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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2122&local_id=10027368
개화기 '禮治'로부터 '法治'로의 사상적 전환
Reports NRF is supported by Research Projects( 개화기 '禮治'로부터 '法治'로의 사상적 전환 | 2005 Year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원택(연세대학교) ) data is submitted to the NRF Project Results
Researcher who has been awarded a research grant by Humanities and Social Studies Support Program of NRF has to submit an end product within 6 months(* depend on the form of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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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Project Number B00021
Year(selected) 2005 Year
the present condition of Project 종료
State of proposition 재단승인
Completion Date 2007년 05월 30일
Year type 결과보고
Year(final report) 2007년
Research Summary
  • Korean
  • 이 논문의 목적은 개화기 조선에서 ‘經國大典體制’의 해체와 ‘大韓國國制體制’의 성립과정을 기술하고, 그것을 통해 유교적 禮治主義의 퇴장과 근대적 法治主義의 등장이라는 ‘사상의 전환’(Paradigm Shift) 문제를 제기하여 大韓帝國의 역사적 성격을 사상사적 측면에서 규명해보려는 것이다.
    ‘경국대전체제’는 『經國大典』과 그 羽翼으로서의 『國朝五禮儀』 및 『大明律』을 포괄한 조선의 국가체제 전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경국대전체제’는 『周禮』를 모델로 하여 禮治를 표방하였으며, 몇 차례의 증보 작업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틀은 甲午更張(1894) 때까지 이어졌다.
    ‘경국대전체제’가 본격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한 것은 갑오경장으로 인해 議政府-六曹制度가 폐지되고 內閣制度가 시행되면서부터이다. 이와 동시에 禮의 존립근거인 身分等級制가 와해되자 禮는 기존의 公的인 영역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私的 영역으로 퇴장하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 서구의 法 관념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어 전통적인 法 관념을 뒤흔들었다. 서구의 법은 종래의 ‘刑名法術의 法’이 아니라 ‘治國의 契約’으로 이해되었는바, 나라를 다스릴 법에 대하여 인민이 계약에 의해 동의해야 한다는 근대 立憲主義 사상이 도입된 것이다.
    ‘경국대전체제’가 와해되어가자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규범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종은 1899년 8월 「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1905년에는 『刑法大全』을 반포하고, 또 『大韓禮典』을 편찬하였다. 필자는 고종이 「대한국국제」를 몸통으로 삼고 여기에 『형법대전ꡕ과 『대한예전ꡕ을 左右의 양 날개로 삼는 ‘大韓國國制體制’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그런데 「대한국국제」는 기존의 군주의 권한을 근대적 법 형식으로 천명한 것에 불과하며, 『경국대전ꡕ과 비교할 때 소략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필자는 「대한국국제」가 머리만 있고 몸통이 없는 ‘미완의 헌법’이라고 생각한다. 갑오경장 이후 반포된 여러 법률 등을 참작하여 『大典會通』을 개편하여 몸통으로 삼고, 거기에 「대한국국제」를 합하여야 보다 완전한 ‘高宗式의 憲法’이 될 것이다.
    ‘大韓國國制體制’의 지도원리는 무엇인가 고종이 천명한 노선은 "舊規로 根本을 삼고 新式을 參酌한다"는 ‘舊本新參’이었다. 고종의 舊本新參論은 기존의 東道西器 및 東敎西法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法의 형식만 근대적 모습을 취했을 뿐 내용은 전통적 요소로 가득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法에 의한 支配’(rule by law)이지 ‘法의 支配’(rule of law)라고 할 수 없다.
    하나의 文明을 지속시킨 思想體系는 人間事의 광범한 영역을 포괄하면서도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에 비유하자면 그것은 나름의 독자적인 文法體系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자적인 문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사상이 ‘融合’된다는 것은 두 사상체계를 포괄할 수 있는 제삼의 사상체계가 건설되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 관념상 가능할지라도 실제로는 조야한 절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 사상체계가 경합하여 하나가 헤게모니를 잡고 다른 하나를 포섭하여, 결국 하나가 公的 영역을 점령하고 다른 하나가 私的 영역으로 밀려나는 방식이다. 禮治社會를 지향하는 동양의 儒敎와 法治社會를 지향하는 西洋 近代思想은 각각 個人事에서 國家制度까지 원리적으로 일관하는 하나의 완결된 사상체계이다. 이와 같은 상이한 두 사상체계를 융합할 수 있을까
  • English
  • This paper describes the deconstruction of KyungKookDaeJeon(KKDJ) system and rising of DaeHanKookKookJae(DHKKJ) system, and then discusses on the paradigm shift of political thoughts from 'rule of ritual' to 'rule of law' in Korea(1895-1905).
