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시학은 학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방법’에 ‘여성’과 ‘우리’가 배제되어 있어 기존의 미학이론이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식론적 근본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 시학은 서양미학사의 기본 전제였던 개념과 방법, 즉 보편성, 객관 ...
페미니즘 시학은 학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방법’에 ‘여성’과 ‘우리’가 배제되어 있어 기존의 미학이론이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식론적 근본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 시학은 서양미학사의 기본 전제였던 개념과 방법, 즉 보편성, 객관성의 개념들 뿐 아니라 미적 반영 및 재현의 문제, 미적 가치의 문제 등과 관련하여 학문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차이를 특수성, 객관성, 보편성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여 미적 범주로서의 특수성을 규명하였으며, 상황적 보편성과 관계주의적 객관성(합의) 개념을 설정하여, 젠더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페미니즘 시학을 제시하였다.
페미니즘 시학에서 보편성은 절대적이거나 선험적이지 않으며, ‘맥락적’으로 구성되는 ‘상황적 보편성’이다. 페미니즘 시학의 범주로서의 특수성은 여성 젠더라는 차이를 고려하는 개별성과 '우리'를 전제로 구성되는 상황적 보편성을 맥락적으로 구성하며, 이들의 통일을 구현하여 제3의 것으로 정립시킨다. 각 개별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론적 입장, 사회· 역사· 예술적 맥락을 상황적 보편성 범주로 함께 받아들인다.
상황적 보편성은 젠더, 계급, 인종 등의 ‘위치성’을 뜻하며, 상황적 보편성에 대한 ‘합의’가 관계주의적 객관성을 구성한다. 상황적 보편성은 위치성에서, 관계주의적 객관성은 합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면, 객관적 현실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아니다. 따라서 리얼리티도 하나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아니다. 상황적 보편성 개념에서 보자면 객관적 현실은 무수히 많지만, ‘우리’라는 ‘합의’ 개념에서 보자면 객관적 현실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얼리티는 ‘위치성’과 ‘합의’라는 두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로써 차이에 붙어 있는 위계적 이분법 개념인 우/열 개념의 젠더 불평등이 극복될 수 있다.
페미니즘 시학은 ‘상황적 보편성’과 ‘관계주의적 객관성’ 개념에 기초하여 맥락적으로 구성되기에, ‘구성과 발견의 변증법’이라 부를 수 있으며, 여성중심주의가 아니라 모든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새로운 미학이론이다.
또한 감성(각)을 복권하여 감성, 감각이 이성 및 사고의 대립자가 아니라 협력자이며, 더 나아가 이성, 사고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였다. 또 여성원리에 입각한 플롯들을 서사미달로 규정하는 남성 중심적 문학이론 및 플롯관을 해체하였으며, 여성원리에 입각한 문학의 내적 외적 형식을 상황적 보편성, 관계주의적 객관성의 개념으로 리얼리티 영역으로 포섭하였다.
이와 같은 새로운 페미니즘 미학의 기본 개념과 방법을 여성역사소설에 적용하여 내적 형식 및 미학원리를 규명하였다. 여성역사소설은 남성 중심적 역사관을 천명하는 남성 작가의 역사소설과 달리, 비영웅주의 역사관 및 유기체적 역사관, 적자생존의 경쟁·대립이 아닌 상생적 이념, 그리고 근대의 직선적 발전적 시간관이 아닌 순환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또 사건 중심의 역사인식이 아닌 풍속사 일상사 중심의, 비정치사적 비왕조사적 역사인식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여성역사소설의 미학원리는 보편적 플롯이라 알려진 플롯패턴을 해체하여 조각이불의 형식, 모자이크형식, 극적 구성의 방식 등 ‘산포의 형식’을 제시한다.
여성역사소설에서 보이는 역사인식은 역사의 사사화로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여성의 ‘위치성’에서 비롯된 역사인식방법으로서, 보편성의 범주로 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들 여성역사소설은 서사미달, 리얼리즘의 미달로 폄하될 것이 아니라 여성원리로 수용하고 보편성 속에서 ‘차이’의 시학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새로운 보편성, 새로운 객관성의 개념을 도출하고 이를 통해 서양 중심적 인식론과 문학이론, 남성 중심적 인식론과 문학이론의 한계를 지양하여 새로운 문학이론 및 대안적 근대를 모색할 방법을 제시하였다.
페미니즘 연구가 정합성이 부족한 방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사료적 해석이나 미시적 분석에 치중하여 대안적 기능을 상실할 때, 그것은 담론적 효과만을 억압적으로 생산할 뿐이다. 다원주의 시대에도 실천적 대안은 끊임없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