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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왕실공예품 제작장인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후기 왕실공예품 제작장인 연구 | 2004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장경희(한서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G00025
선정년도 2004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6년 05월 23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6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조선왕조의 王權을 상징하고 왕실의 威嚴을 표방하고자 제작되는 왕실용 儀物을 제작하는 匠人들은 모두가 당대 최고의 기량과 기술을 지닌 名匠들이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왕실 공예품의 품종이 다양해지고 수량도 늘어났으며, 제작하는 장인들의 종류와 숫자가 증가하면서 기술 또한 한결 발전하고 전문화되었다. 즉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는 장인의 종별이나 인원수는 조선전기의 ꡔ經國大典ꡕ(1471년)과 조선후기의 ꡔ續大典ꡕ(1744년)이나 ꡔ大典通編ꡕ(1785년) 및 ꡔ大典會通ꡕ(1865년)을 편찬할 때마다 그 내용을 달리하면서, 공예품의 品種이나 장인의 種別이 다양해짐에 따라 공예기술상의 진전도 수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왕실 공예사 자체만이 지녔던 특수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그때 그때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맞물려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때문에 조선후기 왕실공예사에 대한 연구는 나아가 그 시대의 사회적 발전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韓國史學界에서의 匠人에 관한 연구는 특정한 시기에 국한하거나, 또는 상업사와 수공업사 혹은 도자사의 일부로 다루어졌으며, 이러한 논고 또한 주로 장인들의 신분문제와 경제활동에 주목하였을 뿐이다. 즉 왕실공예품 중 服飾이나 鹵簿 및 呈才儀物 등 특정분야에 한정되어 복식사에서는 嘉禮 행사에 동원된 인물들의 복식이나 장엄한 행사를 연출하는 鹵簿에 대해서, 음악사에서는 宴禮 행사 때 베풀어진 공연예술을 呈才의 복원으로, 繪畫史에서는 嘉禮나 冊禮에 관한 儀軌圖가 확실한 연대를 지닌 왕실의 記錄畵라는 점에 관심을 갖고 畵員만을 연구하였다. 일부 공예품의 제작과 장인에 대한 연구는 手工業史에서 주로 다루어져 경제변동의 한 요인으로서 주목해왔고 건축사에서는 시대에 따라 장인들의 匠色이 세분화됨에 따라 조직 내에서 장인의 우두머리인 邊首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미술사나 공예기술사의 흐름 속에서 장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또 변모해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힌 논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도 國婚을 치르기 위해 설치하는 嘉禮 관련 嘉禮都監・冊禮都監・尊號尊崇都監・進宴進饌都監이나 國葬을 치르기 위해 설치한 國葬都監・山陵都監・殯殿魂殿都監 등과 같은 五禮儀와 관련된 도감을 비롯하여, 궁궐의 修築・增改築과 관련된 營建都監 등 그 밖의 각종 도감이 개설될 때면, 조선전기와 다름없이 장인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도감에 징발되는 장인들은 尙衣院 등 중앙관서에 소속된 京工匠과 지방의 관아에 소속한 鄕工匠들이 동원되고는 있었지만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반면에 사적 생산에 종사하는 私工匠들의 숫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후기에 설치된 도감에서는 왕실 공예품의 질을 높이고 많은 양을 짧은 기간에 제작하기 위하여, 시대가 내려 갈수록 단순협업체제를 지양하고, 장인의 장색과 공정을 세분화하여 분업적인 협업형태의 작업을 추진해 가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조선후기 왕실 공예사는 그때 그때 동원된 장인과 그들의 공예기술적 솜씨에 의해 제작된 공예품의 질적・양적인 변화를 바탕에 깔고 서술되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우선 조선후기 왕실공예사의 時期區分을 설정하는데 고심하였다. 그런데 장인과 공예품 제작의 과정이 변모하는 시기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그것의 변화시점이 續大典 등과 같은 法典이나 國朝續五禮儀 등의 儀禮書가 편찬되는 시점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에 의거 시기를 구분한 다음 첫째, 각 시기마다 도감 내의 제작처에 分屬된 장인의 종별과 인원수를 파악하고, 도감이 개설될 때마다 常設衙門과의 협력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둘째, 京工匠과 鄕工匠 및 私匠들이 공예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료를 다루는 각각의 기술상 특성에 따라 각 공정에 분속되는 형태가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를 찾아 볼 것이다. 셋째, 工藝品의 재료에 따라 제작 장인들의 匠色이 세분되고 工藝技術이 전문화되어가는 추세를 밝혀 각 시기의 공예사적인 특성을 살펴 볼 것이다.