    KKDJ system which modeled itself on JuRyae was consisted of KyungKookDaeJeon as body, DaeMyungRyul as left wing, and KookChoORyaeUi as right wing. It adopted a slogan of ritualism and ruled Chosun Dynasty from 14C till 19C.
    In late 19C, KKDJ system was replaced by DHKKJ system. DHKKJ system was consisted of DaeHanKookKookJae as body, HyungPubDaeJeon as left wing, and DaeHanRyaeJeon as right wing. It sloganized western style legalism. In real political world, DHKKJ system was not 'rule of law' but 'rule by law'. Korean legalism was formalized by King KoJong's important principle KooPonShinCham. DHKKJ system was new in forms, but old in contents. The paradigm shift of political thoughts from 'rule of ritual' to 'rule of law' in 19C Korea was not completed, and then Chosun Dynasty was collapsed by Japanese imperialism.
Research result report
  • Abstract
  • 이 논문의 목적은 개화기 조선에서 ‘經國大典體制’의 해체와 ‘大韓國國制體制’의 성립과정을 기술하고, 그것을 통해 유교적 禮治主義의 퇴장과 근대적 法治主義의 등장이라는 ‘사상의 전환’(Paradigm Shift) 문제를 제기하여 大韓帝國의 역사적 성격을 사상사적 측면에서 규명해보려는 것이다.
    ‘경국대전체제’는 『經國大典』과 그 羽翼으로서의 『國朝五禮儀』 및 『大明律』을 포괄한 조선의 국가체제 전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경국대전체제’는 『周禮』를 모델로 하여 禮治를 표방하였으며, 몇 차례의 증보 작업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틀은 甲午更張(1894) 때까지 이어졌다.
    ‘경국대전체제’가 와해되어가자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규범체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종은 1899년 8월 「大韓國國制」를 반포하였다. 1905년에는 『刑法大全』을 반포하고, 또 『大韓禮典』을 편찬하였다. 필자는 고종이 「대한국국제」를 몸통으로 삼고 여기에 『형법대전』과 『대한예전』을 左右의 양 날개로 삼는 ‘大韓國國制體制’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그런데 「대한국국제」는 기존의 군주의 권한을 근대적 법 형식으로 천명한 것에 불과하며, 『경국대전』과 비교할 때 소략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필자는 「대한국국제」가 머리만 있고 몸통이 없는 ‘미완의 헌법’이라고 생각한다. 갑오경장 이후 반포된 여러 법률 등을 참작하여 『大典會通』을 개편하여 몸통으로 삼고, 거기에 「대한국국제」를 합하여야 보다 완전한 ‘高宗式의 憲法’이 될 것이다.
    ‘大韓國國制體制’의 지도원리는 무엇인가 고종이 천명한 노선은 "舊規로 根本을 삼고 新式을 參酌한다"는 ‘舊本新參’이었다. 고종의 舊本新參論은 기존의 東道西器 및 東敎西法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法의 형식만 근대적 모습을 취했을 뿐 내용은 전통적 요소로 가득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法에 의한 支配’(rule by law)이지 ‘法의 支配’(rule of law)라고 할 수 없다.
  •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1. '경국대전체제'라는 개념에 의거하여 '대한국국제체제'라는 개념을 새로 구성하고, 그 내용으로 대한국국제에 형법대전과 대한예전이 포함됨을 밝힘.
    2. '대한국국제체제'의 지도원리인 '구본신참론'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성격을 사상사적 측면에서 밝히려는 시도를 함.
    3. 구본신참론이 동도서기론과 유사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음을 밝힘.
    4. '사상의 전환'(Paradigm Shift) 이라는 관점에서 동도서기론의 절충론적 성격을 비판함.
    5. 근래 행해지고 있는 '문명간의 대화' 담론을 근본적으로 재성찰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활용할 수 있음.
  • Index terms
  • 經國大典體制, 大韓國國制體制, 禮治, 法治, 전환, 舊本新參, 東道西器, 내재적발전론, 식민지근대화론, 주체, 근대, 내각, 경국대전, 대명률, 국조오례의, 형법대전, 대한예전, 갑오경장, 계약, 대한국국제, 권리, 도리, 군권, 군도, 헌법, 중체서용, 화혼양재, 문명, 개화, 융합, 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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