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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南지방 사족층의 의례 관련 기록물에 관한 연구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嶺南지방 사족층의 의례 관련 기록물에 관한 연구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혁(경북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H00002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4월 3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조선시대의 사족문화를 기록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 중에서도 영남 지방의 사족들이 자신의 의례 과정에서 남긴 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관례, 혼례, 상장례, 제례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중심적인 의례였다. 그 밖에 수연 등 여타의 생활 의례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의례들은 이 만큼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사례 중 가장 간략한 의례는 관례이다. 남자의 경우는 관례이고 여자는 계례이다. 관례와 계례는 성인의 예를 책임지우기 위한 의례로서 일종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는 나이 15세에서 20세까지 관례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의례는 거의 중시되지 않았다. 관례에서 문서가 발생할 수 있는 절차는 자(字)를 지어 줄 때이다. 이것을 축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례를 길일에 택하여 하는 관례택일지가 남아있다.
    혼례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서는 청혼서, 허혼서, 혼서의 세 가지이다. 청혼서를 보낼 때에는 으레 신랑의 사주를 보낸다. 신랑의 사주는 "사성(四星)"이라고 하여 신랑의 사주를 보낸다. 피봉에 사성 혹은 사주라고 쓴다. 이에 대해 신부 측에서는 허혼서를 보낸다. 이때 연길을 함께 동봉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리고 의제를 요청하는 것은 으레 있는 투식이다. 이러한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신랑 쪽에서는 예장지를 보낸다. 이 예장지에 대한 문서식은 간찰서식집에 실려 있다. 이와 같은 혼례에는 으레 축의금이 들어오기 마련이며 그 내역을 기록한 부조기(扶助記), 사용된 물목과 비용을 최종 결산하여 기록해 둔 "흥성문(興成文)"이 남아있다.
    상장례 과정은 다른 예식에 비하여 매우 복잡하였다. 상례 과정에서 필요한 집사들을 좌목의 형식으로 기록물로 작성한초상시 집사(初喪時 執事)가 남아 있다. 상사가 발생하면 각 지역에 부고장을 돌렸다. ‘통부기(通訃記)’는 이 부고장을 보낸 지역, 이름과 전달방법 등을 기록하고 확인한 장부이다.
    이 같은 부고장을 받은 사람은 으레 조장(弔狀)을 보낸다. 조장의 서식 또한 한훤차록에 상세히 실려 있다. 위와 같은 격식적인 조장 이외에 별도의 편지인 별고라고 한다. 이는 원래의 조장에서 하지 못한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토로하도록 마련된 뜻일 것이다.
    현존하는 기록물 중에는 이와 같은 성복을 대비하여 "복제(服制)"라는 제명으로 나타난다. 장례는 장지를 정하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장지와 장례 일시를 기록한 장사택일지(葬事擇日誌)가 남아있다. 상장례 동안에 만사, 뢰문, 제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문서이다. 이러한 만사 등은 주로 죽은 귀신과의 교접을 위해 작성된 것이다. 그리고 조문한 사람들을 기록물과 그들이 부조한 금액을 적어 놓은 부조기(賻助記)가 있다.
    제례와 관련된 기록물로는 각 조상들의 기일을 적어놓은 기일(忌日)이 있다. 이 기일을 숙지하는 것이 주로 여성이므로 그들이 따로 한글로 기일을 적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시제가 사시제에서 세일제로 변화된 이후에는 세일제에 참여하는 제관이나 사용할 물목들을 기록해 놓는 경우가 있다. 수연에는 수연을 축하하는 편지[賀狀] 및 축하시를 보낸다. 조선시대에는 청탁 조차도 의례적인 서식을 통해 시행되었다. 그러한 문서를 칭념 혹은 소록이라고 한다. 칭념의 예로는 대표적으로 ① 존문, ② 墓閣請, ③山訟請을 꼽을 수 있다.
    수령과 그 지역 사족 간에는 현실적으로 상호 보족적인 관계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따라서 예를 매개로 상호간에 매우 의례적인 편지를 주고 받았다. 수령이 도임하면 으레 존문이라는 서식의 간찰을 보냈다. 그리고 사족 역시 수령이 다른 지역으로 출타하게 되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인사 편지를 올렸다.
    사족에게 의례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모든 행동거지를 포괄하고 있다. 마치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는 성현의 말씀을 거꾸로 이해하여 사족들은 모든 것을 예제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삶을 독특한 과정으로 밀어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English
  • My fundumental aim in this paper is studying about the royal scholar classes' culture in Joseon period from the standpoint of their archival cultures. Above all I will arrange their recordings concerning their rituals. Because my task will be elementary for studying royal scholar classes' culture in Joseon period.
