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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신유학과 서학의 세계관에 대한 차이점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조선후기 신유학과 서학의 세계관에 대한 차이점 | 2006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황준연(전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129
선정년도 2006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3월 22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는 조선후기 서학(천주교)의 전래에 따른 서학과 유학의 갈등 양상을 그 세계관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1780년대 천주교 관계의 서적이 수입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講習會가 열렸다. 일부 지식인들은 서학을 신앙의 차원으로 수용하였는데, 그 결과 儒家 예절의 핵심인 祭祀를 거부하는 사건으로 진화하였다. 1800년대 들어서서 ‘辛酉邪獄’(혹은 迫害), ‘己亥邪獄’(혹은 迫害)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處刑당하거나 流配되어 考終命을 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의 이면에 서로 다른 세계관이 놓여있다. 서학(천주교)의 세계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통 神學(토미즘)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구체적으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저술『천주실의』를 통하여 조선의 지식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서학의 세계관은 외재적인 초월자로서 天主가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피조물로서 식물, 동물과는 달리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不滅의 영혼(soul)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유학의 세계관은 12세기 朱熹의 성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인바, 내재적인 태극(理)이 動하여 음양의 二氣가 확산 혹은 수축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만물의 존립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가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遊氣의 상태로 잠시 머물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소멸한다고 본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 중에서, 성호 李瀷, 하빈 慎後聃, 순암 安鼎福 그리고 단산 李鎬冕 등과 같은 선비들은『천주실의』및『영언려작』등의 서학 서적에 대하여 조목을 들어가며 비판을 가하였다.
    조선 후기의 현실 세계에서 서학과 유학은 상호 ‘융화할 수 없는 차이점’을 들어내었다. 불행이 있었다면 자신이 등을 대고 있는 세계는 誤謬가 있을 수 없다는 맹목적 확신(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자존심의 확대가 결국 충돌을 빚었고, 이른바 邪獄(혹은 迫害)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본고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초래되는 문제점을 검토함으로써, 문명간의 상호이해를 촉진하자는 점에서 작성되었다.
  • 영문


  • Since the acceptance of Seohak(Western Learning; Catholicism) in late Choson dynasty, there has been some conflicts between Catholics and Neo-Confucians. This was largely due to ontological problems which I call "world view"(Welt-anschaung). And it can be said that Christian cosmology(ontology) has differed radically from Chinese cosmology. The former has been formed by religious theory of Thomas Aquinas in 13th century of Western Europe. The later could be represented by a 12th century philosopher of ChuXi(朱熹) in Song(宋) dynasty China.
    Matteo Ricci, one of the Jesuits missionaries, was dispatched into China in order to spread Catholicism. As a man of literati, Ricci showed a benevolent and respectable attitude to Chinese Confucian philosophy. However, he had to somewhat despise the theory of Taichi(太極) of the Neo-Confucianism. Naturally his understanding toward world was that of Thomism(the scholastic philosophy of Thomas Aquinas), and with this background he wrote Tianzhushiyi with Chinese letters.
    In the theory of Thomism, the God(as a transcendent being) created heaven and earth. And the human being's soul is everlasting which is never perished. On the other hand, in the ChuXi(朱熹)'s system, the universe was not created by a transcendent being, while it was formed within the power of Taichi(太極) which produces the Yin and Yang(陰陽), two Chi(二氣). And the phenomenal world is a synchronic composition of this Chi(氣).
