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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1883~1894) 청국 천진주재대원의 파견과 외교통상 활동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한국 근대(1883~1894) 청국 천진주재대원의 파견과 외교통상 활동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한철호(동국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A00052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5월 31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청국은 임오군란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조선의 내정까지 직접 간섭함으로써 내정과 외교의 자주라는 전통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조선에 대한 청국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제국주의적 성격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러한 조청관계의 특수성은 임오군란 후 체결된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제1조를 살펴보면, 양국은 전통적인 事大使行을 그대로 유지한 채 통상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청국의 북양대신이 商務委員을, 조선국왕이 大員을 각각 파견토록 정해 놓았다. 조선국왕과 북양대신의 지위를 대등하게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조선이 청국의 속방임을 명문화했던 것이다. 일본이나 서구 열강과는 달리 일반 公使보다 격이 낮은 ‘商務委員’을 상호 파견 주차시키되, 조선의 대원이 北京이 아닌 천진에 주재토록 것도 이 때문이다.
    주진공서의 인원은 대원(독리), 종사관, 서기관, 번역관, 통사, 청국인 막우 각각 1인, 그리고 隨從員으로 독리의 비서와 하인 각각 1人, 종사관의 하인 1人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초대 주진대원이 부임했던 1884년 3월부터 청일전쟁의 발발로 실질적인 역할을 상실했던 1894년 6월까지 약 10년 3개월 동안 4명의 주진대원이 실제로 천진에 근무했던 기간은 기껏해야 3년이 채 넘지 않았다. 비록 주진대원은 중대사를 처리하기 위해 수시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임기를 3년으로 정한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중대사나 병으로 귀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무단으로 휴가로 돌아가서는 중직을 맡을 수 없었다는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주진공서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 반면 종사관은 4개월만에 돌아왔던 김가진을 제외하면 거의 공백없이 업무를 교대하였을 뿐 아니라 장기간 천진에 근무하였다. 또한 임시직이었던 서기관은 초대 주진대원 일행에 포함되었을 뿐 그 이후로는 파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주진공서는 실제로 종사관의 서리 체제로 운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주진대원을 비롯한 종사관, 서기관 등에 대한 인사권을 외아문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아니라 내아문 계통의 통리군국사무아문과 내무부가 행사하였다는 점이다. 주진대원은 단순히 통상 업무에 주력하는 총영사뿐 아니라 실질적인 공사로서 한성개잔조항 개정, 袁世凱 소환운동, 박정양의 선처 등 조청 양국 간의 당면한 정치적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특파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통리교섭통상사문아문보다 상대적으로 청국의 간섭을 덜받는 내무부가 주진대원를 비롯해서 일본, 미국, 유럽주재 상주 공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는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통리군국사무아문․내무부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와 인사권과 실제 업무를 각각 분장하는 차원을 넘어 반청 정책추진을 주도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진대원들은 재임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주진대원들은 天津과 北京 등을 비롯한 중국의 정세 및 각국 외교사절의 동향, 청국 개항장들의 상황과 상해주재 찰리통상사무의 파견 및 청국상인의 용산이전문제에 대한 협의, 조선상인의 무역 실태 보고와 불법 밀무역상의 인도 교섭, 천진주둔 군대의 교련 및 무기의 제조현황 파악, 미국상인으로부터의 총탄 수입, ‘영약삼단’의 미준수로 소환된 주미전권공사 朴定陽에 대한 李鴻章의 선처 의뢰, 김옥균 암살사건 상황 보고 등 단순히 양국간의 통상뿐 아니라 외교를 비롯한 각종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고종폐위음모 이후 袁世凱와 高宗 등 집권층의 불화가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주진대원이 袁世凱소환운동을 펼쳤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차관 袁世凱의 1차 임기가 만료되는 1888년 8월 초 주진종사관 成岐運이 그의 후임으로 馬建常을 임명해달라고 의뢰한 데 이어, 1889년 5월 21일에 신임 독리통상사무 金明圭도 袁世凱의 조선내정간섭이 양국관계에 커다란 손해를 입히고 있으므로 그의 후임으로 ‘公正明識’한 자를 선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비록 이 시도는 李鴻章의 거부로 실패하고 말았다.
