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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여성 :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본 프랑스 가족정책의 변화와 여성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전쟁과 여성 :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본 프랑스 가족정책의 변화와 여성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신행선(부산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13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9년 06월 28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9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최초의 현대전이자 전면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활발한 동원이 불가피하였다. 여성들은 금속, 화학 등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간주되어 그때까지 여성들에게 금지되었던 군수공장은 물론 은행 같은 사무직 노동이나 상업 활동에도 종사하는 등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일부 여성들이 직물공장에서 군수공장으로 이동하기도 하였지만 기혼 여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군수공장에서 일하였다. 국가에서 지급하였던 수당이 미미하여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에 턱없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저출산과 인구감소에 대한 우려가 컸던 프랑스는 전쟁 기간 동안에도 여성의 출산문제에 대한 논의가 강하였다. 그리하여 여성들이 군수공장에서 노동을 하는 등 전쟁에 동원 되었을때 ‘출산증진주의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전쟁 동원과 출산, 육아라는 여성의 이중적 의무와 역할에 대하여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나갈 무렵 프랑스의 국방부 장관이 군수공장 여성 노동자들에게 출산이라는 애국적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공장을 떠나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한 것은 놀랄 만 한 일이 아니다. 동원해제령과 더불어 여성들은 반강제적으로 일터를 떠나 다시 가정으로 되돌아가서 여성 본래의 기능인 출산 및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의 기능에 충실해야 했다. 전쟁 후반부터는 남녀의 역할 분담을 오히려 공고히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세하였으며 남성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많은 당대 여성들이 전후 여성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변화를 느꼈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쟁은 개혁적인 면 보다는 보수적인 측면을 더 부각시켰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쟁기간 동안의 여성동원은 개인적인 일이었던 여성의 출산, 육아 문제가 정부에서 관심을 가지고 관여해야 하는 공적인 일로 바뀌는 계기를 만들어내었다.
    비시정부는 구체제적 위계질서를 선호하였으며 가족 내에서의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성’을 강조되었다. 제3공화국의 무능과 특히 양차대전 사이의 무질서로 인하여 프랑스의 가족이 바로 서지 못하고 붕괴되면서 결국 프랑스의 패배와 독일의 점령을 초래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족 붕괴의 원인이 여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비시정부는 모든 프랑스인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질서와 조화가 충만한 과거의 프랑스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였다. 또한 남녀의 자연적 성별의 차이를 재확인시키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원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민족혁명을 완수하는 결정적 요인이라 간주하였다.
  • 영문
  • The First World War, regarded as the first modern and total war, demanded active participation of both men and women. Women began to work not only in the munitions factories producing metal and chemical items but also in such sectors as banking and commerce, both of which had been monopolized by men. Most female laborers including married ones worked in munitions factories, and some women having worked in textile factories got their new workplace in munitions factories. Financial reasons prevailed. The family allowance given by the state was insufficient to meet the living costs.
    Meanwhile, the decline of birth rate and population became a serious issue even at the time of the War. Those who called for the increase of birth rate were concerned about the burdensome dual obligations of women: participation in wartime works and giving birth to and raising children. It should not be surprising therefore that the Minister of Defense urged, as the War drew to an end, female factory laborers to return home for their patriotic maternal duties. In the event, women were demobilized and forced to leave their workplace.
    It seems that the influence of the First World War on gender was conservative rather than innovative, although many contemporary French women thought that the War contributed to the promotion of freedom and liberty of women. However, the wartime mobilization made the French state recognize the social importance of the female roles in the family in a new direction. Having been considered to be a private sphere, family with the mother as its center now began to be appreciated as a significant public sphere deserving of the concern of the authorities.
    A great part of the historical writing of the Vichy France devoted to the study of the nature of regime and the Collaboration until now. But it is not easy to find the studies of particular institutions or policies of Vichy government and the analysis of legislation and propaganda itself.
    Vichy emerged from the stunning defeat by Nazi Germany actively seeking to reshape France. The terrible disorder of the Third Republic, especially interwar years, had supposedly led to the inevitable catastrophe of Defeat and Occupation. Vichy wanted to return France to an illustrious and harmonious past, whose citizens all knew their place and fulfilled their responsibilities, where the order prevailed. French society and culture were to be thoroughly rehabilitated for the Vichy activists and administrators. Restoring French men and women to their naturally differentiated destinies, restoring French masculinity and feminity, was therefore a key priority, underlying and generating the 'National Revolution' itself.
