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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시간의 이해와 冊曆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고려시대 시간의 이해와 冊曆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한정수(대진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04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중단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1월 0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려는 송·요·금 등과 실리적으로 사대조공 등의 국제관계를 설정하면서도 원간섭기와는 달리 고려 스스로 천하의 한 축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고려는 이에 따라 고려-금 간의 양국 위상이 정립되기 전 여진 등의 북방 종족을 번(蕃)으로 보기도 했고 또 팔관회적 질서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비록 형세상 금의 우월을 인정하는 사대조공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고려-금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고려의 북진정책과 자주, 군신관계에 따른 사대조공, 국왕책봉이라는 주제가 중심이 되는 한편, 대금외교정책 및 횡선사(橫宣使), 무역관계 그리고 동북아시아 국제정세 속 고려 등을 밝히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실제 사절왕래의 시기와 내용을 분석하는 데에는 미흡한 면이 있었다.
    여기서는 바로 이러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고려와 금 간에 오고갔던 사절단의 파견 및 도착이라는 왕래 시기의 주기성을 중심으로 그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사행의 명목은 모두 30여종에 달하였고, 요에서 고려에 보내진 사절은 국왕 및 태자 책봉 등을 비롯하여 17종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기적으로 오간 사절단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정사, 하절사, 진방물사,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등이었고, 요에서 고려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생신사, 횡선사 등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신사 관련 양국의 사행은 다른 정기사행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즉 고려 국왕의 생일에 맞춰 고려에 도착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감사 사절이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횡선사의 경우 대개 6월에 요의 사절이 도착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빙 차원의 사절은 대개 11월로 맞춰져 보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의 왕래 시기와 주기성에 대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였다. 고려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6월 및 11월에 행해진 고려의 국가행사 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6월의 경우 태조 휘신도량으로 인한 국왕의 제향 및 봉은사행이나 국왕의 보살계 행사, 도목정사 중 권무, 조운의 운송 시한 등이 주목되었다. 11월의 경우 국가행사는 중동팔관회를 정점으로 12월 도목정사, 이듬해 정월 정단, 상원연등에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와 물산의 집중, 교역 수요 등이 발생하여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이 이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본 것이다. 고려는 금의 정월 하례 때의 경우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진헌사, 하정단사 등 4종류의 사신단 대략 도합 100여명 이상의 사절단이 금에 들어갔다. 이들은 사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교역을 통한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고려와 금의 사절파견이 사대조공책봉이라는 정치위상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 설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각도의 ‘사행무역’이 전개됨으로써 이를 매개로 한 고려-남송-서하-금의 교역망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사절 파견이 정형화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 영문
  • In 1141 (the twentieth year from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Injong and the second year of Hwangtong, the name of the era of Geum (Jin dynasty)), Injong was first invested by Geum. In July of the same year, the relationship of investment and tribute between Goryeo and Geum was virtually made by the employment of Hwangtong and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them was regularized.
    In this study, by examining the realities of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I seek to consider its periodicity and find the meanings of it. In particular, I pay attention to the backgrounds and meanings of the times and periodicity of the missions concerning birthday and special royal edict (Hoengseon). Although the analysis is made centering on Goryeo, I think that the backgrounds of it were national ceremonies of Goryeo in July and November.
    In brief, the result of this study is the following. The diplomatic intercourse of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was not made unilaterally in the political aspect of toadyish tribute and investment. The courtesy of diplomatic missions between Goryeo and Geum followed the system of Yo (Liao Dynasty), but various foreign trades accompanying diplomatic missions were officially developed in considering the interests of Goryeo and Geum. The network of trade of Goryeo-Southern Song-Western Xia-Geum was made centering on them and the dispatch of diplomatic missions was regulariz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고려와 금국 간에 오고간 정기 사절 왕래의 내용 정리를 통해 양국간 사절왕래의 주기성을 고찰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사행의 명목은 모두 30여종에 달하였고, 요에서 고려에 보내진 사절은 국왕 및 태자 책봉 등을 비롯하여 17종에 달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기적으로 오간 사절단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된다. 고려에서 요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정사, 하절사, 진방물사,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등이었고, 요에서 고려에 보낸 정기 사행은 하생신사, 횡선사 등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생신사 관련 양국의 사행은 다른 정기사행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다. 즉 고려 국왕의 생일에 맞춰 고려에 도착하거나 혹은 이에 대한 감사 사절이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횡선사의 경우 대개 6월에 요의 사절이 도착하였지만 그에 대한 답빙 차원의 사절은 대개 11월로 맞춰져 보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의 왕래 시기와 주기성에 대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였다. 고려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기는 하나 여기서는 6월 및 11월에 행해진 고려의 국가행사 등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6월의 경우 태조 휘신도량으로 인한 국왕의 제향 및 봉은사행이나 국왕의 보살계 행사, 도목정사 중 권무, 조운의 운송 시한 등이 주목되었다. 11월의 경우 국가행사는 중동팔관회를 정점으로 12월 도목정사, 이듬해 정월 정단, 상원연등에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와 물산의 집중, 교역 수요 등이 발생하여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이 이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본 것이다. 고려는 금의 정월 하례 때의 경우 사하생신사, 사횡선사, 진헌사, 하정단사 등 4종류의 사신단 대략 도합 100여명 이상의 사절단이 금에 들어갔다. 이들은 사신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교역을 통한 이익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고려와 금의 사절파견이 사대조공책봉이라는 정치위상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 설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각도의 ‘사행무역’이 전개됨으로써 이를 매개로 한 고려-남송-서하-금의 교역망이 형성되고 그 속에서 사절 파견이 정형화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
    본 연구는 고려시대의 시간 이해와 책력이라는 연구과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려-금간 사절단 파견의 양상에 일정한 시간적 주기가 있음을 착목하여 분석한 것이다. 즉, 고려와 금국 간에 오고간 정기 사절 왕래의 내용 정리를 통해 양국간 사절왕래의 주기성을 고찰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특히 정기 사행 가운데 생신 및 횡선 관련 사절의 왕래 시기와 주기성에 대한 배경과 그 의미를 주목하였다.
