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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사관(滿鮮史觀)에서의 한국고대사 인식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만선사관& #40;滿鮮史觀& #41;에서의 한국고대사 인식 연구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박찬흥(고려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8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6월 0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논고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만선사관에 의해 한국고대사가 어떻게 연구되었는가 하는 점을 고찰한 연구이다. 만선사는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역사라는 의미로, 지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만선사’란 용어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만선역사지리조사실을 실직적으로 이끌었던 백조고길(白鳥庫吉)에 의해서, 러일전쟁 직후인 1905년 처음 사용되었다. 만선사에서는 지리적인 문제와 대외적인 교섭에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고조선에 대해서는 단군신화와 한사군에 대한 연구가 주된 중심주제였다. 단군신화는 고려후기에 만들어졌다고 하여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지 않으며, 한사군에 대해서는 그 중심지가 어디였는가 하는 지리적인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고구려사는, 고구려의 영토가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만주사이면서도 한국사의 일부로서 인식되었다. 한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중국을 진출하려고 하였던 일본제국주의의 역사학자들에게는,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에 걸치는 영토를 가지고 있으면서 중국 왕조들을 패퇴시킨 고구려가 본받아야할 국가로 인식되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말갈족의 국가로서, 만주민족이 세운 두 번째 통일왕조로 평가되었다. 한편, 신라와 백제는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부용국(附庸國)이라고 연구되었다. 만선사관은 20세기 초 일제의 식민침략과 지배에 가장 잘 부응한 역사학이었다. 만선사관이 지리중심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영문
  • This article investigates how Ancient History of Korea(韓國古代史) was understood by the Japanese historians who established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Korea(滿鮮史). The regional boundary of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Korea(滿鮮史) includes Manchuria area as well as Korean peninsular. Shiratori Kurakichi(白鳥庫吉), who lead the Center for Historical and Geographic Research on Manchuria and Korea at the South Manchuria Railway Company, used the concept history of Manchuria and Korea(滿鮮史) for the first time in 1905.
    The scholars influenced by colonialism assert that the Dan-Goon(壇君) myth was fabricated in the Latter Koryo, and focused on the issue where the central location of Han Commandery(漢四郡) is when they execute research on the history of Old Choseon.
    The history of Manchuria and Korea(滿鮮史) raises not only geographical issues but also the issues of the history of foreign relation. The history of Goguryeo(高句麗) can be regarded either as Korean history or Manchuria history, for the territory of Goguryeo ranged from northern Korean peninsular to Manchuria.
    Goguryeo has been recognized as the first state in Manchuria. Besides, Japanese historians emphasized the fact that Goguryeo defeated China in order to illuminate the existence of Manchuria as a state Imperialist Japan reiterated this for the justification of her invasion of China.
    Besides, they insist that Palhae is the MalGal(靺鞨)’s state which succeeded Goguryeo(高句麗), and is also the unified Manchurian kingdom founded for the second time. Silla and Paekche are the countries subjugated to Japan. Manseonsagwan(滿鮮史觀) is a historical view corresponds to the Japanese colonial policy in the early 20th century. Manseonsagwan and Chinese the North-East Project are similar in the sense that both understand history based on territory.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만선사’는 1905년 무렵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연구의 주창자는 白鳥庫吉이었고,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산하의 만선역사지리조사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만주사’ 연구가 이루어졌다. 만선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것을 ‘만선사관’이라고 한다. 만선사는 일제의 한반도 및 만주 침략과 식민지배에 부응하는 역사학이었다. 만선사에서는 한국고대사를 중심으로 지리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고조선사에서는, 단군신화와 한사군문제가 중심 연구주제였다. 단군신화는 고려후기에 만들어졌다고 인식되었으며, 한사군에 대해서는 그 중심지가 어디였는가 하는 지리적인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부여는 만주족의 하나인 부여족이 세운 국가로 인식되었다. 고구려사는 가장 큰 과점이 기울어진 연구주제였다. 고구려의 영토는 한반도북부에서 만주지역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만주사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사의 범주에도 포함되었다고 보았다. 고구려는 만주민족의 하나인 부여족의 일파, 예맥족이 건국한 국가로서, 만주민족 최초의 통일왕조로 평가되었다. 고구려에 대한 연구도 주로 지리적인 관점의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중국 역대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점은 일제가 본받아야할 모범으로서 칭송받았다. 한국사로서의 고구려사는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고구려의 활동으로 서술되었다. 그 내용은 백제․신라와의 전쟁, 교섭이 주된 내용인데, 두 나라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음이 강조되었다. 발해사는 고구려를 계승한 말갈족의 국가로, 만주민족이 세운 두 번째 통일왕조로 평가되었다. 일본과의 교섭이 주된 연구주제의 하나였다. 한편, 신라와 백제는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부용국으로서 연구되었다.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한 연구인 것이다. 신라의 반도통일이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백제에 대한 연구에서도 지리적인 관점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이러한 만선사, 만선사관은 20세기 초 일제의 식민침략과 지배에 가장 잘 부응한 역사학이었다. 만선사관이 지리중심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의 역사를 인식하고 재단하려 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결과, 만선사관에서의 한국고대사 인식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부응하도록 왜곡되었음이 밝혀졌다. 이것은 현재까지 진행된 한국고대사 연구 성과나 인식과 많은 차이점을 드러내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을 차근차근 수정, 보완해야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서 먼저, 지금까지는 불분명하게 언급되어 온 만선사 혹은 만선사관에 대해 그 기원과 형성배경, 내용, 성격과 의미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조금 막연하게 식민사관의 한가지로서만 이해하고 있었던 만선사 혹은 만선사관이 1904년~1905년 등장했었다는 점과, 일제의 한반도 및 만주침략에 철저하게 부응한 침략주의 역사관이었다는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본 연구에서 지적한, 만선사의 한계와 잘못된 역사인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정정할 수 있다면, 만선사학의 틀 안에서 왜곡된 채 이해되었던 韓國古代史像이 올바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본 연구는 만선사관에 대한 검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입장에서 중국 ‘동북공정’ 사업과 그 사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잘못된 한국고대사 연구 및 인식에 대한 비판점을 찾을 수 있으며, 나아가 그 대안 마련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네 번째로, 만선사 혹는 만선사관의 등장은 일제의 식민통치 가운데 문화․교육 부문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선지리역사조사실을 중심으로 진행된 만선사 혹은 만서사관에 대한 연구는 일제 식민통치책 가운데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삼국시대 언어의 계통론 등의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만선사, 만선사관, 만선지리역사조사실, 식민사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백제, 신라, 동북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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