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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부산경제-경부성장축의 변화에 대한 시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한국전쟁과 부산경제-경부성장축의 변화에 대한 시사-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대래(신라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026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2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한국전쟁은 한국경제의 전개에서 중요한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일제식민지기를 통해 형성되었던 서울과 부산을 잇는 성장축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으로 한국경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과 관계를 맺어온 중국과의 단절과 일본경제권내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본격 침략과 함께 전통적인 대외관문이었던 인천을 대신하여 부산이 한국의 관문으로 새로이 등장하였고, 부산과 서울을 잇는 연결축이 성장의 중심축으로 등장하였다. 해방은 일제의 퇴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부중심의 성장축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방직후 많은 경제지표들은 한국내에서 국지적인 시장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력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고, 교역 또한 화교경제권과의 활발한 회복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일본중심의 분업구조를 벗어나 다원화된 또는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회복하는 새로운 전개를 전망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은 이러한 새로운 전개를 정면에서 부정하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계의 부활과 전개를 가속화시켰다.
    더욱이 전선의 붕괴와 임시수도의 부산이전, 원조물자의 부산항 유입 등은 부산과 서울을 잇는 성장축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1950년대를 통해 부산은 제조업, 금용, 무역, 경제단체 등 여러 부문에서 전국적 비중을 높여 가면서 이후 전개될 경부성장축 강화의 기본흐름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부성장축의 강화의 와중에서 수도권 집중이 동시에 진전되었던 것이 주요한 특징이었다.
    1992년 중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서해안 시대가 열리면서 성장축이 서해안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성장축의 이동은 그간의 경부성장축 중심의 발전구도에 수정을 가하면서 수도권 집중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조건에서 기인하는 주요 성장축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경우 한국경제 전개의 주요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게 될 것이다.
  • 영문
  • Right after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the Seoul-Busan Growth Axis which was made under the Japanese rule was weakened. But Korean War which broke out 1950 had made reconstruction of Seoul-Busan Growth Axis again. In 7 sectors we investigated we can find revival of Seoul-Busan Growth Axis. Especially the share of Busan in economic activity had growed sharply during the Korean War. It had influenced the growth of Korean and Busan Economy as well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한국전쟁은 한국경제의 전개에서 중요한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일제식민지기를 통해 형성되었던 서울과 부산을 잇는 성장축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으로 한국경제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과 관계를 맺어온 중국과의 단절과 일본경제권내로의 편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본격 침략과 함께 전통적인 대외관문이었던 인천을 대신하여 부산이 한국의 관문으로 새로이 등장하였고, 부산과 서울을 잇는 연결축이 성장의 중심축으로 등장하였다. 해방은 일제의 퇴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부중심의 성장축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방직후 많은 경제지표들은 한국내에서 국지적인 시장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력이 형성되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고, 교역 또한 화교경제권과의 활발한 회복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일본중심의 분업구조를 벗어나 다원화된 또는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회복하는 새로운 전개를 전망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은 이러한 새로운 전개를 정면에서 부정하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계의 부활과 전개를 가속화시켰다.
    더욱이 전선의 붕괴와 임시수도의 부산이전, 원조물자의 부산항 유입 등은 부산과 서울을 잇는 성장축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1950년대를 통해 부산은 제조업, 금용, 무역, 경제단체 등 여러 부문에서 전국적 비중을 높여 가면서 이후 전개될 경부성장축 강화의 기본흐름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부성장축의 강화의 와중에서 수도권 집중이 동시에 진전되었던 것이 주요한 특징이었다.
    1992년 중국과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서해안 시대가 열리면서 성장축이 서해안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성장축의 이동은 그간의 경부성장축 중심의 발전구도에 수정을 가하면서 수도권 집중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조건에서 기인하는 주요 성장축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경우 한국경제 전개의 주요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게 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과제의 성과는 한국전쟁이 한국경제의 전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한국경제에서 경부성장축의 형성과 이완 그리고 강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각을 제공하여 한국경제의 전개에 관한 해석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 색인어
  • 한국전쟁, 경부성장축, 부산, 원조, 일본, 미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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