    Adult-ceremony(冠禮), wedding-ceremony(婚禮), death-ceremony(喪葬禮), mourning-ceremony(祭禮) are representing rituals, generally called four rituals.
    Adult-ceremony(冠禮) is simpler than the others. In this ceremony the older man gives the young man a special name. Then they write the celebrating paper, named Chuk-mun(祝文). And there is another recording concerning this ceremony. this is the celecting the good day of Adult-ceremony.
    The representative papers in wedding ritual are a paper asking for wedding(請婚書), a paper allowing the request(許婚書), the formal acknowledging paper for the wedding(禮狀紙). a paper When the bride's family sending asking for wedding(請婚書), they used to send the bridegroom's bithday. It was four times(四星). The bride's family answered the paper allowing the request. Then the paper for selected wedding date was enveloped together. And they wanted to know the clothes-sizes of bridegroom's family. Again the bridegroom's family sent the formal acknowledging paper for the wedding(禮狀紙). It was usual that much celebrating money was collected. Then the recording was called the record of helping(扶助記).
    The death-ceremony(喪葬禮) was very puzzled. People prepared to help the process were recorded on the recording paper, named Chip-sa-gi(執事記). Tong-bu-gi通訃記)’ is the recording papers registering the regions and name sended the death information. the papers concerning this ritual included an amourning paper(弔狀), the paper for special clothes for the funeral, the paper for the place and time for building the tomb, mourning papers, the recording for helping money(賻助記).
    Mourning-ceremony(祭禮) produced the recording for the ancestors' deate-date(忌日). Many recording for the ancestors' deate-date(忌日) was written with Korean charaters. There are the papers of celebrating for the long life. Even asking for others, they used a special forms of papers, called Ching-nyum(稱念). The local governers used to send the letter, called Jon-mun(存問).
    The royal scholar classes' culture in Joseon period produced many recordings and papers. Most of them were concerned with their rituals. Because their life is a ritual.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본 연구의 과제는 조선시대 영남 지방 사족들의 의례 관련 기록물들을 종합 정리하여 그러한 기록물이 갖는 문헌학적 의미는 물론, 이를 바탕으로 그러한 의례가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밝히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조선시대 사족층이란 과연 어떠한 특성을 가진 계층이며 그들의 문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명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영남 지방 재지 사족들의 존재방식에 대한 관심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이태진은 일찍부터 그들이 향촌에서 행하였던 정치․경제활동에 관심을 두었다. 특히 16세기 사족의 농업경영에 주목하여 영남 사족층이 농업경영에 참여하는 능동성을 조명한 바 있다. 이 연구는 이른바 영남의 재지사족들이 중앙의 관료들이나 일본의 사무라이나 유럽의 귀족과 같이 단순한 소비계층이 아니라 경영을 통해 생산에 참여하는 계층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김건태는 17세기 이후 병작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족계층이 노비소유주의 성격에서 탈각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었음을 보여주었다. 김성우에 따르면 바로 이 시기는 국가의 신분규범인 반상제의 시행 이후 사족과 상민의 관계는 문화적 지배의 양태를 요구하였다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한편 영남지역 사족들의 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토착성은 이수건의 토성 연구에 의해 집중적으로 조명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그 결과로서 형성된 학문적 성격에 관심에 기울였다. 문화적 관점에서 이들 영남지역 사족들에 접근한 연구자는 도이힐러였다. 그의 관심은 특히 영남지역 사족들의 종법 등 가족 승계 원리와 의례의 유교적 변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사족들이 16-17세기를 거치면서 유교 문화, 그중에서도 생활의례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방식을 주자가례 등에 의거하여 변환시켰고 이를 통하여 일반 상민들과 어떻게 구별짓기를 수행할 수 있었는지를 밝히려 하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 실태 조사를 통해 과연 ‘유교화=중국화’되었는지 대한 실증적인 검토는 생략하고 있다.
    이 연구는 사실상 이와 같은 사족 연구의 뒤를 잇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족층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례, 지역적으로는 영남지방 사족층의 의례가 갖는 구체적인 실상을 비추기 위한 기초 연구로서 그들의 의례 관련 기록물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영남사족들의 구별 짓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다른 지역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일찍이 지적된 바 있다. 중국문화가 수입되는 경로가 주로 중국 사신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영남지방 사족의 경우는 경기 인근 지역보다는 중국화가 늦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만의 독자적인 토착성을 견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짐작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실태 조사에 기반 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족층의 의례에 관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들이 기층 민중과는 다른 형식의 의례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족의 의례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보수성이 강하여 자기 정체성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실상 이와 같은 사족층의 의례 연구는 인류학적 현지 조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례의 실태는 그에 관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 기록물을 통하여서만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데 기존에 사족의례 관련 기록물에 대한 실태에 대해서는 소개된 바 없으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연구도 거의 전무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 기록물들은 홀대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례관련 기록물을 분류하고 정리한 결과 사족들의 의례가 포치된 범위가 매우 넓으며 그 각각의 의례가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사족층, 그 중에서 통념상 사족으로서의 대표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영남지방 사족층의 의례가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가를 해명하는 것은 곧 그들의 존재방식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양반이란 그들에게서 의례를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힘든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의례에 대한 구체상은 그들이 남긴 의례 관련 기록물을 통해 드러나므로 그들의 의례 관련 기록물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시대 사족층 연구에 매우 긴요한 기초 작업이 되는 셈이다.
