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19세기 말 언문일치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일제 시대 어문 운동의 특징적 면모는, 식민지적 근대와 민족주의적 근대가 혼재된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조선어에 대한 일제의 국책(‘언문철자법’)에 협조하는 성격을 지녔는가 하면, ...
개항 이후 19세기 말 언문일치운동의 연장선 위에서 일제 시대 어문 운동의 특징적 면모는, 식민지적 근대와 민족주의적 근대가 혼재된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조선어에 대한 일제의 국책(‘언문철자법’)에 협조하는 성격을 지녔는가 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일제의 국책(‘민족어 말살 정책’)에 저항하는 성격을 지니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타력에 의한 것일지언정,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은, 이른바 ‘민족 담론’과 관련하여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식민지적 근대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민족주의적 근대에 대한 전면적 옹호가 해방 직후 담론적 상황의 중심을 이루었고, 특히 그러한 담론적 상황은 새로운 정체(政體)를 수립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리면서, 이 시기 거의 모든 논의(친일 잔재 청산, 외세 의존 배격, 봉건 잔재 청산 등)는 ‘민족 국가 담론’으로 수렴되었다. 이 때, 민족어로서의 모국어 회복 운동을 기치로 내세운 <조선어학회>의 재건(1945.8.25)은 해방기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시대적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출옥한 이극로 등을 중심으로 재결성된 <조선어학회>는 국어강습회를 개최(1945.9)하여 국어강사를 양성하였는가 하면, 곧이어 미군정청의 지원을 받아 국어교과서를 편찬(1945.12)하였고, 일제 시대의 원고를 찾아 ‘조선말 큰 사전’ 제 1권을 간행(1947.10)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시기 어문 운동에서 논쟁의 핵으로 떠오른 것은 ‘한자 폐지’ 주장이었다. 1945년 11월에 발족한 미군정청 학무국의 조선교육심의회에서는 12월 8일, 교과서의 ‘한자 폐지와 횡서’를 결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이 시기 어학자들의 입장과 태도는 상반된 차이를 보이고 있어 흥미로운데, 정태진은 한자의 점진적 폐지론을 제안하였고, 최현배는 {글자의 혁명}(1947.5)에서 한자의 즉시 폐지를 주장하였고, 조윤제는 국어 교육을 위하여 한자 폐지 반대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은 어학자들 뿐만 아니라 문인들에게 역시 중요한 사안으로 다가 왔는데, 이에 본 연구자는 그러한 한자 폐지론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의의 양상을 중심으로, 이 시기 문인들이 보여준 반응과 문제 의식을 살펴 보았다.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는 해방기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이해를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좀 더 장기적인 구도와 연구 계획 속에서는 언어와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한 자생적 담론 생성의 가능성을 마련해보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온갖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치를 내세운, 이 시기에 전개된 다양한 논의와 활동들은, 지금 현재의 우리들 삶의 조건과 경험들에도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해방기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민족국가 담론’은 오늘날 ‘민족 담론’ 혹은 ‘민족주의 담론’의 형태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재생산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표상어가 지시하는 바와 그것을 둘러싼 논의와 논쟁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민족’이라는 표상어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점에서, 민족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해방기는 이를 둘러싼 논의와 논쟁이 가장 직접적이고도 전투적으로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방기 혹은 해방기 문학을 연구하게 되면, 이를 연구하는 연구자 역시 그 시대가 보여준 열광과 환희, 혹은 폭력과 억압의 분위기 속에 휩싸이기 쉬운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시기 어문 운동을 비롯한 언어 문제(언어 의식)와의 관련성 속에서 이 시기 문학을 살펴보는 것은, 이런 면에서, 그러한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국어학과 국문학으로 갈수록 분과화되고 고립화되어 가는 연구 경향에 대한 비판적 문제 의식 속에서, 각 분과에서 축적해 온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비교 종합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방향과 접근을 모색하고자 하는 학제 간 연구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