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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의 작품 발굴 및 원전 확정을 위한 연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신채호의 작품 발굴 및 원전 확정을 위한 연구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김주현(경북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326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8년 01월 04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8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논문에서는 단재의 권업신문 참여 기간과 더불어 1912년 10월 이후 논설 집필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단재는 기존 연구자들에 의해 알려진 것과는 달리 1912년 창간호부터 이듬해 7월경까지 권업신문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곳에 줄곧 애국 계몽적인 논설을 발표하여 계몽활동에 앞장섰다. 그가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렀던 기간 권업신문에 계속하여 글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권업신문󰡕에는 우리 민족의 국권 상실을 통곡하고, 국권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한 「이날」을 비롯하여 일본의 간악한 고문을 고발한 「일인의 간사한 수단」, 국수주의의 유지를 강조한 「국수주의와 해외동포」, 우리말글의 중요성을 강조한 「외국말 배우는 이에게 고함」, 「사람마다 국문은 알아야지」 등 수많은 단재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단재는 애국계몽기 󰡔대한매일신보󰡕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비판 정신과 매서운 필체를 일제강점기 블라디보스톡의 󰡔권업신문󰡕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신문에는 창간호부터 1913년 7월 이후 단재가 상해로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그의 글이 실렸다. 우선 1912년 9월 8일까지 단재의 주필명이 기록된 현존의 논설 10편은 모두 단재의 글로 보인다. 그리고 9월 15일과 22일에 발표된 글도 단재의 글로 보인다. 22일의 글에 대해서는 백원보의 주장이 이미 있었고, 그렇다면 단재가 주필란에서 이름이 빠지고 곧바로 신문 집필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9월 15일의 글도 단재의 글로 보아 무리가 없다. 그 이후 10월 20일, 27일, 11월 3일, 24일과 12월 1일, 19일, 29일의 논설, 1913년 1월 26일, 2월 9일, 16일, 3월 30일, 6월 8일, 15일, 22일 등의 논설도 단재의 글로 보인다.
    그러나 논설, 또는 별보 저자에 대한 논의로 권업신문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이 신문에는 그밖에도 다양한 글이 실려 있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 권업신문은 일제 강점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어렵던 시기 민족주의적이고 반일적인 노선을 추구한 신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내에서 저질러졌던 일제의 침략사가 매우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신문에 대해 보다 다양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 영문
  • This paper is to unearth Shin Chae-ho's works and to establish his authentic text in Kwoneop Sinmun(勸業新聞) which published at Vladivostok Russia from 1912 to 1914. It seemed that Shin Chae-ho served as a chief editor in that newspaper from the first day of publication to about mid July, 1913. He wrote a lot of editorials in it. About the middle of July, 1913, he quitted his job of chief editor and left Vladivostok for Shanghai, China. In this paper, I have especially concerned about the thought, discourse and literary style of editorials in that newspaper. I closely lighted up how correspondent the thought and discourse of editorials is with those of Shin Chae-ho' works. So I unearthed many editorials which were written by Shin Chae-ho, including This Day and We should know Our Language. There also are some works written by him besides his editorials in that newspap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글에서는 단재의 권업신문 참여 기간 및 1912년 10월 이후 논설 집필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단재는 기존 연구자들에 의해 알려진 것과는 달리 1912년 창간호부터 이듬해 7월경까지 권업신문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곳에 줄곧 애국 계몽적인 논설을 발표하여 계몽활동에 앞장섰다. 그가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렀던 기간 권업신문에 글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권업신문}에는 우리 민족의 국권 상실을 통곡하고, 국권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한 「이날」을 비롯하여 일본의 간악한 고문을 고발한 「일인의 간사한 수단」, 국수주의의 유지를 강조한 「국수주의와 해외동포」, 우리말글의 중요성을 강조한 「외국말 배우는 이에게 고함」, 「사람마다 국문은 알아야지」 등 수많은 단재의 글이 실려 있다. 특히 단재는 애국계몽기 {대한매일신보}에서 보여주었던 강한 비판 정신과 매서운 필체를 일제강점기 블라디보스톡의 {권업신문}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신문에는 창간호부터 1913년 7월 이후 단재가 상해로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그의 글이 실렸다. 우선 1912년 9월 8일까지 단재의 주필명이 기록된 현존의 논설 10편은 모두 단재의 글로 보인다. 그리고 9월 15일과 22일에 발표된 글도 단재의 글로 보인다. 22일의 글에 대해서는 백원보의 주장이 이미 있었고, 그렇다면 단재가 주필란에서 이름이 빠지고 곧바로 신문 집필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9월 15일의 글도 단재의 글로 보아 무리가 없다. 그 이후 10월 20일, 27일, 11월 3일, 24일과 12월 1일, 19일, 29일의 논설, 1913년 1월 26일, 2월 9일, 16일, 3월 30일, 6월 8일, 15일, 22일 등의 논설도 단재의 글로 보인다.
    그러나 논설, 또는 별보 저자에 대한 논의로 권업신문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이 신문에는 그밖에도 다양한 글이 실려 있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된다. 일제 강점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어렵던 시기 반일저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논조를 추구한 신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국내에서 저질러졌던 일제의 침략사가 매우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이 신문에 대해 앞으로 보다 다양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 과제에서는 이외에도 세 편의 논문이 추가적으로 나왔다. 그것은 위의 {권업신문}에 대한 연구 이외에 {천고}, {대한매일신보}, 상해판 {독립신문} 등을 대상으로 한 논문이 각각 한 편씩이다. 여기에서는 {권업신문}을 대상으로 한 것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결과보고서 파일에 자세하게 싣기로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는 1) {권업신문}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권업신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 연구를 통해 권업신문에 참여한 인물을 자세히 연구할 수 있다.
    2) 신채호의 망명이후 활동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추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권업신문}과 상해 {독립신문}, {천고} 등의 참여를 보다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그의 해외망명활동 이후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3) 단재전집에 활용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잘못된 자료를 많이 지적했으며, 또한 새로운 자료를 많이 소개했다. 기존 단재전집의 허실을 상당부분 복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4) 이번 연구는 신채호 연구 기반을 튼실히 하고 앞으로 제대로 된 연구를 추동할 것이다.
    5) 신채호를 계기로 박은식, 유원표, 장지연 등의 연구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 색인어
  • 신채호(Shin Chae-ho), 장도빈(Jang Do-bin), 권업신문(Kwoneop Sinmun), 자료발굴(the unearthing of works), 저자확정(the establishment of authentic author), 논설(editorial), 시일(Thi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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