. 국제 교역을 위해 열린 공간, 개항장 도시들은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도 더 분명히 ‘근대성’과 ‘식민성’을 동시에 갖는 도시들이었다. 이와 같은 개항장의 근대성과 식민성을 상업·공간(경관)·문화를 통해 살피면서 그 성격을 밝히고자 하였다.
    첫 번째, 김태웅의 "대한제국기 군산의 객주와 민족운동"에서는 조선후기부터 1899년 개항 직전까지 이 지역의 사회경제를 주도했던 군산 객주의 역사적 기반을 검토한 뒤 개항의 경위 및 객주의 민족운동을 분석함으로써 개항의 역사적 의미를 둘러싼 논의를 본격화하고자 하였다. 우리의 근대는 제국주의와 함께 왔고, 그 대척점에서 민족주의가 자랐기 때문에 식민성과 민족주의가 교차하는 개항장에서 객주의 민족운동을 통해 근대성의 면모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개항장에는 객주에서부터 행상에 이르기까지, 또 시계점에서부터 자전거점, 자동차부, 잡화상 등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상인들이 존재하였다. 이런 상인들 간에는 업종이나 업태의 차이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조선인이라는 민족간 차별도 존재했다. 두 번째, 박이준의 "목포 개항장 상인층의 존재양태와 그 성격"에서는 이러한 근대 개항장 상인층의 서로 다른 존재양태를 통해 개항장의 근대성과 식민성을 도출해 보고자 하였다.
    세 번째, 고석규의 "근대도시 목포의 대중문화를 통해 본 식민지 근대성"에서는 목포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리잡는 도시공간의 이중성을 살피고, 그 안에서 특히 극장, 영화관, 공연장 등 문화공간이 어떻게 자리잡고 또 거기서 행해진 대중문화들은 무엇이며 그런 문화현상이 초래한 목포의 근대도시문화는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 등을 살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곧 도시공간과 문화의 상관성을 통해 개항도시 목포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밝히려는 시도였다.
    식민지 지배에 의해 형성된 근대적 도시 공간은 새로운 공간의 창출이나 전통 공간의 재배치를 통해 공간 그 자체를 근대성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네 번째, 김주관의 "개항장 공간의 조직과 근대성의 표상"에서는 목포와 그 배후지 나주를 대상으로 개항을 전후하여 형성되는 조선인 거주지=전통 공간과 일본인 거주지=근대 공간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통해 근대성의 표상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끝으로, 변화영의 "박화성 소설에 나타난 식민지 근대성 연구"는 박화성 소설을 통해 목포의 식민지 근대성에 접근하고자한 문학 분야 연구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최종연구결과물발표 : 지방사와 지방문화(역사문화학회)에 김태웅 등 4편 게재, 한국문학이론과비판에 변화영의 논문 게재 완료하였음
    활용방안 : 동아시아의 도시들 중에는 전통도시가 근대도시로 발전한 경우도 있지만,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어 세계체제에 편입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협동연구는 동아시아 전체의 식민지 근대성을 상호 비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색인어
  • 개항장, 목포, 군산, 나주, 영산포, 대중문화, 민족주의, 식민지 근대성, 도시, 종교, 이중성, 상인, 박화성, 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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