  • English
  •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diplomatic and trade affairs of Korean Consuls to Tientsin in China in 1883~1894 in order to apprehend the historical proc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China. By the 'Jocheong sangmin suryuk muyeok jangjeong'('Regulations for Maritime and Overland Trade between Korea and China') Korea dispatched Korean Consuls to Tientsin not Beijing. Because China would controll Korea in traditional tributary system. Legation of Korean Consuls to Tientsin was managed by Korean Consuls, jongsakean, seogikwan. But actually jongsakean played an important role. Korean Consuls to Tientsin performed wide-ranged duties regarding the an urgent question between Korea and China. However, in spite of diplomatic activities, the documents shows that Korean Consuls to Tientsin failed in solving such exigent affairs. The result was mainly due to the inferiority in national power and the lack of man-monetary power, and the intervention and military, economic, political pressure of China.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청국은 임오군란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조선의 내정까지 직접 간섭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내정과 외교의 자주라는 전통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조선에 대한 청국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제국주의적 성격으로 변질되었는데, 이러한 조청관계의 특수성은 임오군란 후 체결된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1882)에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제1조를 살펴보면, 양국은 전통적인 事大使行을 그대로 유지한 채 통상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청국의 북양대신이 商務委員을, 조선국왕이 大員을 각각 파견토록 정해 놓았다. 조선국왕과 북양대신의 지위를 대등하게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조선이 청국의 속방임을 명문화했던 것이다. 일본이나 서구 열강과는 달리 일반 公使보다 격이 낮은 ‘商務委員’을 상호 파견․주차시키되, 조선의 대원이 北京이 아닌 천진에 주재토록 것도 이 때문이다.
    주진공서의 인원은 대원(독리), 종사관, 서기관, 번역관, 통사, 청국인 막우 각각 1인, 그리고 隨從員으로 독리의 伴倘과 跟役 각각 1人, 종사관의 跟役 1人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초대 주진대원이 부임했던 1884년 3월부터 청일전쟁의 발발로 실질적인 역할을 상실했던 1894년 6월까지 약 10년 3개월 동안 4명의 주진대원이 실제로 천진에 근무했던 기간은 기껏해야 3년이 채 넘지 않았다. 비록 주진대원은 중대사를 처리하기 위해 수시로 귀국할 수 있었지만, 임기를 3년으로 정한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중대사나 병으로 귀국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무단으로 휴가로 돌아가서는 중직을 맡을 수 없었다는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주진공서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 반면 종사관은 4개월만에 돌아왔던 김가진을 제외하면 거의 공백없이 업무를 교대하였을 뿐 아니라 장기간 천진에 근무하였다. 또한 임시직이었던 서기관은 초대 주진대원 일행에 포함되었을 뿐 그 이후로는 파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주진공서는 실제로 종사관의 서리 체제로 운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주진대원을 비롯한 종사관․서기관 등에 대한 인사권을 외아문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아니라 내아문 계통의 통리군국사무아문과 내무부가 행사하였다는 점이다. 주진대원은 단순히 통상 업무에 주력하는 총영사뿐 아니라 실질적인 공사로서 한성개잔조항 개정․袁世凱 소환운동․박정양의 선처 등 조청 양국 간의 당면한 정치적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특파되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통리교섭통상사문아문보다 상대적으로 청국의 간섭을 덜받는 내무부가 주진대원를 비롯해서 일본, 미국, 유럽주재 상주 공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는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통리군국사무아문․내무부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와 인사권과 실제 업무를 각각 분장하는 차원을 넘어 반청 정책추진을 주도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주진대원들은 재임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주진대원들은 天津과 北京 등을 비롯한 중국의 정세 및 각국 외교사절의 동향, 청국 개항장들의 상황과 上海駐在 察理通商事務의 파견 및 漢城開棧문제에 대한 협의, 조선상인의 무역 실태 보고와 불법 밀무역상의 인도 교섭, 천진주둔 군대의 교련 및 무기의 제조현황 파악, 미국상인으로부터의 총탄 수입, ‘영약삼단’의 미준수로 소환된 주미전권공사 朴定陽에 대한 李鴻章의 선처 의뢰, 김옥균 암살사건 상황 보고 등 단순히 양국간의 통상뿐 아니라 외교를 비롯한 각종 현안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특히 고종폐위음모 이후 袁世凱와 高宗 등 집권층의 불화가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주진대원이 袁世凱召還運動을 펼쳤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차관 袁世凱의 1차 임기가 만료되는 1888년 8월 초 주진종사관 成岐運이 그의 후임으로 馬建常을 임명해달라고 의뢰한 데 이어, 1889년 5월 21일에 신임 독리통상사무 金明圭도 袁世凱의 조선내정간섭이 양국관계에 커다란 손해를 입히고 있으므로 그의 후임으로 ‘公正明識’한 자를 선임․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비록 이 시도는 李鴻章의 거부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주진대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본 연구결과는 개화기 한중관계사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리라 판단된다. 따라서 좀더 확실하게 수정보완해서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지 이상의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 Index terms
  • 주진대원(Korean Consuls to Tientsin in China),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통리군국사무아문, 내무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남정철, 김명규, 이홍장, 원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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