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 과제를 통해, 관련 논문 1편, 저서 1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저서는 치평요람에 대한 연구와 전거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다.
2. 먼저, 본 과제를 수행한 결과 발표된 논문의 초록은 다음과 같다.
기존 조선초기의 사학사 연구가 몇몇 학자들의 노력으로 꾸준 ...
1. 본 과제를 통해, 관련 논문 1편, 저서 1책을 출간 준비 중이다. 저서는 치평요람에 대한 연구와 전거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이다.
2. 먼저, 본 과제를 수행한 결과 발표된 논문의 초록은 다음과 같다.
기존 조선초기의 사학사 연구가 몇몇 학자들의 노력으로 꾸준히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사 전반 연구경향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우리 역사서를 중심으로 한 연구에서는 경학, 특히 『대학』 연구의 발달과 중국 성리학 역사서의 영향을 소홀히 한 단점이 없지 않고, 경학, 특히 『대학』중심으로 접근한 경우는 한국과 중국 역사서의 발달과정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사상사 일반을 다룬 경우는 구체적인 텍스트의 변천과정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치평요람』의 학술사적 지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 기존 연구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좀더 사상사적으로 체계화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보완할 수 있는 계기를 찾고자 하였다.
본고에서는 먼저 『치평요람』의 편찬 과정을 일별하고, 이어 그 범례와 목차, 인용서목을 살펴보았다. 이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왕의 연구를 조금 수정하기도 했고, 또 그 범례와 목차, 인용서목에 대한 자료비판을 겸하여 『치평요람』의 본문 내용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범례 등은 본문과 차이가 있으므로 참고는 하되, 『치평요람』의 실제 전거를 정확히 알아보려면 별도의 조사 작업이 필요하고, 각 기사별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치평요람』은 중국 춘추시대부터 元나라까지, 그리고 國史(高麗)를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각각의 서적에서 史實과 史論을 채록했는데, 이는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자치통감』, 『당감』, 『독사관견』, 『자치통감강목』 등의 역사서가 진화하는 과정의 연장에 있었다. 즉, 經史體用의 전통에 서있으면서도 당대까지의 연구 성과와 자료를 집대성한 결과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조선초기, 특히 세종대의 편찬 사업이 갖는 기획성이 『치평요람』의 편찬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치통감』과 『자치통감강목』의 주석서인 ‘思政殿訓義’를 편찬하면서 닦은 역사학 실력을 바탕으로 『치평요람』을 편찬하게끔 계획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高麗史』 편찬을 둘러싼 논제들이 함께 정리되었고, 그 결과 『치평요람』에는 폭 넓은 자료가 포함될 수 있었다.
이상의 검토에 기초하여 『치평요람』이 조선전기 사상사의 흐름에 끼친 영향에 대해 퇴계 李滉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치평요람』은 李珥에 의해 『聖學輯要』라는 책이름으로 經史體用의 전통이 조선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되기까지 지식인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았던 역사서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치평요람』이 바로 중종 11년에 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중종반정을 계기로 사림들의 정계 진출이 활발해지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본고의 가정이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판단하는 것이다.
한편, 『치평요람』의 영향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앞으로 풀어야할 연구과제는 『國朝寶鑑』과 『大學衍義輯略』의 성격일 것이다. 『국조보감』과 『대학연의집략』이 각각 『치평요람』과 형식과 내용은 물론 편찬 시기 등으로 보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점은 인정되더라도, 좀더 두 편찬물의 성격이 선명하게 연구될 필요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과제는 『치평요람』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본고도 『치평요람』의 연구를 위한 서문에 불과하고, 기존의 연구 성과에 몇 가지 사실과 관점을 더한 데 불과하므로 추후 『치평요람』의 전거와 내용에 대한 후속 연구가 불가피하다. 이 연구에는 사료비판과 분석을 위한 방법론의 개발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종대, 나아가 조선 전기의 사상사의 중요한 면모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3. 저서에 수록될 전거는, 일부파일만 샘플로 제출하고, 최종보고서(저서)를 제출할 때 파일로 제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