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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문화사: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전염병의 문화사: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영미(이화여자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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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S0013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2월 23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전근대 사회에서 전염병은 일반 질병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으므로,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적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본 연구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이해해 왔던 한국사, 그 중에서도 고려사를 전염병(epidemic disease)을 매개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전염병이 미친 정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아울러 일상과 문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탐구함으로써 고려사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먼저 고려시대 사람들이 질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고종 연간에 출간된 의학서 『鄕藥救急方』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을 寃鬼, 하늘의 징벌, 운명, 陰陽의 不調化, 과도한 근심과 스트레스 등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에 실려 있는 값비싼 약재나 병명 등을 보았을 때, 이는 일반 대중이 아니라 지배층을 위한 구급 의학서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鄕藥救急方』의 질병관은 고려 지배층의 질병관이며 몽골 침입에 대한 강화천도라는 비상시국의 산물이기 때문에, 급성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 질병보다 개인적인 질병에 대한 서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염병은 본질상 국경이 없다. 따라서 고려사회에서 疫病(전염병)이 발생한 상황은 동아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질병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려의 전염병은 주로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충렬왕대에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도 있었다. 전염병이 유행하게 되면 집권층은 의학적 대책을 실시해야 했다. 예종대의 전염병 유행 이후 빈민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동서대비원과 혜민국, 제위보 등이 설치되었다. 또 宋 의학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의학 서적을 출간, 배포하였다. 그리고 자주 유행하는 溫疫에 대해 각종 壁溫方이 제시되었고, 지배층을 중심으로 壁溫 풍습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대규모의 전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전쟁과 전염병의 유행, 인구변동의 상관성을 검토한 것이 다음 연구이다. 고려시대는 거란, 여진, 몽골, 왜구와 대대적인 전쟁을 치루었다. 475년 동안 疫病은 27회 발생했는데, 그 중에서 전쟁 기간 152년 동안 20회가 발생, 전체의 74.1%에 해당한다. 전쟁기에 전염병이 겹쳐서 발생한 것이 확인되는데, 인명 살상과 합하여 인구가 대폭 감소했을 것이다. 자료의 부족 때문에 몽골과의 전쟁기만으로 분석 대상을 좁혀 살펴보았을 때, 1281년 전쟁이 끝날 당시 고려 인구는 50년 전보다 40% 이상의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회의 기본토대인 인구 감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중세의학 수준에서는 전염병의 유행에 대하여 효과적인 의료대책을 시행할 수 없었다. 특히 전염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한다면 공포로 인한 정신적 공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컸을 것이다. 따라서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救療와 함께 민심 안정과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는 일이 시급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국가는 치병 의례를 거행해야만 했다. 미신이나 신비주의로 치부되어왔던 무속과 도교의례가 질병 치유에 활용되었다. 의약 치료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에 무속과 도교의 치유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무속, 도교의 성행과 함께, 국가종교인 불교 역시 전염병과 무관할 수 없었다.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국가는 다양한 불교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이에 대처했다.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승려들은 불보살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그 예증으로 영험전을 간행하였다. 이러한 저술은 종교적 방법으로 전염병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게 함으로써 종교적 열정을 고취하였다. 종교적 열정은 불보살의 영험을 강조하고 믿는 신비사조의 유행으로 귀결되었다. 특히 전란기 및 전염병 유행기에 佛舍利가 널리 신앙된 것은 삶의 고통이 기적을 기대하도록 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는 고려시대에 전염병의 양상과 발생 배경, 그에 대한 정치적, 문화사상적 대응책, 사회적 문화적 영향 등을 살펴본 것이다. ‘전염병’이라는 시각으로 고려사의 변화, 발전을 이해하려 한 새로운 시도이다.
