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결과>
본 연구는, 제Ⅰ장에서는 『금병매』에 나타난, 주인공 서문경의 官僚로서의 社會生活과 交際網을 분석하였고, 제Ⅱ장에서는 『금병매』의 지역 배경이 된 臨淸의 번영과 『금병매』를 통해 본 서문경의 經商活動, 제Ⅲ장에서는 『금병매』를 통해 본 華北의 都市 無賴의 存在樣態, 제Ⅳ장에서는 ...
<연구결과>
본 연구는, 제Ⅰ장에서는 『금병매』에 나타난, 주인공 서문경의 官僚로서의 社會生活과 交際網을 분석하였고, 제Ⅱ장에서는 『금병매』의 지역 배경이 된 臨淸의 번영과 『금병매』를 통해 본 서문경의 經商活動, 제Ⅲ장에서는 『금병매』를 통해 본 華北의 都市 無賴의 存在樣態, 제Ⅳ장에서는 『金甁梅』가 갖이는社會史的 意義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서문경은 상인가문에서 태어나, 부친이 물려준 약방을 伙計에게 맞기고 無賴생활을 하던 위인이었다. 그러다가 그 지방 무관의 딸과 결혼하고, 이윽고 중앙 고관과 인척관계인 사람에게 전처 소생의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家格을 높였다. 그 후 회뢰를 이용하여 5品 武官職에 올라 官紳의 신분이 되었다. 그러나 33세에 요절하기까지 계속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등, 여전히 무뢰의 속성을 떨쳐버리지 못하였다. 『금병매』에 묘사된 서문경의 인물상은 無賴(=惡覇), 商人에서 출발하여 官僚, 惡覇, 官商으로 요절한 위인이었다.
서문경의 교제망은 재산의 증식과 신분의 변화에 따라 점차 확대되어갔다. 처음에는 주로 현의 文武官과 胥吏들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우연한 기회를 잡아 중앙 최고의 실력자인 채 태사와도 교제하게 되었고, 그에게 회뢰하여 5품 무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종합해 보면. 서문경의 교제망은 회뢰, 좌주문생 관계, 이해 관계, 인척 관계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서문경은 불과 5-6년 사이에 10만냥에 가까운 재산을 축적하였다. 그 방법을 보면, 거저 얻은 재산이 상당히 많았고, 包攬詞訟, 說事過錢, 高利貸와 典當業 등을 통해서도 상당히 모았다. 그 과정에서 官商으로서 자기의 지위와 경제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광범하게 관료들과 사귀면서 회뢰로 통해서 이권을 얻고 關稅를 脫漏한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채 태사의 후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販鹽과 長途販運에서는 뛰어난 商才도 발휘하였다.
『금병매』에 묘사된 여러 현상, 즉 강남지역과의 장도판운, 장거리 객상의 존재, 상인으로서 상업경영에 대한 自負心, 농민의 流散과 인구의 도시 유입, 무뢰의 광범한 존재, 인신매매, 보편적인 노비소유, 사치 풍조의 만연, 三敎合一 思想의 만연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16세기의 중국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현상이었다.
『금병매』가 중국 小說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의 하나는, ‘상인이 처음으로 장편 소설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점이다. 『금병매』의 영향을 받아, 그 후로 『三言』, 『兩拍』 등 소설에서도 상인이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등장하게 되었다. 『金甁梅』의 작자는 西門慶의 形象을 창조하여 당시 상승해가던 商人의 지위를 적절하게 묘사함으로써 中國 小說史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인의 상업에 대한 自負心 표출은 대개가 상인 자신, 혹은 상인가문 출신자의 말이거나, 일부 개명 신사의 말이었고 희망사항이었다. 전통적인 관료 전제정치가 계속된 청말까지, 그러한 희망은 결국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청대에 전국의 도시에 총생하던 會館과 公所의 대표를 일부러 신사를 초빙한 것은 그때문이었다.
서문경은 단지 코믹하게 창조된 인물상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사회에는 서문경과 같은 인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금병매』에서도 묘사된 張 二官(張懋德)이나 교 대호도 서문경이나 다름없는 위인들이었다. 그러므로 단 5-6년간 서문경이 보여준 삶의 행태를 통하여 16세기의 산동사회를 엿볼 수 있고, 나아가서는 단지 史料를 통해서 보는 것 이상의, 16세기의 중국사회의 실상을 보다 생동감 있게 그려 볼 수 있는 것이다. 『금병매』는 물론 소설이기에, 모두가 작가의 創作物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내용은 중국의 16세기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활용방안>
지난 2005년 11월 19일,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된 ⌈명청사학회⌋에서 본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참석한 모든 학자들로부터 "참으로 신선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본 연구의 자극을 받아, 2006년 제1학기에 제출할 예정인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의 박사논문에도 소설을 역사연구의 자료로서 본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본 연구가 잡지에 발표되면, 첫째, 國內의 中國史學界는 물론이고, 世界의 中國史學界에 대해서도, 小說 등 문학작품을 적극적으로 역사연구에 이용하는 계기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둘째, 그 결과 명청시대의 다른 小說 내지 文學作品에 대한 歷史學的 硏究도 진행 될 수 있어, 학제 간의 협동 연구를 통한 人文學 發展의 契機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본 연구의 내용은 그 자체로서 16世紀 中國의 적나라한 社會相을 제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