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중국 唱和詩의 발생배경, 발생시기 및 발전과정을 고찰하고, 和韻詩로 창작되기 이전인 東晉南北朝 시기의 唱和詩 작품을 대상으로, 창화시의 내용상의 특징 창화형식 및 창화시에 대한 문인들의 인식 등을 분석했다.
唱和란, 한쪽에서 시를 짓고 다른 한 쪽에서 그에 대해 ...
본 연구는 중국 唱和詩의 발생배경, 발생시기 및 발전과정을 고찰하고, 和韻詩로 창작되기 이전인 東晉南北朝 시기의 唱和詩 작품을 대상으로, 창화시의 내용상의 특징 창화형식 및 창화시에 대한 문인들의 인식 등을 분석했다.
唱和란, 한쪽에서 시를 짓고 다른 한 쪽에서 그에 대해 시로써 酬唱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창작활동인데, 특정한 시인의 작품에 대해 다른 문인이 수창한 시가를 和詩라 하고, 원래의 작품을 唱詩라 한다. 이처럼 창화시는 최소한 2인 이상의 문인들간의 집체적 창작활동이며, 선후의 시간차를 두고 시를 지어 기증하고 그에 대해 화답하므로, 화시는 창시라는 특정한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창작하게 되어 주제나 내용면에서 서로 유사한 점을 지닌다.
창화시의 발생은 전통적 ‘함께 무리지어 교류할 수 있게 한다(可以群)’는 공용적 집체적 시가 관념을 바탕으로, 시로써 화답하는 贈答詩의 전통, 同題詩나 擬古詩와 같이 같은 주제로 상대 작품을 염두에 두고 짓던 문학 풍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체제라 할 수 있다.
창화시는 동진시대 도연명을 중심으로 처음 지어지기 시작한다. 이 때는 문인들의 교류에 주로 사용하던 贈答詩가 풍격의 典雅化, 形式化 儀式化로 인해 지나치게 格式化 되면서, 창화시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증답시가 쇠락하던 晉宋시대가 바로 도연명 등이 처음으로 창화시를 창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초기의 화시는 창시의 내용에 대해서 의미상으로 화답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唐 중기 이후의 화시가 창시의 韻만을 취해 화답하던 것과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상의 화답도 일정한 발전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특징이다. 동진의 창화시는 내용에 대한 화답보다는 시가를 주고 받는다는 형식에 더 치중했다. 내용은 自然의 철학적 이치를 탐구하던 일반 玄言詩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송대의 창화시 역시 증답시적 성격이 강하여, 창화시의 형식을 완성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齊 永明시기에 와서 沈約, 謝朓 등을 중심으로 한 문인들이 증답시 대신 창화시를 즐겨 사용하면서, 창작시를 창작하는 문인의 범위가 확대되고, 내용도 창시의 내용에 대해 제한적으로 화답하는 화시가 창작된다. 뿐만 아니라 화시의 句數도 점차 창시의 구수에 맞추어 짐으로써 형식면에서도 창시와 일치되어 간다. 梁代에 이르러 창화시는 君臣간의 창화와 文人간의 창화로 나뉘어 발전한다. 군신간의 창화는 주로 宮庭의 儀式이나 宴會에서 지어져,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儀禮的이고 형식적인 내용의 작품인 奉和詩가 지어진다. 봉화시는 이후 初唐시기까지 宮庭詩의 대표적인 체제로 자리잡는다. 문인간의 창화는 봉화시의 발전으로 수량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화시의 내용이 철저하게 창시의 내용에 대한 화답으로 제한되고, 문인간의 진실한 감정이 표현되고 교류된다. 이 시기의 창화시에도 몇몇 작품에 和韻詩가 등장하기는 하나 본격적으로 창작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화시는 창시의 주제나 표현수법, 修辭 등의 방면에서 창시의 표현예술을 반영함으로써 창시의 예술성도 반영해 낸다.
이처럼 초기의 창화시는 화시 작가가 창시에 대한 화답을 통해 정서적 동질감을 표현할 수 있고, 상대 작품에 대한 경모, 학습, 경쟁 등을 통해 문학적 재능을 연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뜻을 같이 하는 문인들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唐 중기이후 점차 唱詩의 韻을 중시하는 和韻詩가 성행하기 시작했고, 元白에 이르러 후대 문인들이 애용했던 次韻詩가 발생, 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