  • English
  • In a premodern society, epidemic diseases had greater influence than ordinary ones, resulting in a strong impact on the disposition and cultural tendency of the population. This project aims at a new understanding of Korean history, previously presented as meta-narrative; it focuses specifically on the Koryo era, through the theme of epidemic disease. It is an attempt to analyze the political and social impact of epidemic diseases, and how they were reflected on daily routines and the culture, enabling a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Koryo.
    First of all, we have examined the ideas on disease, held by the contemporaries of the Koryo era, by concentrating on the medical treatise Hyangyakgugupbang(鄕藥救急方). The people of Koryo attributed disease to demons, heavenly judgment, fate, the discord of ying and yang, and excess anxiety and stress. The expensive medicines and names of diseases quoted by the work suggests that it was a first-aid medical treatise for the ruling class, rather than the general public. Consequently, the outlook on disease as presented in this work is the outlook of the ruling class as well as a result of national emergency of Mongolian invasion; this explained why the treatise consisted of narratives personal diseases rather than diseases on the social level, such as acute epidemic diseases.
    Epidemic disease, in its essence, is not confined to national border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examine, in a medical historical perspective that includes East Asia as a whole. Miasma and murrain crossed borders from China during wars, and the eruptive disease with red spots, in the late Koryo period was from Japan. After the occurrence of epidemic disease during the reign of Yejong, the importance of relief for the poor class was recognized, resulting in the establishment of countermeasures against disease, such as Dong-suh-dae-pi-won, Heamingook, and Jewibo. In addition, medical science of Sung China was absorbed, and medical treatises were published and distributed, and various works were suggested to counter the murrain.
    There were several full-scale wars during the era. We examine the relations between war, epidemic diseases, and population migration. Koryo had wars against the Kitans, the Jurchen, the Mongols and the Japanese. 27 epidemic diseases occurred during the 475 years, 20 of them, or a 74.1% occurring during the 152 warring years. Overlapping occurrence of several epidemics during wars, likely causing a great reduction of population, adding to the effect of war casualties. Looking at the specific period engaging in war against the Mongols, the population was reduced by over 40% by the end of the war in 1281.
    It was impossible to provide a fully effective countermeasure against epidemics, and psychological panic is very likely to have been manifest. For the rulers, there was a pressing need for stabilizing the public morale. The State applied Taoism on rituals and also on the national medical system. The rituals of Shamanism, previously scorned as superstition or mysticism, were applied in curing diseases. Since they could fill up the gap left by medical aid, the curing systems of Shamanism and Taoism could be preserved for a long time.
    Buddhism, the national religion was also involved, together with the flourishing Shamanism and Taoism. In the face of epidemic occurrences, the State practiced various Buddhist rituals, doryang(道場). During epidemics, monks emphasized the help of Bodhi-sattva to be sought in order to overcome the crisis, and published testimonies of miracles. Such narratives encouraged religious fervor, suggesting that it was possible to overcome the crisis of epidemics through religious methods. This resulted in mystic schools, emphasizing the miracles of Buddha. Miracles surrounding Buddha's bones was widely accepted during periods prior to war and during epidemics; the pain of life gave birth to the belief of miracles.