    고려에서 금으로 보내진 정기 사행 중 하절사를 제외한 진방물사, 하정사, 사하생일사, 사횡선사 등은 거의 비슷한 시기인 11월을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는 특징이 나타난다. 금에서 보낸 정기 사행이라 할 하생신사의 경우는 11월(금에서는 9월 파견), 횡선사의 경우는 6월(금에서는 4월 파견)에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진방물사, 하정사, 사하생일사, 사횡선사 등은 위에서는 다루지 못하였으나 날짜를 달리하여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금에서 파견된 횡선사가 6월에 집중된 이유는 금과 고려 양측의 이해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굳이 6월이 양측에서 동의되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이해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왕조에서 6월에 행해지는 연례행사는 크게 3가지였고 나머지 한 가지로는 조운과 관련된 것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대략 6월 2일을 기준으로 한 봉은사에서의 태조 제향이고, 두 번째는 왕이 6월 15일에 궁궐에서 보살계를 받고 보살계도량을 행하는 행사가 있었다. 세 번째로는 고려의 인사행정의 하나인 ‘권무(權務)’였다. 네 번째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조세와 공물 등에 대한 조운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 많은 재물의 수요가 있어 각 지방에서 물산이 올라온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진귀한 물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6월에 집중된 횡선사 파견은 고려 왕실과 신료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으리라 보며, 반대로는 횡선사를 포함한 사절단 역시 나름대로의 교역을 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려에서의 사횡선사는 11월을 중심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11월은 농한기이기도 하지만 고려왕조 최대의 행사라 할 팔관회 등이 있고, 12월 도목정사를 앞두고 각종 국내외 물산이 모여든다는 점 등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이때 모여든 물산을 중심으로 예물이 준비되었고, 11월을 중심으로 사하생신사 등을 포함한 진방물사, 하정사, 사횡선사 등의 고려의 사절들은 금으로 들어갈 때 상당한 물품 교역을 시도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각 사신단은 서하의 경우와 비슷하게 40명 안팎으로 구성되었고 2-3일간 교역을 허락받았을 것이다. 이같은 교역을 통해 고려의 사절단들은 금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결국, 고려와 금의 사절 왕래 중 금의 하생일사와 이에 대한 고려의 사하생일사, 그리고 금의 횡선사와 사횡선사 등의 파견 시기가 일정하게 정해진 배경이 양국간의 정치외교적 관계를 포함한 다른 요소 즉 교역이라는 면이 큰 작용을 했다고 보여진다는 것이다. 즉, 고려왕조에는 11월과 6월을 중심으로 많은 국내외 물산이 모이는 시점이었으므로 이 시기를 매개로 한 고려 및 송 상인과 북방민족 간의 교역이 이루어졌고, 금의 수도에 들어간 고려의 사절들 12월 및 정월 하례 때를 중심으로 사절무역 등을 적절히 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활용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본 연구는 고려시대의 사료에 나타난 시간성을 분류하고 그 과정에서 고려-금 간 사절 왕래의 특징을 찾아 이를 분석한 것이다.
    고려시대의 경우 조선시대와 비교할 때 사료가 극히 적은 편이지만 본 고에서 시도했듯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고려시대의 성격을 찾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시간기록에 대한 이해는 사건의 발생 및 기록 시점이라는 측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것이 세시풍속과 관련한 이해였다. 그러나 이들 시각은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왜 그 시대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의 틀을 제공해 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점에서 사건의 기록 시점과 되풀이되면서 주기성을 보이고 있는 기록의 특징을 주목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으로서 고려사의 연구방법에 있어서도 일종의 통계처리가 가능하다는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즉 생활사만이 아닌 정치외교사 등에 있어서도 이러한 시간 분석이 필요하다는 연구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본 연구의 결과는 고려시대 교역사 및 국제관계사에 있어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다원적 국제질서가 지배적이었던 시기와 중국 중심
  • 색인어
  • 칭신봉표(稱臣奉表), 사대조공(事大朝貢), 사절왕래(使節往來), 하생신사(賀生辰使), 사하생신사(謝賀生辰使), 횡선사(橫宣使), 사횡선사(謝橫宣使), 주기성(週期性), 사행무역(使行貿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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