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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삐라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6.25전쟁과 삐라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정용욱(서울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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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39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5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6·25전쟁은 국내외적으로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국제적 성격이 차츰 강화되었고, 나중에는 전황이나 승패보다는 이념적 덧칠이 교전 당사자들에게 더 중요해졌다. 6·25전쟁은 전쟁의 이념적, 도덕적 성격이 이전 어느 전쟁보다 강조되었다. 그리고 전쟁 과정에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던 미국의 원자탄 사용 위협, 세균전 논란, 포로송환을 둘러싼 지루한 줄다리기는 어느 것이나 전황과 관련성보다 심리전 차원에서 제기되고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심리전은 당시의 이데올로기 전쟁이나 냉전문화의 형성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고, 또 어떤 역사적 특성을 가졌던가.
    본 연구가 삐라를 분석의 소재로 삼고, 또 교전 양측의 심리전을 분석 대상으로 한 이유는 삐라와 심리전이 전쟁의 성격은 물론 국가 간 관계, 국가와 사회, 국가와 민중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적절한 매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삐라가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소재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삐라는 심리전의 도구라는 뚜렷한 작성 동기를 가지고, 작성자가 수용자를 일방적으로 설득하고 강요하는 수단이라는 제한성을 가지지만 작성자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히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작성·살포 주체의 생각을 이만큼 잘 알려주는 자료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 삐라는 참전국가들의 정책문서보다 더 직선적으로 교전주체들의 의도와 지향을 나타낸다. 그리고 삐라의 살포와 선전 대상(target audience)은 적군에 한정되지 않았고, 적 측 민간인, 아군 측 민간인에까지 두루 미쳤다. 6·25전쟁 개전 직후 6개월 간 미군 삐라의 주 살포대상은 북한군과 중국군이 아니라 북한 점령지역의 민간인과 한국군이었다. 즉 민간인을 상대로 한 선무활동 역시 양측 심리전의 주요한 활동영역이었고, 그러한 사정은 삐라의 작성과 살포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삐라를 통해 교전 당사국들 간의 국가 간 관계, 우방국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교전국과 상대국 민중들 사이의 관계, 교전국들 내부의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6·25전쟁에서 교전 당사자들이 전쟁의 발발 단계에서부터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전쟁의 승리뿐만 아니라 전쟁의 성격 및 교전 상대방과 아군측, 또 국외자들에게 전쟁을 어떻게 선전하고 합리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6·25전쟁은 전쟁 발발의 책임 문제와 관련해 유사이래 어느 전쟁보다 기나긴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UN군이 자신의 전투활동을 '치안유지활동'(police action)으로 명명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양측은 용어 하나도 가려 쓸 정도로 '말의 전쟁'(war of words)에 신경을 썼다. 또 휴전협상이 그렇게 지루하게 계속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포로의 자유송환 문제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양측은 전쟁 수행과정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이용했다. 어떤 면에서 선전(propaganda)이 전쟁의 승패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리전은 6·25전쟁의 이러한 정치적, 이념적 성격을 그 어느 분야보다 잘 보여준다.
    삐라는 작성 목적에 따라 내용적 편차가 크고, 상황 구속성이 강하지만, 전장에서 살포되었던 삐라들 가운데 수집 가능한 삐라들을 모아서 그 삐라들이 지닌 일정한 전형성을 추출하고, 그 전형성이 주장하는 논리, 관련 삐라가 일으키는 심상작용의 뿌리와 그 형성과정을 추적한다면, 그러한 논리와 심상작용으로부터 교전 당사자들의 군사전략, 점령정책, 선전정책 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분석 작업은 동시에 군인과 민간인의 전쟁에 대한 기억, 이들에 의한 전쟁의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수용양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 English
  • As it was interconnected with the Cold War status of a global scale, the Korean War gave us one of the most vivid demonstrations of clashes between ideologies in recent history. Naturally in a war with such nature, the opponents not only used armies and weapons. They resorted to psychological warfare and tactics utilizing propaganda as well. Literally, the combatants made up images and spreaded them.
    In this research, the leaflets deployed and distributed by the UN forces, the North Korean army and the Chinese communist forces are mainly examined. Although the research would concentrate slightly more on the US army's tactics of psychological warfare, the primary objective for this research is to determine what kind of 'Images of War' were produced, and what were the mindsets behind such creations. By conducting such research, we would be able to identify the official ideologies that the combatants wanted to force the general public to accept. We would also be able to figure out how such images and ideologies were accepted and processed in the general public's mind. And in the end, we should be able to determine how people with war experiences got to possess and maintain memories regarding certain events that happened during the war.
    Leaflets were distinctively important methods used in psychological warfare. The US army had distributed more than 25 billion pieces of leaflet since the war began and till the truce was made. Those leaflets were designed to provide personal incentives to the recipients or persuade them to have second thoughts about their status in terms of ideological preferences. The former included examples of surrender passes or suggestions of good treatment to the potential prisoners of war. The latter contained stories with themes such as the supposed harsh treatment of the public committed by Communist regimes, or criticism against North Korea and China for being the so-called 'Puppet regimes' of the Soviet Russia.
    Many American social scientists, especially the behavioral scientists, contributed to the US army's creation of a 'Cold War Enemy'. These people served as consultants for the US army, and played an instrumental role in applying psychological warfare tactics based on behavioral science developed during the World War II, to the Korean war that in turn provided the American community of social scientists with the very first opportunity to study the Communist society firsthand. American Social scientists studied the North Korean society through the Sovietization theory, and created images of the NK based on that theory.
    Korean war is mostly remembered as a ideological warfare. As the war progressed, the inherent ideological and international nature of the war became more and more apparent, and in the end ideological propaganda became a more important issue than any other things, even including the outcome of the actual war. Korean war served as a battle field of an international scale which required the combatants to play a psychological warfare for survival. This led to the enforcement of Anti-Communism sentimentality inside the Korean society, and the sentimentality's hatching numerous political image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의 목적은 첫째, 삐라를 통해 6·25전쟁의 교전 당사자였던 미군과 북한군의 심리전을 분석해서 6·25전쟁이 가진 이념전쟁이자 문화냉전(cultural Cold War)의 성격을 해명하고, 둘째, 양측 심리전의 이념적 내용과 인식작용을 분석함으로써 삐라 심리전의 정치·군사적 의미, 심리전이 동 시기 한국 사회의 냉전문화(culture of Cold War)와 전쟁기억 형성에 끼친 영향을 규명하는 것이다.
    본 연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까지 6·25전쟁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삐라라는 새로운 자료원(資料源)을 발굴,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전세계적 차원의 냉전체제 수립과 맞물리면서 그 이전 어느 전쟁보다 이념전쟁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교전 쌍방은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과 선전(propaganda)을 매우 중시했다. 이러한 사정은 6·25전쟁이 군대와 무기의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심리전장이자 이미지 싸움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미군과 북한군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심리전 수단은 삐라였다. 실제로 미군이 전쟁 발발 이후 휴전까지 뿌린 삐라 살포량은 25억 장 가량이었고, 그것은 한반도 전부를 20번 덮는 엄청난 수량이었다.
    이와 같이 삐라가 6·25전쟁사 연구에서 가지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이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던 것은 수집의 어려움과 삐라의 자료적 특성 때문이었다. 삐라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해석은 수용자의 주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군은 심리전 작전의 효율성과 삐라의 선전효과를 높이기 위해 삐라의 내용 작성, 제작, 살포 과정을 미국의 사회과학자들을 시켜서 지속적으로 연구했으며, 또 포로 심문을 통해 삐라가 적군에게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즉 심리전 연구에 참가했던 미국인 학자들이 남긴 보고서류와 포로 심문 보고서류는 삐라 심리전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고, 삐라를 연구의 자료이자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미군 심리전 연구에 참여한 사회과학자들은 북한군의 심리전과 선전정책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고, 북한 당국과 군은 대민 선전이나 북한군내 정치교육을 위해 각종 선전자료를 생산했다. 이들 자료들은 북한군 심리전을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삐라와 심리전 관련 문헌자료의 수집은 심리전이라는 새로운 연구 영역의 개척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연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6·25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방법론의 적용 또한 가능하게 해준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으로서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지만 거시적으로 보자면 독특한 문화현상의 하나로 볼 수도 있고, 또 전쟁 자체가 그 시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생산하기도 한다. 삐라를 매개로 한 본 연구는 전쟁을 문화현상의 하나로 해석하고, 동시에 문화를 통해 전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삐라에 반영된 교전주체들의 인식과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또 삐라가 수용자에게 미친 영향과 수용자에게서 나타나는 대중심리의 차원을 분석에 포함시킴으로써 전쟁과 인간 의식, 전쟁과 문화, 역사인식과 집단기억의 문제들을 해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자료 발굴을 통한 국내 6·25전쟁사 연구의 자료원 확대
    본 연구는 이제까지 전쟁사 연구 사료로 이용되지 않았던 삐라라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본 연구를 위해 수집된 삐라와 심리전 관련 자료는 국내 6·25전쟁사 연구의 자료원을 확대하고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는 미국 국립문서관 소장 문서 등 주로 미국측 자료 수집에 크게 의존하였다.