    Vichy defined women's role and status by reference to an inseparable maternal and familial functions. Woman was defined by her function of wife, mother and guardian of private space. Thus mobilizing family was at the heart of Vichy's politics of renewal. That may be a Vichy's original contribution to French political history. But it is difficult for the Vichy France to realize their ambitious pro-family program and to take concrete policies initiatives because of the financial difficulties resulted from the extraordinary circumstances of the Defeat, continuing war and Occupation. Furthermore despite the continuing activism and the best efforts of the Vichy government, the hopes for a family renovation had completely fades by early 1942. That is the paradoxes of Vichy'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전쟁과 여성, 가족’이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해서 20세기 전반기 프랑스의 가족 정책을 통하여 여성문제를 검토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20세기의 가장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던 두 차례의 대 전쟁의 경험과 가족정책이라는 변수가 여성에 대한 이미지 및 여성의 법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와 역할 변화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그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현재의 상황과 어떻게 연결하여 볼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20세기 전반기의 두 세계대전은 현대 서양의 여성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우선 전, 후방의 구분이 없는 전체전의 성격을 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가정은 여성의 영역이고 전쟁은 남성의 일이라는 남녀 역할분담의 신화가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후에 서구 여러 나라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됨으로써 여성이 정치적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명손실로 서구 각국이 출생률에 대하여 초미의 관심을 보이면서 여성노동, 출산, 육아, 생활보조와 관련된 가족정책, 사회보장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로써 사적인 영역이었던 가족은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하는 정치적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여성들이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가족에 대한 정부의 관심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비시정부가 그 막을 고하고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 시기까지 전쟁의 경험과 가족정책이 여성의 ‘정치화’와 관련하여 어떠한 변수로 작용하였는지를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1차년도에서는 비시정부의 가족-여성 정책에 대한 연구를, 2차년도에서는 양차대전 사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변화를 다루었다. 특히 여기에서는 여성문제와 관련한 페미니스트 단체나 지도자들의 입장만이 분석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안티페미니스트 단체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3차년도에서는 1차대전 동안에 여성이 전선에 나간 남성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 및 양육자로서의 어머니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통하여 정부가 여성, 가족 정책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전쟁, 가족,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20세기 전반부에 프랑스의 가정, 사회, 국가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정의되었으며, 그것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페미니스트 운동은 가족정책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가족정책이 본격적으로 실현됨에 따라 여성의 권리가 어떠한 변화와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편 기존의 연구들이 참정권 획득과 관련된 한정된 시각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서 본 연구과제는 제1차 세계대전 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이르는 기간 동안의 가족-여성정책,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변수로 하여 간접적으로 여성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이는 여성의 정치적 권리 획득이라는 제한된 범위를 벗어나 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재구성해 볼 수 있게 하였다.
    본 연구과제의 1차년도 연구결과는 <프랑스 비시정부 시기 가족정책과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서양사론에, 그리고 2차년도 연구결과는 2007년 10월 한국프랑스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되어 <양차대전 사이 프랑스 페미니즘과 출산에 대한 담론>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프랑스학논집>에 실렸다. 마지막으로 3차년도 연구결과는 <제1차세계대전 시기 프랑스 여성의 전쟁동원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곧 출간될 서양사론에 실리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사 분야는 참정권 획득을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 및 그와 관련된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하였던 영미권에 대한 연구가 두드러진다. 또한 프랑스 여성 및 여성사를 다루고 있는 연구서들의 경우 그 시기가 대부분 프랑스 혁명에 국한되어 있거나 혹은 프랑스 페미니즘의 개화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를 다루고 있다. 이에 반하여 본 연구과제는 20세기 전반기의 프랑스 사회에 그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본 연구과제의 결과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시기적인 면에서 더 확장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양여성사, 페미니즘 및 서양근현대사, 프랑스사 관심자 및 전공자들의 수업 활용 및 관련시기의 서양사 전공자들을 위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색인어
  • 전쟁, 가족, 가족정책, 여성, 1차대전, 2차대전, 비시정부, 페미니스트, 여성노동, 갸르손, 여성노동, 네오맬더스주의, 출산, 가족수당, 국민동맹, 인구정책, 출산장려주의, 안티페미니스트, 산아제한, 가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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