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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왕대력과 『삼국유사』 왕력의 비교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삼국사기』 왕대력과 『삼국유사』 왕력의 비교 연구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강래(전남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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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A00020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5년 12월 06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5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글은 『삼국사기』에 적용된 삼국의 왕대력과 『삼국유사』의 왕력편에 대한 비교 검토를 겨냥하였다. 『삼국사기』의 왕대력 관련 정보는 각 왕의 출자와 즉위 사정을 전하는 즉위기 및 졸기, 그리고 따로 작성된 年表를 아울러 확보된다. 이에 대해 『삼국유사』는 제편의 수위에 王曆을 배치하여 『삼국사기』의 연표와 근사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두 사서는 삼국의 왕대력을 공유하고 있는 바, 그 세밀한 비교 검토를 통해 각 자료의 편찬 원전 및 기년관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검토는 크게 세 영역에 걸쳐 수행되었다. 첫째, 삼국의 왕대력을 전하는 두 사서의 관련 부분에 대한 개별 검토로서, 주로 『삼국사기』 즉위기와 『삼국유사』의 왕력을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둘째, 두 사서의 삼국 왕대력 서술의 문제로서, 서술의 토대가 된 원전 자료에 대한 측면과 서술의 범위에 대한 논의로 나누어 접근하였다. 셋째, 두 사서가 기존의 왕대력 자료를 어떻게 수용했는가의 문제로서, 稱元과 紀年 그리고 왕명의 표기를 주된 검토 지표로 삼았다.
    논의의 결과 몇 가지 유효한 지침을 획득하였다. 첫째, 『삼국사기』 각 본기의 즉위기 및 졸기의 연대는 연표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자료원 혹은 합의된 기년관을 공유하였다. 둘째, 『삼국유사』 왕력에 보이는 삼국 왕들의 즉위년 및 졸년 정보 역시 기본적으로 『삼국사기』 왕대력과 일치한다. 따라서 왕력의 칭원법 자체는 『삼국사기』와 다르지 않았다. 셋째, 왕력의 기재 정보는 외형상 『삼국사기』의 왕별 즉위기와 졸기를 아우른 형태였으며, 왕력 찬자는 서술의 토대로서 『삼국사기』 왕대력 자체의 정보 혹은 그 원전 정보를 유의하고 있었다. 넷째, 왕력의 서술 범위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의 왕대력 관련 정보를 넘어선 특이 내용들 가운데 『삼국사기』와 공유하는 것들은 대체로 삼국의 본기보다는 지리지의 정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의 왕대력 관련 기존 자료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다대한 한편, 기존의 관련 자료 자체가 이미 단일한 형태가 아니었던 까닭에 취사 과정에서 출입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섯째, 『삼국사기』에 적용된 왕대력은 왕칭이나 칭원법의 준칙을 달리 하고 있는 다종의 왕대력 관련 자료를 환경으로 하여 일괄 조정된 것이며, 『삼국유사』의 왕력 역시 그와 같은 조정안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았다. 여섯째, 신라 고유 왕칭이나 고구려와 백제 왕명 표기 방식을 통해서 삼국의 왕대력 자료가 단일하지 않았던 정황을 검증하였으며, 삼국 왕들의 즉위기 분주에 보이는 일련의 이종 왕칭은 복수의 정돈된 왕대력을 지시하는 증거로 판단되었다.
  • 영문
  • This article was focused on the examination of the data related kings of Three Kingdoms and their chronicle through the chronological tables of kings in the Samguk-sagi and Samguk-yusa. For this it is essential to consider the description principles of chronicle and the contemporary historical materials of Koryo dynasty when the texts were compiled. The principal conclusions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dates of enthronement and demise of Annals of Samguk-sagi are fundamentally correspond to those of chronological table. It means that they were compiled based on the identical materials or consensual chronological viewpoint. They had a great deal of similarities in the consistent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of defining the first year of a king's reign from the very month of one's enthronement. The contrary cases were much the same.
    Second, the dates of enthronement and demise of Annals of Samguk-sagi are fundamentally correspond to those of Samguk-yusa. Moreover, a significant fact is that the reign terms of Chronological Table of Kings were calculated including enthronement year, excluding abdication year. So, the principle of defining the first year of a king's reign was not different between Samguk-sagi and Samguk-yusa.
    Third, the contents of Chronological Table of Kings came up to the information related to the enthronement year as well as abdication year. Furthermore, the editor of Chronological Table of Kings paid attention to the chronological information of Samguk-sagi and it's original sources.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many instances indicating different sources from Samguk-sagi, in regard to describe the genealogy of kings and their relatives.
    Forth, the characteristic information of Chronological Table of Kings were connected with Geographic Records more than Royal Annals of Samguk-sagi. Accordingly, we can speculate that Samguk-sagi and Samguk-yusa must have the existing sources related to the chronological information of Three Kingdoms in common while they were composed. Just the existing sources were not unitary in their context, therefore selected information was not exposed in accordance each other.
    Fifth, Samguk-sagi has also the evidences of the existence of historical sources that applied the principle of defining the first year of a king's reign from the next year of one's enthronement. It reminds that the chronological information of Samguk-sagi was settled consistently based on the diverse sources in respect to their principle of defining the first year of a king's reign, Samguk-yusa was in the middle of such equal circumstances too.
