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성과물 유형별 검색 > 보고서 상세정보

보고서 상세정보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12158&local_id=10013685
胡適과 김태준의 문학사서술의 특징-『백화문학사』와『조선한문학사』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胡適과 김태준의 문학사서술의 특징-『백화문학사』와『조선한문학사』를 중심으로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홍석표(이화여자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449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2월 10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胡適은 전통문학사를 백화문학의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문언으로 된 고문문학을 부정하고 백화문학이 주류로 발전해왔음을 밝히고자 했다. 胡適은 詩文중심의 고문문학이 자국문학이었으니 그 청산은 백화문학이 전통문학사 속에서 주류로 발전해왔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胡適은 문언과 백화의 대립 속에서 백화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근대적 국민문학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를 역사 속에서 길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김태준은 조선의 한문학은 중국 한문학의 모방에 지나지 않으므로 조선의 근대적 국민문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문학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과 문언으로부터의 독립이 그것이다. 그래서 중국문학의 모방이요 문언으로 표기된 詩文중심의 조선한문학은 청산해야 할 두 가지 요소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철저하게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태준이 표현한 한문학의 ‘결산보고서’라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김태준이『조선소설사』보다 나중에 쓴『조선한문학사』를 먼저 출판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胡適과 김태준은 전통문학을 이원대립적 구조로 파악하여 詩文중심의 고문문학을 철저하게 청산하려 했고, 고문문학,한문학에 대립되는 백화문학,조선문학을 수립하기 위해 민간문학,속문학의 가치를 크게 부각시켰다. 그들이 전통문학을 이원대립적 구조로 단순화하여 파악한 것은 근대적 국민문학의 수립이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인데, 그 결과 詩文중심의 전통문학을 일괄 부정하는 단선적인 관점을 드러내었다. 다만 胡適은 중국문학의 白話化 추세를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문학사서술의 사명으로 삼았고,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의 퇴화과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문학사서술의 사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각기 구체적인 문학사서술의 내용은 다르다.
    胡適과 김태준의 문학사서술이 유사한 특징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중국과 한국에서 전개되었던 신문화운동의 하위 범주에서 그들의 학술활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신문화운동은 중국의 그것으로부터 일정한 자극을 받았고, 김태준 역시 胡適의 문학사서술 관점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胡適과 김태준의 문학사서술이 당시 신문화운동의 하위 범주에서 진행된 것인 만큼 詩文중심의 전통문학을 일괄 부정하는 단선적인 관점을 드러낸 그들의 한계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胡適과 김태준은 전통문학을 정리하는 문학사서술에서 유사한 관점을 보여주었지만, 신문학의 형식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상이한 태도를 보였다. 胡適은 신문학의 형식적 모범을 서양문학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면, 김태준은 그것을 전통 국문문학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김태준은 "서투른 外國文學의 直譯에서 形式을 求하지 말고 自來로 傳하는 우리의 文學에서 얻은 것으로 먼저 튼튼한 土臺를 닦으라."라고 강조했다. 이는 "서양의 문학 명저들을 서둘러 번역하여 우리의 규범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라는 胡適의 주장과는 상치된다. 이러한 차이는 1920년 전후의 문학상황과 1930년대 초반의 문학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고, 胡適의 경우는 서양유학 경험으로 인해 서양문학에 정통해 있었고 김태준은 경성제국대학에서 근대학문을 시작하여 서양문학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좀더 근원적으로 볼 때, 胡適의 관점은 전면서구화를 주장하던 당시 신문화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김태준의 관점은 중국문학의 모방인 한문학으로부터의 독립과 ‘조선문학’의 정체성 확립이 시급히 요청되었던 당시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운동의 특수성이 胡適과 김태준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영문
  • A Study on Hu-Shi's 『the history of vernacular Chinese literature(白話文學史)』 and Kim-Taejoon's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literature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朝鮮漢文學史)』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胡適은 전통문학사를 백화문학의 입장에서 서술함으로써 문언문으로 된 고문문학을 부정하고 백화문학이 주류로 발전해왔음을 밝히고자 했다. 胡適은 詩文중심의 고문문학이 자국문학이었으니 그 청산은 백화문학이 전통문학사 속에서 주류로 발전해왔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金台俊은 조선의 한문학은 중국 한문학의 모방에 지나지 않으므로 조선의 근대적 국민문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청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문학의 영향으로부터의 독립과 문언으로부터의 독립이 그것이다.
    胡適과 金台俊은 전통문학을 二元對立的 구조로 파악하여 詩文중심의 고문문학을 철저하게 청산하려 했고, 고문문학,한문학에 대립되는 백화문학,조선문학을 수립하기 위해 민간문학,속문학의 가치를 크게 부각시켰다. 그들이 전통문학을 이원대립적 구조로 단순화하여 파악한 것은 근대적 국민문학의 수립이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인데, 그 결과 詩文중심의 전통문학을 일괄 부정하는 단선적인 관점을 드러내었다. 다만 胡適은 중국문학의 白話化 추세를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문학사서술의 사명으로 삼았고,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의 퇴화과정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문학사서술의 사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각기 구체적인 문학사서술의 내용은 다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그동안 근대 이후 韓中의 문학사서술에 관한 비교연구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조동일은『동아시아문학사비교론』에서 유럽 각국 문학사, 일본문학사, 중국문학사, 한국문학사 등의 절을 마련하여 근대 이후 각국의 문학사서술의 전모를 개략적으로 살피고 있지만, 개별 문학사서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김태준의 문학사서술과 관련하여 韓中문학사 비교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거의 없다. 이등연이「주요 중국소설사의 서술관점 분석: 魯迅『中國小說史略』의 시각 검토」라는 글의 제3절 ‘金台俊『朝鮮小說史』와 조동일『한국소설의 이론』의 경우'에서 韓中 비교의 관점에서 김태준의『조선소설사』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胡適의『백화문학사』와 김태준의『조선한문학사』를 문학사의 서술체계와 서술관점의 측면에서 비교하고 韓中의 근대적 학문 형성과정의 유사한 특징과 상호교섭의 현상을 밝히는 최초의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로 胡適의『백화문학사』와 김태준의『조선한문학사』는 전통문학을 이원대립적 구조로 파악하고 詩文중심의 전통문학을 일괄 부정하는 동일한 서술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내었으며, 또한 간접적이긴 하지만 김태준의『조선한문학사』는 胡適의『백화문학사』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胡適은 중국문학의 白話化 추세를 드러내었고, 김태준은 조선한문학의 퇴화과정을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문학사서술의 내용은 각기 달랐다. 이번 연구의 결과로 韓中의 근대적 문학사서술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중국문학을 전공한 김태준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胡適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근대 이후 한중의 문학사서술 관련 저술을 상호 비교연구한다면 韓中의 근대적 학문의 형성과정과 상호교섭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색인어
  • 胡適, 金台俊, 백화문학사, 조선한문학사, 고문문학, 한문학, 백화문학, 조선문학, 신문화운동, 이원대립적 구조, 중국문학의 백화화, 한문학의 퇴화, 민간문학, 속문학, 한문학의 정체성
  • 이 보고서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 본 자료는 원작자를 표시해야 하며 영리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또한 저작물의 변경 또는 2차 저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