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라는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지역통합을 추진해 온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10여 년 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을 끌어들여 아세안+3(ASEAN+3)을 창설하고 궁극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n community)를 건설하려 하는 배 ...
본 연구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라는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지역통합을 추진해 온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10여 년 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을 끌어들여 아세안+3(ASEAN+3)을 창설하고 궁극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n community)를 건설하려 하는 배경과 요인, 추진 과정 및 방법, 그리고 실현 가능성과 그 한계를 분석한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국내외 지역연구나 국제관계 전공자들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동남아의 지역주의’(Southeast Asian regionalism)를 주된 연구 주제로 삼으면서, 동시에 이 지역주의가 동남아와 동북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East Asia)라고 하는 더 확대되고 포괄적인 지역으로 그 협력과 통합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영향을 끼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연구목적을 체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필자는 구성주의와 신기능주의 접근법 간의 과감한 접목을 시도하여 분석틀을 마련하고 (제2장), 이러한 분석틀을 본 사례 적용해 봄으로써 그간 동남아와 동아시아 국제관계 분석을 지배했던 몰이론적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본문에서는 우선 동남아 국가와 동남아인들이 민족, 국민, 지역 수준에서 형성하고 발전시켜 온 협력, 통합, 정체성을 시기별로 고찰함으로써 동남아 지역주의를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해 보았다. 시기별 고찰을 통해 개별적인 탈식민국가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출발했던 동남아에서 지역주의가 태동하여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또한 동남아 안에 머물렀던 지역협력이 어떻게 동아시아라는 더 큰 경계를 지향하게 되는지를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 동남아가 1950년대의 민족주의와 제3세계주의, 1960-70년대의 양극적 지역주의, 1980-90년대의 동남아 지역주의 등을 넘어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로 지역협력과 통합 가능성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제3, 4, 5장).
다음으로 본 연구는 동아시아로 확대된 지역협력에서 아세안과 동남아의 지역주의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지역주의의 확장이 동남아 경제의 위기와 한계 인식, 동북아의 지역적 불안정, 중국과 일본의 국력 격차 감소, 중동정치에 발이 묶인 미국의 무관심 등 절묘한 시대사적, 국제정치적 배경 속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드러난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은, 동북아 지역이나 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에 비해 동남아 지역과 약소국들이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과 통합 추진에 더욱 적극적이라는 점과 대다수 연구자들이나 실무자들이 우려하는 바와 달리 동북아와 동남아 간에 존재하는 역사적 소원함이나 문화적 이질성이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성장에 결정적인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도화는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이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실현 가능성을 높여 주는 흥미로운 역설을 보여 주고 있으며, 민족 형성과 마찬가지로 지역공동체 형성에 있어서도 단일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일체감과 그것을 건설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노력이 동북아와 동남아 간에 드러나는 역사적, 문화적 거리를 극복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6, 7장).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비관적 전망을 제시하는 연구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제8장). 비관론자들은 동남아만의 지역통합도 순탄하지 않은데다, 동아시아에는 초보 단계의 지역협력체조차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하며, 동아시아 국가들 간에 그리고 동남아와 동북아 간에는 협력을 방해하고 통합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과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동남아와 동북아 간에 그리고 회원국들 간에 존재하는 문화적 이질성, 큰 개발격차, 이웃 국가들 특히 동북아 국가들 간의 불신과 대립 등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문화적 이질성이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으로 오히려 인식의 전환에 의해 다원주의적 자원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며, 경제적 격차는 높은 상호보완성(complementarity)으로 생산적 전환이 가능하고, 지역적 갈등이나 불안정은 바로 이러한 다자주의적 지역협력의 강화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점을 논증과 경험적 증거 제시를 통해 보여 주었다. 가장 중요한 동인은 바로 지역통합을 참여하는 국민들의 지역적 정체성과 이를 주도하는 리더십 및 시민운동의 강력한 의지와 노력인 것이다. 동남아인들이 지역주의 전통이나 경험 없이 출발하여 ASEAN과 같은 훌륭한 지역협력체를 확립되었듯이, 동아시아 전반의 맥락에서도 일체감과 정체성을 창출해 내어 지역 협력과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