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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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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陷裂)의 징후. 하이너 뮐러의 브레히트 근대성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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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번호 |
A00239 |
선정년도 |
2005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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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진행현황 |
종료 |
제출상태 |
재단승인 |
등록완료일 |
2006년 11월 11일 |
연차구분 |
결과보고 |
결과보고년도 |
2006년 |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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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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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의 징후. 하이너 뮐러의 브레히트 근대성 비판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교육극『조처』에서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공산주의 이념이 주장되었다. 이 메시지는 훗날 하이너 뮐러의『헐값노동자』와『건설』에서 변증법적으로 상대화된다. 즉 이 두편의 생산극은 브 ...
함열의 징후. 하이너 뮐러의 브레히트 근대성 비판
브레히트의 대표적인 교육극『조처』에서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공산주의 이념이 주장되었다. 이 메시지는 훗날 하이너 뮐러의『헐값노동자』와『건설』에서 변증법적으로 상대화된다. 즉 이 두편의 생산극은 브레히트 사상에 대한 역사적 대립으로 보여진다. 뮐러는 집단적인 조처에 반대한 개인들의 저항에서 어떤 발전의 가능성을 보면서『조처』에서 젊은 동지의 자발적인 희생에 대한 동의를 거부한다. 브레히트와는 달리 뮐러는 희생적인 죽음이 오히려 사회주의 체제 시스템의 내면적인 붕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즉 희생은 전체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통합될 수 없는 지점을 가리킨다. 뮐러는『조처』에서 주인공 젊은 동지가 집단적인 결정에 동조한 경우에서 그 모순이 남아있으며, 이 모순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뮐러가 생존하던 당시 동의의 태도는 오히려 사회주의적 전체주의 지배에 종속되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말년에 동독의 사회주의 통일당과 계속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었으며, 뮐러는 문학적인 공중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었다. 이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지배체제가 전체주의적인 것에 기원하고 있다. 그러나 둘 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임에는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사회주의 정부와 노동자 개인 각각의 욕구들 사이는 일치할 수 없다는 시스템의 발전에 대한 다른 차원의 발전을 촉구한 경우로 보여진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1953년 노동자의 임금 인상에 대한 저항을 폭력으로 억압하였다. 모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의 완성을 위해서 항상 노동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욕구들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뮐러는 브레히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산 지상주의가 간과하는 혁신과 진보의 모더니티(modernity, die Moderne 근대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점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이론가 장 보드리야르의 ‘함열’이론과 비교될 수 있다. 보드리야르 이론의 기본은 자본주의의 전체적인 시스템이 개인의 자발적인 욕구를 삼킨다는 것이다, 생산과 재생산 모두가 이런 시스템 내부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은 어떤 반대도, 폭발적인 힘의 원천인 노동자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 과정에 종속된다는 아이러니함을 연출한다. 그래서 훗날 뮐러는 현실의 복잡한 관계에서 떠나 후기 작품의 미학적인 체험에서 파시즘적인 절망은 물론 개념에 근거한 희망의 공허함을 극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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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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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man)
Das Symptom der Implosion. Heiner Müllers Kritik an der Moderne von Brecht
Die das Opfer hervorhebende Aussage von『Die Maßnahme』wird durch die von『Der Lohndrücker』und『Der Bau』dialektisch relativiert. In den letzten beiden Produk ...
(german)
Das Symptom der Implosion. Heiner Müllers Kritik an der Moderne von Brecht
Die das Opfer hervorhebende Aussage von『Die Maßnahme』wird durch die von『Der Lohndrücker』und『Der Bau』dialektisch relativiert. In den letzten beiden Produktionsstücken von Müller wird ein entgegengesetztes Verhalten demonstriert. Er ist nicht einverstanden mit dem Opfertod des Jungen Genossen, indem er die Möglichkeit zeigt, die Reaktionen der Individuen gegen die kollektive Maßnahme auszuwerten. Anders als Brecht zeigt Müller den Zusammenhang von Opfertod und Systemzerstörung: der Opfer ist der Punkt, der vom System nicht integrierbar ist. Müller macht darauf aufmerksam, dass in jedem Einverständnis mit den Entscheidungen des Kollektives der Widerspruch als Möglichkeit enthalten bleiben und aufgehoben sein muss, wenn die Haltung des Einverständnisses einer totalitären Herrschaft unterordnet ist.