    Ricci's Tianzhushiyi was imported around 17th century Korea, and lots of literati intentionally read this book to understand the Catholic world. By the result, many were deeply impressed with the doctrine of Catholicism. In 18th century of Choson literati such as Seongho(星湖) Lee Ik, Habin(河濱) Shin Hudam, Soonam(順菴) Ahn Jeongbok, Dansan(丹山) Lee Homyun criticised the Seohak(Catholicism) cosmology and theory of the human soul. As they did not accept scholastic world view, there could be no other way but "irreconcilable difference" between Catholics and Neo-Confucians. And by misfortune, lots of people suffered persecution by the government in the year of 1801(辛酉) and 1839(己亥).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조선 후기 17-18 세기 사회에 있어서 신유학(주자학)의 세계관을 검토하고, 동시에 서학(천주교)의 전래에 따른 서학과 유학의 갈등의 원인을 분석한다. 서로 다른 문화 체계 속에서 성장, 발전한 세계관이 상호 이해를 결여한 체로 충돌 할 때에, 그 결과는 엄청난 파괴와 인명의 손실을 겸하여 국가적 낭비를 초래하고 있음을 본다. 본 연구를 통하여 학문 및 이질 문화 혹은 종교 상호간에 이해를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
    1780년대 천주교 관계의 서적이 수입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講習會가 열렸다. 일부 지식인들은 서학을 신앙의 차원으로 수용하였는데, 그 결과 儒家 예절의 핵심인 祭祀를 거부하는 사건으로 진화하였다. 1800년대 들어서서 ‘辛酉邪獄’(혹은 迫害), ‘己亥邪獄’(혹은 迫害)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處刑당하거나 流配되어 考終命을 하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의 이면에 서로 다른 우주론, 즉 세계관이 놓여있다. 서학(천주교)의 세계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통 神學(토미즘)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구체적으로 이탈리아 예수회 소속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저술『천주실의』를 통하여 조선의 지식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서학의 세계관은 외재적인 초월자로서 天主가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인간은 피조물로서 식물, 동물과는 달리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不滅의 영혼(soul)을 지닌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서학의 세계관에 대하여 유학의 세계관은 12세기 朱熹의 성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인바, 내재적인 태극(理)이 動하여 음양의 二氣가 확산 혹은 수축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만물의 존립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가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遊氣의 상태로 잠시 머물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 소멸한다고 본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 중에서, 성호 李瀷, 하빈 慎後聃, 순암 安鼎福 그리고 단산 李鎬冕 등과 같은 선비들은『천주실의』및『영언려작』등의 서학 서적에 대하여 조목을 들어가며 비판을 가하였다.
    조선 후기의 현실 세계에서 서학과 유학은 상호 ‘융화할 수 없는 차이점’을 들어내었다. 불행이 있었다면 자신이 등을 대고 있는 세계는 誤謬가 있을 수 없다는 맹목적 확신(믿음)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자존심의 확대가 결국 충돌을 빚었고, 이른바 邪獄(혹은 迫害)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본고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초래되는 문제점을 검토함으로써, 문명간의 상호이해를 촉진하자는 점에서 작성되었으며, 어떤 세계관이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 작업이 완료되고, 그 결과물이 지상의 일정 매체를 통하여 발표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학문적, 사회적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1) 연구 성과의 국제적 확산(세계화) : 서학과 관련한 조선성리학의 연구는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이제 연구 결과물을 영문으로도 작성하여 보급하면 한국학의 국제적인 확산을 기대할 수 있다. 2) 학문, 종교 및 타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 촉진 : 본 연구과제의 결과물은 상호 논리가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 종교에 대한 배려와 협조를 기대할 수 있다. 3) 교육현장과의 연계 :
    연구의 결과물은 1회의 발표로 사장되는 것이 아니다. 본 연구결과는 학부 수준을 넘어서서 대학원 차원의 강의와 연계지을 수 있다. 또한 종교 단체 등을 통한 보급, 즉 강연 등을 통하여 활용될 것으로 본다.
  • 색인어
  • 동양철학, 유학, 서학, 천주교, 송학, 신유학, 우주론, 존재론, 세계관, 태극, 태극도설, 리, 기, 천주, 음양, 영혼, 사옥, 박해, 마테오 리치, 토마스 아퀴나스, 주희, 주돈이, 성호 이익, 하빈 신후담, 순암 안정복, 단산 이호면, 다산 정약용, 황사영, 황심, 신유사옥, 신유박해, 기해사옥, 기해박해, 을사추조적발, 반회사건, 진산사건, 황사영 백서사건, 아사미 문고, 천주실의, 주자어류, 순암문집, 지봉류설, 성호전서, 사칠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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