    Sixth, diverse chronological sources are testified through the transcription related to the chronology of Three Kingdoms without difficulty. In those context, it is necessary to evaluate correlatively the historical status of Chewang-yondaeryok(Chronological tables of emperors and kings by Choe Chi-won), Haedong-kogi(Old documents of ancient Korea), and Samhan-kogi(Old documents of three Hans) which were quoted with weight in the Royal Annals of Three Kingdom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글은 『삼국사기』에 적용된 삼국의 왕대력과 『삼국유사』의 왕력편에 대한 비교 검토를 겨냥하였다. 『삼국사기』의 왕대력 관련 정보는 각 왕의 출자와 즉위 사정을 전하는 즉위기 및 졸기, 그리고 따로 작성된 年表를 아울러 확보된다. 이에 대해 『삼국유사』는 제편의 수위에 王曆을 배치하여 『삼국사기』의 연표와 근사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두 사서는 삼국의 왕대력을 공유하고 있는 바, 그 세밀한 비교 검토를 통해 각 자료의 편찬 원전 및 기년관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검토는 크게 세 영역에 걸쳐 수행되었다. 첫째, 삼국의 왕대력을 전하는 두 사서의 관련 부분에 대한 개별 검토로서, 주로 『삼국사기』 즉위기와 『삼국유사』의 왕력을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둘째, 두 사서의 삼국 왕대력 서술의 문제로서, 서술의 토대가 된 원전 자료에 대한 측면과 서술의 범위에 대한 논의로 나누어 접근하였다. 셋째, 두 사서가 기존의 왕대력 자료를 어떻게 수용했는가의 문제로서, 稱元과 紀年 그리고 왕명의 표기를 주된 검토 지표로 삼았다.
    논의의 결과 몇 가지 유효한 지침을 획득하였다. 첫째, 『삼국사기』 각 본기의 즉위기 및 졸기의 연대는 연표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자료원 혹은 합의된 기년관을 공유하였다. 둘째, 『삼국유사』 왕력에 보이는 삼국 왕들의 즉위년 및 졸년 정보 역시 기본적으로 『삼국사기』 왕대력과 일치한다. 따라서 왕력의 칭원법 자체는 『삼국사기』와 다르지 않았다. 셋째, 왕력의 기재 정보는 외형상 『삼국사기』의 왕별 즉위기와 졸기를 아우른 형태였으며, 왕력 찬자는 서술의 토대로서 『삼국사기』 왕대력 자체의 정보 혹은 그 원전 정보를 유의하고 있었다. 넷째, 왕력의 서술 범위와 관련하여 『삼국사기』의 왕대력 관련 정보를 넘어선 특이 내용들 가운데 『삼국사기』와 공유하는 것들은 대체로 삼국의 본기보다는 지리지의 정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의 왕대력 관련 기존 자료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다대한 한편, 기존의 관련 자료 자체가 이미 단일한 형태가 아니었던 까닭에 취사 과정에서 출입이 발생했던 것이다. 다섯째, 『삼국사기』에 적용된 왕대력은 왕칭이나 칭원법의 준칙을 달리 하고 있는 다종의 왕대력 관련 자료를 환경으로 하여 일괄 조정된 것이며, 『삼국유사』의 왕력 역시 그와 같은 조정안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았다. 여섯째, 신라 고유 왕칭이나 고구려와 백제 왕명 표기 방식을 통해서 삼국의 왕대력 자료가 단일하지 않았던 정황을 검증하였으며, 삼국 왕들의 즉위기 분주에 보이는 일련의 이종 왕칭은 복수의 정돈된 왕대력을 지시하는 증거로 판단되었다.
    이 논의에서 포섭하지 못한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처 합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삼국유사』 왕력 자체의 작성 시기와 작성 주체 문제이다. 둘째, 『삼국사기』의 즉위기와 졸기가 비교 대상으로 전제된 탓에 『삼국유사』 왕력에 정리된 가야와 후백제, 후고구려의 연대 정보에 대한 심층 검토가 배제되었다. 셋째, 『삼국유사』의 왕력 정보와 기이편 이하 제편의 관련 정보 비교가 충분히 병행되지 못하였다. 넷째, 마찬가지로 『삼국사기』의 즉위기 정보를 잡지 및 열전의 관련 서술과 정밀하게 비교하지 못한 점도 유사한 한계이다. 그러나 본 논의에서 획득한 칭원법을 달리 하는 왕대력 작성 방식의 검증 성과는 후속 연구를 위한 의미 있는 단서와 토대로 기여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삼국사기』의 사료적 가치와 원전 이해의 제고
    2. 『삼국유사』의 편찬 과정과 왕력의 자료적 위상 규명
    3. 고대 삼국의 왕대력 관련 자료 형태 해명에 기여
    4. 삼국시대사 복원을 위한 새로운 시각의 마련
    5. 『삼국사기』 편찬 과정에 대한 입체적 이해의 토대 확보
  • 색인어
  • 삼국사기, 삼국유사, 왕력(王曆), 고기(古記), 칭원법(稱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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