  • 영문
  • Studies on the artist have crucial meaning in the history of Korean Art. As studies on painters have been active in the history of painting, attention to artisans in the history of crafts might lead a good evaluation on crafts. Nonetheless, the history of Korean crafts has been regarded as an anonymous history of art due to rare studies on the artists.
    In this study, the prior studies on artisans has been investigated by dividing crafts for temples and crafts for royal families in the last period of Chosun. Per crafts for Buddhism, some excellent monk artisan have been active for a long period and have left several crafts until today and results of the studies on changes in styles or on impact to the history of crafts. However, there has been little interest in the crafts and craftsman for royal families during the last period of Chosun. Not much results have been reported until late 1990's and a basic study has been attempted by the author recently.
    To evaluate crafts for royal families in the last period of Chosun, the author consider investigating the motive, work environments and social ranks of the artist as the first step and then historical dates and the artists of the crafts are the next priority. By summerizing this study with this point of view, the following open issues are presented here.
    First, if there are interests in studies on crafts for royal families in the last period of Chosun and put some effort on them, a lot of documents can be obtained. Since each KwonSulDoGam wrote the detailed processes in manufacturing crafts for royal family and they are remained until now, specific studies on craftsmen should be started from these documents.
    Second, considerably many antiquities among crafts for royal families in the period of Chosun are possessed by The Royal Museum or ChangDuk palace and five palaces and are scattered at tombs around Seoul. The manufactured dates of crafts for royal families are specified in considerably many items. Once the artists are studied, art works and artists can be matched.
    Third, once researchers of crafts for royal families can match artists and art works, the true value of the art work can be finally shown. Therefore excellent art works whose manufactured dates are specified should be designated to cultural assets under the protection of the government. Designating excellent crafts as national treasure or treasure by the law of protecting cultural assets to leave cultural properties to the next generations, is the mission of researchers for the history of craft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조선왕조의 王權을 상징하고 왕실의 威嚴을 표방하고자 제작되는 왕실용 儀物을 제작하는 匠人들은 모두가 당대 최고의 기량과 기술을 지닌 名匠들이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왕실 공예품의 품종이 다양해지고 수량도 늘어났으며, 제작하는 장인들의 종류와 숫자가 증가하면서 기술 또한 한결 발전하고 전문화되었다. 즉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는 장인의 종별이나 인원수는 조선전기의 <經國大典>(1471년)과 조선후기의 <續大典>(1744년)이나 <大典通編>(1785년) 및 <大典會通>(1865년)을 편찬할 때마다 그 내용을 달리하면서, 공예품의 品種이나 장인의 種別이 다양해짐에 따라 공예기술상의 진전도 수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왕실 공예사 자체만이 지녔던 특수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그때 그때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맞물려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때문에 조선후기 왕실공예사에 대한 연구는 나아가 그 시대의 사회적 발전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韓國史學界에서의 匠人에 관한 연구는 특정한 시기에 국한하거나, 또는 상업사와 수공업사 혹은 도자사의 일부로 다루어졌으며, 이러한 논고 또한 주로 장인들의 신분문제와 경제활동에 주목하였을 뿐이다. 