    2) 심리전이라는 6·25전쟁사의 새로운 연구 분야·영역 개척
    본 연구는 6·25전쟁사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심리전이라는 중요한 연구분야를 개척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본 연구는 6·25전쟁기 심리전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6·25전쟁사의 인식 지평을 확대할 것이다.

    3) 문화냉전과 냉전문화의 틀을 통해 6·25전쟁사를 새로이 해석
    정치사, 군사 일변도의 6·25전쟁 연구에 '문화'라는 코드를 통한 역사 재해석은 그동안 내용 분석이 어려웠던 문화냉전과 냉전문화, 반공주의 등 문화현상과 사회의식, 여론과 대중심리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또한 연구 영역의 확충과 인식지평의 확대를 도모하였다. 이 연구는 반공주의나 냉전문화의 실체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현대 한국지성사 연구를 자극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4) 6·25전쟁사 연구 수준의 제고와 풍부한 역사상의 제공
    전체적으로 본 연구는 군사(軍史)나 외교사(外交史)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6·25전쟁 연구 현황에 비추어볼 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의미가 있고, 6·25전쟁에 대한 이해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6·25전쟁에 대한 역사상(歷史像)을 한층 풍부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5) 해외 학계와 교류
    필자는 2005년 4월 미국 코넬 대학교 에이나우디 국제학 연구소(Einaudi I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Cornell University)가 주최한 국제학술회의("Understanding North Korea: Many Faces of Juch'e," 2005. 4. 8∼4. 9)에서 [냉전기 미국의 북한 인식]("Emergence of 'North Korea' in a Cold War United States")을 발표했고, Mark Seldon, Charles Armstrong 등 미국의 아시아학, 한국학 학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다. 이 논문은 본 연구계획의 일부 주제를 활용한 것인데, 현재 에이나우디 연구소 웹사이트에 웹진 형태로 게재되었다.

    6) 단행본 간행과 연구의 대중화
    본 연구가 완성되면 단행본 한 권 분량의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가 출간되면 6·25전쟁사 연구와 한국현대사 연구에 적지 않은 자극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 Index terms
  • 6.25전쟁, 심리전, 냉전, 반공주의, 삐라, 문화냉전, 냉전문화, 소비에트학, 행태주의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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