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연구는 2005년 12월부터 과제가 확정된 이후 "자료수집-→자료분류-→내용확인-→ 연구진행-→ 연구논문 작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90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해외 기행문을 지역별, 시기별, 주체별로 수집, 분류한 자료집은 A4용지 800매 분량의 가제본 형태로 ...
<초록>
본 연구는 2005년 12월부터 과제가 확정된 이후 "자료수집-→자료분류-→내용확인-→ 연구진행-→ 연구논문 작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90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해외 기행문을 지역별, 시기별, 주체별로 수집, 분류한 자료집은 A4용지 800매 분량의 가제본 형태로 확보했다. 이상의 지역별 분류 결과 각기 지역별로 기행문 내용 또는 심상지리상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기준에서의 심상지리 중 본고에서는 서구(미국과 유럽) 기행문 중 20년대와 30년대를 비교 고찰했다. 1920년대의 서구지역 기행문은 첫째, 여정별 여로 형식, 둘째, 유학생의 고학체험이 상세히 기술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지역별 여로 형식을 갖는 것으로 박승철과 정석태의 글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기행문은 유학을 가는 중에, 혹은 유학의 와중에 유럽제국을 여행하면서 각 국가의 대표적 관광지, 명승지, 박물관, 건국기념물 등을 방문하는 여정을 취한다. 나라마다 거치게 되는 건국영웅 기념비, 기념탑, 왕조 중심의 문화의 위용을 자랑하는 박물관 코스야말로 제국주의적 기념비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에 대한 학습적 내면화의 여행은 제국의 학습=문명화=식민화라는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형성의 한 경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20년대의 서구 기행문의 또 다른 특징은 학위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고학체험에서 생활비와 학자금을 벌기위한 노동체험을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한다는 점이다. 이는 주로 미국유학체험기에서 나타난다. 컬럼비아 대학의 류청의 <북미에 고학오년간>(동광, 1926. 10), 노정일의 글 <산 넘고 물 건너>는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의 고학체험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글에는 학위를 이수하기 위한 과정의 고난과, 거대문명국 미국에서의 적응하는데 다른 문화적 충격 등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즉 심리적 상처를 크게 노출시키지 않은 채 기술되고 있다. 서구 중에서도 유럽이 주로 명승지와 예술품, 박물관 중심의 여로형 기행문이었음에 비해 미국지역은 노동과 고학체험이 크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1930년대 들어 서구 유학생 기행문에서 20년대의 경향 고학체험과 여로형 기행문이 사라진다. 1930년대 초반에는 다른 방식의 기행문이 등장하고, 이후 30년대 후반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세계인식이 급격히 변모하면서 또 한 번 크게 변모한다. 이런 20년대 두 가지 경향이 사라지고 새로 나타난 30년대의 서구 기행문의 경향은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여로형 여정이 아닌 특정한 테마를 특화하는 기행문-축제, 노동절, 집시촌 경험, 이색적 나체촌, 올림픽 마라톤 대회 중심 등등 특정한 체험을 특화하는 기행문이 증가한다. 둘째, 직업별(전공별) 특징이 농후하게 드러난다. 20년대 기행문이 전공을 불문하고 ‘고학’을 통해 낯선 국가에서 생존과 학위에 몰두하는 생계형이 주류였다면, 이 시기 기행문은 그런 생계형으로부터 거리를 둔 전공별 특징이 부각된다. 셋째,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미국 서부 유럽중심의 기행문이 1930년대 후반 현격하게 변모한다는 것 만주 등 북지 담론과 동남아 지역에 대한 남방 담론이 새롭게 나타나고 증가한 것 외에, 서구 지역에 대해서 파리, 미국 중심의 기행문이 사라지고 독일(백림) 중심의 기행문 및 정치적 제도적 국가의 체제변화에 대한 담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상은 서구(미국과 유럽)지역을 대상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 기행문만을 대상으로 한 특징들이다. 이런 특징들은 다른 지역과의 비교를 통해 더 보충되어야한다. 예컨대 미국유학생으로 신문으로 중남미 여행기를 쓴 정인과의 브라질 기행문에 담긴 모험기적 성격, 그리고 30년대 후반에 전쟁담론 속에 등장하는 남방에 대한 다양한 심상지리가 더 분석되고, 이를 서구와 비교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외부 전유의 심상지리와 자기구성의 방식이 더 정교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 기행문과 함께, 여행의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있을 수밖에 없는, 그러나 글쓰기에서는 은폐되거나 삭제된 ‘언어적 정체성’의 문제도 연구되어야한다고 본다. 예컨대 여행 중에 필담경험의 답답함을 고백한 허헌의 기행문이나, 외국어표기 때문에 일본 밀정으로 오해되어 체포·구금되었던 경험을 쓴 정인과의 기행문, 그리고 무용공연을 기획하면서 언어적 곤란을 고백하는 최승희의 기행문은, 지역 전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또 다른 정체성 구성요소로서의 언어의 문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보인다. 이상의 문제들은 차후의 연구논문을 통해 각기 구체화할 몫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