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몇 가지 면에서 학문적으로 발전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은, 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이 지역 주체의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기 동아시아의 지역 문화 교통과 국민문화 형성을 기존의 서구가 아닌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분석 & ...
본 연구는 몇 가지 면에서 학문적으로 발전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은, 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이 지역 주체의 시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냉전체제기 동아시아의 지역 문화 교통과 국민문화 형성을 기존의 서구가 아닌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분석 ․ 재정리해 내었다. 우리의 인문사회학계는 그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지배체제를 유지․확장하고자 하는 구․ 미․ 일 학계의 학문성과를 ‘따라하기’와 ‘베끼기’, 그리고 무맥락적으로 한국사회에 ‘적용하기’에 급급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동아시아 권역의 냉전문화 형성의 문제를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문화적 편린들을 우리의 눈으로 생생하게 재구성하여 우리의 시야를 세계화, 보편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를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구성체로 파악하며, '문화'로서 아시아를 재구성해내었다는 점이다. 아시아를 ‘문화’로 접근하게 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전후 아시아를 어떻게 표상할 수 있을까. 전후 아시아는 탈식민화와 나름의 근대기획을 통해서 근대적 국민국가를 형성해가는 다양한 경로와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곧 냉전의 세계적 체제화 속에서 어느 한 체제에 편제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후 아시아를 표상하는 일은 냉전의 아시아화의 문제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이 과제의 문제의식이었다. 연구 결과 그 냉전의 아시아화 과정을 '문화'라고 하는 구체적 과정, 곧 아시아에서 냉전의 문화화 과정을 해명했다. 개별 연구들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냉전과 탈냉전, 냉전논리가 국민국가단위에서 국가사회의 제도를 통한 관철, 그리고 아시아 각 나라가 근대적 국민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 국민화 문제 곧 냉전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심미생활에 미시정치로서 내재화되는 지점들을 치밀하게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영미문화 중심의 문화연구 풍토에서 새로운 문화연구의 흐름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이 연구과제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다양한 아시아 역내 학자들 간의 공동연구와 개방적인 학술모임을 통해 수행될 수 있었다. 즉, 타이완의 허덩헝, 태국의 뷔리야 사왕초트 등의 아시아 학자들과 함께한 협동연구와 우본라트 시리유바삭(Ubonrat Siriyuvasak, 태국 출라롱콘 대학교), 에인절 린(Angel Lin, 홍콩중문대학교)등을 초청하여 연 집담회 등을 통해, 같은 고민을 해나가는 연구 역량과 상호교통을 거쳐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질적 심도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연계작업은 이번 과제의 일회성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에서의 학문의 비대칭적 구조를 문제삼고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아시아의 학문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본 연구소의 학문적 의무에서였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에서 문화 형성의 문제를 상상, 제도, 일상이라는 구체적이고 풍부한 현실과정 속에서 치밀하게 다루어감으로써 아시아에 의한 아시아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영미 문화연구의 시각과 방법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의 문화연구 풍토에서 아제적(亞際的 Inter Asia) 문화연구의 새 흐름을 형성했다고 하겠다.
동아시아에서 현재도 배타적 민족주의가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냉전체제하의 국민문화 형성의 메카니즘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냉전시기 일반시민의 일상 속에서 냉전문화가 국민구성의 원리로 내재화되고 구조화되는 메카니즘을 일국적 시야를 넘어 동아시아의 교차적 관점에서 풀어나감으로써 국민국가의 경계적 사고를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대안적 네트워크 형성에 기여했다. 중국, 일본, 타이완, 싱가포르, 타이, 필리핀 등의 연구진과 생산적인 대화의 장을 가져왔으며, 특히 중국 상하이대학 당대문화연구 중심의 젊은 연구자들과 2006년, 2007년 매년 연속적인 교차연구를 진행해 온 것은 공통의 지향 속에 (동)아시아 문화연구 진지를 만들고 (동)아시아적 학문적·실천적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이 연구과제의 연구 결과물을《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 1: 1940~1950년대》로 묶어서 출판하였는데, 이는 간단히 평가하면,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등의 비판적 아시아 지성들이 직접 글쓰기에 참여한, 동아시아 공동의 문화기획이라 할 수 있다. 이 출판물은 학부와 대학원 동아시아학, 동아시아문화를 강의할 때 강의 교재로 채택하여 학생들과 함께 동아시아를 상상하고 고민하고 토론할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