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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07534&local_id=10011977
朝鮮朝 濟州三邑 鄕校의 新創, 重創, 移建에 關한 硏究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朝鮮朝 濟州三邑 鄕校의 新創, 重創, 移建에 關한 硏究 | 2004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양진건(제주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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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399
Year(selected) 2004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6년 05월 29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6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조선조 제주삼읍 향교의 신창, 중창, 이건의 회수를 보면 제주향교가 신창 1회, 중창 6회, 이건 5회, 정의향교가 신창 1회, 중창 1회, 이건 2회, 그리고 대정향교가 신창 1회 중창 5회 이건 1회로 조사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신창은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보급하기 위하여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각 1회씩 이루어진 것이며, 중창은 비가 새거나 벽이 허물어져 보수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이건은 제주향교의 경우 화재로 1회 옮긴 것 외에 그 이유의 모두가 풍수지리적인 것이었다. 즉 명당을 찾아 이건을 했던 것이다.
    사학인 서원의 융성으로 향교가 급속하게 폐이(廢弛)되고 지방교육은 서원이 대행하다시피 하던 때에 제주삼읍 향교의 이건이 빈번했던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제주도의 경우는 육지부와는 달리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실직(實職)을 받지 못한 자들과 과거에 응시하지는 않았으나 양반 가문 출신의 자제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 향교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향교에 출입한다는 사실 자체가 특권의 상징이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향교는 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신분유지처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그래서 중창과 이건도 빈번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 English
  • A study about new construction, repairing transfer of Jeju three town's HyangGyo on the Chosŏn dynasty.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조선조 제주삼읍 향교의 신창, 중창, 이건의 회수를 보면 제주향교가 신창 1회, 중창 6회, 이건 5회, 정의향교가 신창 1회, 중창 1회, 이건 2회, 그리고 대정향교가 신창 1회 중창 5회 이건 1회로 조사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신창은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보급하기 위하여 일읍일교(一邑一校)의 원칙에 따라 각 1회씩 이루어진 것이며, 중창은 3개 향교 모두 비가 새거나 벽이 허물어져 보수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이건은 제주향교의 경우 화재로 1회 옮긴 것 외에 그 이유의 모두가 풍수지리적인 것이었다. 즉 명당을 찾아 이건을 했던 것이다.
    명당이란 풍수지리설에 근거를 둔 좋은 집터나 묏자리를 말하는데 양택(陽宅:집터)인 경우에는 주건물(主建物)의 전방이고, 음택(陰宅:묏자리)인 경우에는 무덤 앞에서 안산(案山)과의 사이 공간을 말하며,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에 둘러싸인 부분이다. 명당은 다시 내명당과 외명당으로 구분되는데 내명당은 무덤이나 건물의 바로 앞을 말하고, 외명당은 내명당 밖에 있는 넓고 평탄한 곳을 말한다. 내명당은 임금이 신하들의 조회(朝會)를 받는 정전(正殿)인 명당을 상징하고, 외명당은 곡식 창고를 뜻하여, 넓고도 앞이 활짝 트인 것을 좋은 것으로 본다. 이런 근거를 찾아 이건이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사학인 서원의 융성으로 향교가 급속하게 폐이(廢弛)되고 지방교육은 서원이 대행하다시피 하던 때에 제주삼읍 향교의 이건이 빈번했던 것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다. 제주도의 경우는 육지부와는 달리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였으나 실직(實職)을 받지 못한 자들과 과거에 응시하지는 않았으나 양반 가문 출신의 자제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 향교를 중심으로 결집되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향교에 출입한다는 사실 자체가 특권의 상징이었으며 다른 지방과는 달리 이들은 향직(鄕職)을 독점하였다. 향직은 제주도의 경우 양반임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직역(職役)이다. 어쩌면 그만큼 양반의 경우 중앙관직을 얻을 기회가 적고 과거를 통과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향교에의 직책(職責)과 향직을 중요시 여기고 신분유지의 수단으로 파악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향교는 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신분유지처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그래서 중창과 이건도 빈번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결과는 향교의 인원구성, 운영, 기능, 경제기반 등의 제도적인 문제에 치중되어 왔던 지금까지의 향교연구의 경향을 극복함은 물론 지방교육사가 새로운 학문분야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로 발굴된 1차자료에 의거한 본 연구의 결과는 종래 밝혀지지 않았던 조선조 제주삼읍의 향교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을 밀도있게 밝혀짐으로써 지방교육사로서 제주교육사는 더욱 큰 설명력과 과학성을 확보하게 됨은 물론 향교연구의 새로운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Index terms
  • 제주향교, 정의향교, 대정향교, 신창, 중창,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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