즉 왕실공예품 중 服飾이나 鹵簿 및 呈才儀物 등 특정분야에 한정되어 복식사에서는 嘉禮 행사에 동원된 인물들의 복식이나 장엄한 행사를 연출하는 鹵簿에 대해서, 음악사에서는 宴禮 행사 때 베풀어진 공연예술을 呈才의 복원으로, 繪畫史에서는 嘉禮나 冊禮에 관한 儀軌圖가 확실한 연대를 지닌 왕실의 記錄畵라는 점에 관심을 갖고 畵員만을 연구하였다. 일부 공예품의 제작과 장인에 대한 연구는 手工業史에서 주로 다루어져 경제변동의 한 요인으로서 주목해왔고 건축사에서는 시대에 따라 장인들의 匠色이 세분화됨에 따라 조직 내에서 장인의 우두머리인 邊首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밝히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미술사나 공예기술사의 흐름 속에서 장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또 변모해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힌 논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도 國婚을 치르기 위해 설치하는 嘉禮 관련 嘉禮都監・冊禮都監・尊號尊崇都監・進宴進饌都監이나 國葬을 치르기 위해 설치한 國葬都監・山陵都監・殯殿魂殿都監 등과 같은 五禮儀와 관련된 도감을 비롯하여, 궁궐의 修築・增改築과 관련된 營建都監 등 그 밖의 각종 도감이 개설될 때면, 조선전기와 다름없이 장인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의 도감에 징발되는 장인들은 尙衣院 등 중앙관서에 소속된 京工匠과 지방의 관아에 소속한 鄕工匠들이 동원되고는 있었지만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반면에 사적 생산에 종사하는 私工匠들의 숫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후기에 설치된 도감에서는 왕실 공예품의 질을 높이고 많은 양을 짧은 기간에 제작하기 위하여, 시대가 내려 갈수록 단순협업체제를 지양하고, 장인의 장색과 공정을 세분화하여 분업적인 협업형태의 작업을 추진해 가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조선후기 왕실 공예사는 그때 그때 동원된 장인과 그들의 공예기술적 솜씨에 의해 제작된 공예품의 질적・양적인 변화를 바탕에 깔고 서술되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우선 조선후기 왕실공예사의 時期區分을 설정하는데 고심하였다. 그런데 장인과 공예품 제작의 과정이 변모하는 시기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그것의 변화시점이 續大典 등과 같은 法典이나 國朝續五禮儀 등의 儀禮書가 편찬되는 시점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조선시대 왕실공예품을 제작한 장인에 대한 본 연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 다음과 같이 한국 공예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본 연구가 선택한 조선시대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이 시대 장인들은 전통적인 방식의 재료와 기술로 공예품을 제작할 수 있다. 현재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전통 공예기술을 지닌 장인들은 이 시기에 원류를 두기 때문에, 현행 보유자의 원형을 탐색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연구과제라 생각한다. 따라서 조선 후기 의궤에 기록된 장인을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히 조선시대의 공예사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한국 공예사의 중핵을 탐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본 연구는 전통시대 장인의 기술과 그 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체제를 밝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공예를 비롯한 미술문화는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처지와 상황에 이해가 소중하기 때문에, 장인이 공예품을 제작할 때 어떤 처지에서 어떠한 인식을 가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왕실공예품은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하여 "都監"이라는 국가적인 체제를 운영하고 대규모의 인원과 물자를 총동원하여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장인의 조직과 운영실태를 파악하여 현재 무형문화재의 제도와 운영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셋째, 본 연구에서는 왕실공예품 중 위의용과 일상용을 대별하여 조선시대 왕실문화유산의 이중구조를 조감해 보고자 한다. 위의용 왕실공예품은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낼 시각적인 조형물인 반면, 일상용 왕실공예품은 조선의 보편적 미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물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는 한국 공예품 중 미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과 민서적 특성을 지닌 민속품으로 분류할 기반을 마련하는데 보탬이 된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본 연구는 한국 공예사, 더 나아가 한국 미술사와 한국 민속미술사 혹은 현대 전통공예까지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과제인 것이다. 본 연구가 수행하는 조선시대 장인을 문헌사료와 공예품 유물에 의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분석하게 되면 향후 한국의 근현대 전통 장인이 지니고 있는 제작기술의 원형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현재 중요무형문화재와 지방무형문화재의 제도를 개선하고 그 대안까지 생각할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 색인어
  • 조선후기, 왕실공예품, 공예사, 장인, 도감의궤, 상의원, 가례, 흉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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