Der alte Brecht hat dauernd Krach mit der SED, und Müller wird auch mal von der literarischen Öffentlichkeit ausgeschlossen. Der Grund dafür ist es, dass der Anspruch des Sozialismus ganz totalitär ist. Brecht und Müller sind jedoch noch davon überzeugt, dass der Kommunismus die Alternative zum Kapitalismus ist. Daher hat das Problem bei ihnen eine andere Dimension zur Entwicklung des Systems, dass die Interessen von Regierung und den Arbeitern nicht deckungsgleich sind. Aber der DDR-Staat reagiert mit Gewalt gegen die Normerhöhungen im Jahr 1953 in Ostberlin. Alle Aktivisten müssen jederzeit arbeiten und auf alle eigenen Bedürfnisse nach dem Maßstab der Nützlichkeit für den Zweck des Sozialismus verzichten. Einen Schritt weiter kritisiert Müller grundsätzlich jene Moderne der Erneuerung und des Fortschritts, die das totalitäre System der Produktion übersieht. Das ist mit der postmodernen Implosion-Theorie von Jean Baudrillard vergleichbar. Seine Kritik an der Marx'schen Theorie bedeutet, dass alle Kritikbegriffe vom System aufgesaugt werden. Das System von Produktion und Reproduktion findet keinen Standpunkt mehr, der außerhalb dieses Systems liegt. Der Produktionszusammenhang produziert kein Gegenüber, kein Proletariat mehr, von dem eine sprengende Kraft ausgehen kann. Und das ist genau der Prozess, dass die Menschen selber die Geschichte machen und nicht bloß irgendwelchen geschichtlichen Wandlungen unterligen. Deswegen wird Müller die sozialistische Wirklichkeit verlassen und in ästhetischen Erlebnissen der späten Texten die faschistische Verzweiflung und die begriffliche Hoffnung überwinden.

연구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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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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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는 20세기 전반기에 서사극 극작가이자 실천가로 연극사에 한 분기점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에 관심을 기울이며 독특한 이론을 전개해왔다. 말하자면 고급예술로 동일시되며 교양계층에게 향했던 문화의 향취를 소외계층 ...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20세기 전반기에 서사극 극작가이자 실천가로 연극사에 한 분기점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영화와 같은 대중매체에 관심을 기울이며 독특한 이론을 전개해왔다. 말하자면 고급예술로 동일시되며 교양계층에게 향했던 문화의 향취를 소외계층이던 대중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전달하면서 다가올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화적 분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인 연극 프로그램과 저술의 근저에는 마르크스 사상이 있다. 외적인 사회조건과 기술의 발전은 미래를 향하여 가속화하고 있었는데 반하여 1926년 이후 1956년 사망까지 그의 사상은 여전히 사회주의의 울타리에 머뭇거렸던 것이다. 그런 그의 이념을 대표하는 작품이 "조처"(1931)이다. 이 극은 실험성이 강할 뿐 아니라 사회주의적으로 덜 계몽된 집단을 급진적으로 전환시키려는 혁명적 사상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젊은 동지가 혁명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지점이다. 브레히트는 개인의 존엄성마저도 위대한 이념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던지는 이념성을 명백히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브레히트의 사상은 1950년대 말 하이너 뮐러(1929-1995)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성찰된다. 이미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이 공표된 동독의 작가인 뮐러는 브레히트가 창단한 베를리너 앙상블에 참여하면서 브레히트를 자신의 모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그의 스승을 모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바로 이런 결별의 순간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후기 포스트모던한 극의 기반이 되고 있다. 뮐러는 젊은 동지의 숭고성에 이데올로기적 전체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지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당시 노동자들에게 조건 없는 희생과 노동을 요구하는 동독 정부를 비판한다. 이런 그의 사상은 포스트모던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의 함열 implosion 이론과 유사하다. 보드리야르도 자본주의적 체제가 개인의 변화와 혁명에 대한 욕구를 말살시킴으로써 모더니티의 종말을 예견한 바 있다. 이처럼 뮐러와 보드리야르에게서 체제적 상이성을 뛰어넘는 시대적 공통점이 비교되면서 고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브레히트를 21세기에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으며, 본 연구자도 모더니티의 비판적 계승이라는 취지 아래에서 연구를 전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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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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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는 이미 등재후보지 카프카연구(2006년 제15집, 117-138면)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본 연구의 활용방안은 다음에 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학문적인 기초는 대부분 20세기 전반기에 있는데, 브레히트의 근대성은 1968년 혁명에서 신좌파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
연구결과는 이미 등재후보지 카프카연구(2006년 제15집, 117-138면)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본 연구의 활용방안은 다음에 있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학문적인 기초는 대부분 20세기 전반기에 있는데, 브레히트의 근대성은 1968년 혁명에서 신좌파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또 브레히트의 사상은 뮐러의 후기극과 보들리야르의 시물라시옹/시물라크르에서는 자아의 허구성에 대한 대척점에 서있다. 말하자면 브레히트의 이론은 현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고전(古典)의 반열에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평생 자아가 치열한 현실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고민을 했으며, 그런 면에서 가상으로 가득한 현대 세계에 인식 출발점으로서의 자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 포스트모던한 시대는 다원화 사회이다. 인간들에게서 보이는 인식의 차이, 언술의 차이 등이 예전처럼 이데올로기나 계급이라는 기준으로 한쪽의 팔을 올려줄 수 없다. 하지만 동일성이 없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차이가 있는 것은 그 전에 동일성이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므로 브레히트에게서 보이는 인식의 동일성은 인식의 차이를 존중하는 사전 작업으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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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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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 Implosion,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모더니티 modernity/근대성 Moderne, 탈근대성 /포스트모더니티 postmodernity, 브레히트 Brecht,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 조처 die Maßnahme, 교육극 Lehrstück, 생산극 Produktionsstück
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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