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전근대 사회에서 전염병은 전쟁과 함께 사회 변동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였다. 더구나 전염병은 일반 질병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컸으므로,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적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많은 전염병이 유행하였고 사회적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존의 거대담론 중심의 연구에서 전염병은 주목받지 못한 주제였다. 본 연구에서는 전염병을 통해 고려시대를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고려시대 사람들이 질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고종 연간에 출간된 의학서 <鄕藥救急方>를 통해 분석하였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질병에 걸리는 원인을 ①寃鬼에 의한 것, ②하늘의 징벌, ③운명, ④陰陽의 不調化, ⑤과도한 근심과 스트레스 등으로 생각하였다. 이 서적에는 금이 약재로 처방되고 있기도 하다. 55개만 채택한 질병 종류에는 숙취와 斷酒 처방, 기미 주근깨, 암내 제거 등도 포함되어 있어, 지배층을 위한 구급 의학서임을 규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급성 전염병과 같은 사회적 질병보다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개인 질병에 대한 서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염병은 본질상 국경이 없기 때문에 고려 사회에서의 역병 발생을 동아시아 질병사적인 시각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고려의 전염병, 특히 장역, 온역은 주로 전쟁을 통해 중국에서, 후기의 적반창은 일본에서 유입되었다. 전염병이 유행하게 되면 집권층은 다양한 의학적 대책을 내놓게 된다. 1110년(예종 4)의 전염병 유행에서 救濟都監이 설치된 이후 빈민의료의 중요성이 부각, 동서대비원과 혜민국 제위보 등이 설치되었다. 또 송 의학서 <성혜방> 을 적극 수용하였으며 의학 서적을 출간하여 배포함으로써 임상에 사용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온역의 유행에 대해 여러 壁溫方이 제시되었고, 지배층을 중심으로 壁溫 풍습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전염병을 유행시킬 수 있는 대규모의 전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전쟁과 전염병이 겹치게 되면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되었을 것이다. 1231~1281년 몽골과의 전쟁기를 예로 들면, 침입이 시작된 1231년 고려인구는 294萬口로 추정된다. 전쟁기간 중 인구 감소는 1259년의 東北面 인구 상실, 1270년의 西北面 인구 상실, 1254년 포로로 206,800명이 잡혀간 것이 현저하다. 이들 수치를 모두 합하면 고려인구는 최소 32% 정도 감소했다. 50년 전쟁 동안 인명 살상, 전염병으로 적어도 포로의 배 이상의 인구가 감소했을 것이므로, 1281년 고려인구는 1231년 인구의 40% 이상이 감소했을 것이다.
    전쟁과 전염병에 의해 사망자가 속출한다면 공포로 인하여 정신적 공황이 일어났을 것이다. 국가에서는 救療와 함께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 시급했을 것인데, 이를 위해 종교를 동원하였다. 전염병이 빈발하고 流民이 격증했던 예종대에는 송에서 도교를 도입하여 국가의례에도 적용, 빈번하게 의례를 거행하고 국가적 의료체제 정비에 도교의학을 사용하였다. 의종대 역시 전염병이 빈발했는데, 이때에는 승려와 도사 수백 명을 모아놓고 재를 올리며 초제를 지내는 데에 치중하였다. 의약 시혜는 한정되었고, 의약의 효과도 확신할 수 없으므로 무속적 치유는 항상 존속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빈번하지는 않지만 치유를 위한 의례에 무속을 이용하였다.
    불교적 대응을 살펴보면, 국가에서는 반야도량, 점찰회, 소룡도량, 불정심도량 등의 불교 의례를 거행함으로써 이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전염병이 전란과 함께 자주 찾아오게 되면 불보살에 의탁한 위기 탈출이 더욱 강조되고, 그 예증으로 영험전이 간행된다. 전염병이 자주 발생하던 예종대와 원종대, 그리고 고려말에 편찬된 영험전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저술은 종교적 열정을 고취하였으며, 나아가 불사리 기적 등 신비사조의 유행으로 귀결된다. 신비사조가 유행하던 시기가 전란기 및 전염병 유행기와 겹친다는 사실은 삶의 고통이 기적을 기대하도록 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는 고려시대에 전염병의 양상과 발생 배경, 그에 대한 정치적, 문화사상적 대응책, 사회적 문화적 영향 등을 살펴본 것이다. ‘전염병’이라는 시각으로 고려사의 변화, 발전을 이해하려 한 새로운 시도이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전근대 사회에서 전염병은 일반 질병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으므로,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적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본 연구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이해해 왔던 한국사, 그 중에서도 고려사를 전염병(epidemic disease)을 매개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전염병이 미친 정치,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아울러 일상과 문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탐구함으로써 고려사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 결과 고려인의 질병관을 확인하였고, 고려시대 전염병의 구체적인 양상과 의학적 치료법을 복원하였다. 전염병과 질병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당대인의 세계관에 접근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염병․전쟁과 인구감소의 상호 관계를 구명하였고, 전염병 유행이 종교적 열정을 자극하여 사이 영험 등 신비사조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전염병 유행에 대한 정부의 또다른 대책은 도교ㆍ무속의례라는 치유체계였다.