    본 연구자는 연수 과정을 통하여 조선시대 사족층에 대한 원론적인 탐구, 그 중에서도 사족에게 의례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하여 탐구하는 한편, 현존하는 영남지방 사족층의 의례 관련 기록물의 수집 및 정리에 정력을 기울였다. 특히 현존하는 기록물을 탐구하기 위하여 본 연구자는 애초에 현존하는 영남사족의 의례 기록물들을 편의상 경북대,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한 고문서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영남 소재 명문가 관련 고문서 집성, 국사편찬위원회의 울산 학성이씨 고문서 등 관련 고문서를 조사하였다. 특히 한국국학진흥원의 경우 안동 풍산김씨 고문서를 전수 조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경북대에 소장되어 있는 관련 기록물들은 남재문고 등 문고 형식으로 소장되어 있었고 개인 소장자의 기증물, 구입물이 많았다. 따라서 개별 문서들이 상호 연계가 없이 따로 따로 흩어져 있어서 사족의 생활과 그들의 의례 관련 기록물들을 연관시켜 이해하기에는 난점이 많았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한 고문서집성에 실린 의례 관련 기록물들의 경우 그 기관에서 판단한 각 집안의 중요한 고문서는 거반 실려 있었지만, 정작 의례 관련 기록물은 매우 적은 수가 실려 있었다. 그것도 편집자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만을 매우 선별적으로 수록하고 있어서 사족들의 의례와 생활을 연관시켜 이해하기에는 난점이 있다. 다행히 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풍산 김씨 고문서의 경우 전수 조사를 한 까닭에 의례 관련 문서 전체를 관찰할 수 있었다.
    풍산 김씨는 병파에 속하는 집안으로 안동 일대에서는 재력과 위세를 동시에 갖춘 집안이었다. 풍산김씨 고문서는 영감댁, 심곡파, 유경당, 죽봉종택, 참봉댁, 참사댁 등 다섯 집안의 소장 고문서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집안은 고문서를 소장하는 주체이자 소유주로서 지금까지 이들 고문서들을 보존하여 전해왔지만, 현재는 이들 고문서를 국학진흥원에 기탁하고 있는 실정이다.
    풍산김씨 소장 의례 관련 기록물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 집안 고문서의 구성 비율을 볼 때 관문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며 간찰과 의례, 경제 관련 고문서가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80%이상을 차지하였으므로 오히려 사족들의 생활 의례를 파악하는 데 적절하였다. 둘째, 시기적으로 18-19세기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그 전대의 의례 양상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웠으나 의례가 갖는 보수성을 고려해 볼 때 실태 파악을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셋째, 의례 문서 들 중 많은 부분이 간찰로 남아 있는데 이는 공식적인 예식 과정을 의논하는 내용이 많아서 그러한 예식이 갖는 의미를 추적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의 의례 관련 기록물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첫째, 사족들의 생활 의례로 파악될 수 있는 범위가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관혼상제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고 있다. 둘째, 관혼상제의 의례조차도 주자가례와는 큰 차이가 있었고 더욱이 그 의례의 단계가 더 많은 단계가 설정되어 있었다. 셋째, 의례 문서에서 경제관계 문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의례에 들어가는 금전 관계의 출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고 그런 점에서 이 기록물들은 매우 중시되었다.
    이 같은 사족 의례와 관련된 기록물들은 무엇보다 의례관련 기록물이라는 분류 체계를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문서 분류에서 기존에 치부류, 혹은 간찰로 따로따로 분리된 기록물들을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기록류들을 이용하여 그 이전에는 사족들의 의례를 주자가례나 각종 의례서에 의해서 평면적으로, 으레적으로 파악되던 것을 입체적으로,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사족층의 의례생활에 대해 더욱 풍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Index terms
  • 사족, 기록물, 의례, 종법, 문화적 지배, 차별화, 반상제, 신분규범, 병작제, 생산계층, 주자가례, 영남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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