    그동안 고려사 연구의 주류가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인구증가, 수탈의 심화 및 빈부의 격차 증대, 민의 流亡과 사회변동’이라는 틀안에 있었음에 비추어볼 때, 본연구가 전염병을 통하여 재구성한 고려시대의 역사상은 그동안의 도식적이고 단선적인 역사 이해의 방식에서 벗어나 연구 시각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본 연구는 현실 생활 속에서 전염병과 관련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끌어내고 고려문화의 특징을 구명하였다. 근래에 국내외 역사학계의 한 흐름은 정치사나 경제사 같은 전통적인 연구시야를 넘어서고자 시도하고 있고, 그 시도 가운데 하나가 일상사와 문화사 연구에의 관심이다. 본연구의 결과는 고려시대의 일상사나 문화사에 대한 연구를 더욱 풍성하게 하였다고 자부한다. 뿐만 아니라 본연구는 환경생태사 연구와도 깊은 관련을 갖는다. 고려시대의 자연재해― 질병― 인구― 국가 혹은 종교의 상호관계에 대한 본연구의 결과는 고려를 전후한 시대를 조망하는 데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본 연구는 의학과 역사학의 학제간 공동 연구를 통해 진행됨으로써, 기존의 분과 학문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연구성과와 학문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활용이 가능하다.

    1) 자료집 편찬과 발간
    본 과제의 수행 과정에서 수집․정리한 전염병과 관련한 생활, 문화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자료집의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의 연구과정에서 기존연구를 사료와 대조해보면, 오류, 오독도 제법 발견하였고 누락된 부분도 적지 않게 찾아내었다. 본연구가 발간할 자료집은 전문가는 물론 비전문가도 고려시대 질병사 연구에 손쉽게 접근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실로 근래에 역사학은 소비자가 생산자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등이 사회적으로 크게 관심을 끌고 있는데, 본 연구가 발간한 자료집은 이들 비전문가의 역사적 상상력을 확대하고 가공하는데 필요한 사실적인 자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2) 대학내 교양, 전문 강의 개설
    본연구는 전염병의 유행과 그로 인한 사회 변동, 그 치료책 및 치유문화로서의 의례와 신앙이라는 종교현상의 변화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였으므로, 이것을 기반으로 앞으로 학부와 대학원 교과 과정에 다양한 강좌를 개설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생태사 강좌나 질병사 강좌에서 그동안 미진했던 고려시대 부분을 본연구가 메워주어서 통사적 강의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다. 나아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도 고려 문화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
    본 연구의 추진과정에서 고려시대 사상사를 전공하는 석ㆍ박사과정생과 학부생들이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였다.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이들을 배치하고, 강독에 참여시켜 토론하는 등 과제 수행의 전과정을 함께 거쳐 왔다. 이러한 과정은 새로운 시각을 지닌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해 내는 하나의 통로로서 이바지 했다고 생각한다. 강독을 통하여 사료를 해석하는 훈련이 가능함은 물론 사료를 통계내고 도표화하는 과정은 역사적 사실의 편린들을 맥락화 하고 논리화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기대한다.
  • Index terms
  • 고려시대 일상사 질병사 질병 질병관 향약구급방 전염병 강화천도 대장도감 역병 &#30260;疫 溫疫 적반창 의학 救濟都監 태평성혜방 壁溫方 수륙재 반야도량 점찰회 소룡도량 불정심도량 관음 영험전 신비사조 반야경 천수경 불사리 무속 도교 온신 의례 나례 醮禮 역질 인구감소 호구 전쟁포로 농업노동력 流民 거란 여진 몽골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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