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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베 하지메(田邊元)와 길희성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포섭하는 논리의 비교 연구 : 동아시아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위하여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타나베 하지메& #40;田邊元& #41;와 길희성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포섭하는 논리의 비교 연구 : 동아시아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위하여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찬수(강남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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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205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5월 31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논문에서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관계를 구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특히 선불교적 입각점에서 서양철학과 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일본 현대불교철학학파인 교토학파의 시각에서 학문을 하는 타나베 하지메와 개신교적 배경에 있으면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하는 가운데 이들간 일치의 가능성을 보는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길희성이 비교 연구 대상이다. 이들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포섭해내는 논리를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창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논리화해보려는 데 본 논문의 취지가 있다.

    니시다를 필두로 하는 쿄토학파가 대체로 선의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 하지메는 정토진종의 시각을 중시하면서 공(空)과 역사 사이의 ‘매개’를 밝히고 역사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은 인간의 자기부정적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특히 니시다 사상의 고유한 표현 중의 하나가 "절대무의 자기한정"인데, 이 "절대무의 자기한정"은 절대무가 구체적인 현상의 세계로 스스로를 한정해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절대무와 그 한정 사이에 매개는 없다. 공이 그대로 색이라는 것이다. 이와 반면에 타나베는 과연 정말 절대무가 스스로를 무매개적으로 한정할 수 있겠는가에 의문을 가진다. 역사, 도덕, 전쟁 모두 절대무의 자기한정이란 말인가 타나베는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절대무가 스스로를 한정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자기부정을 매개로 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타나베는 하느님 은총의 육화를 말하는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토불교에 초점을 두기도 했다. 말하자면 아미타불의 자기 부정적 은총도 인간의 자기 부정적 행위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만 은총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의 ‘매개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 타나베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적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며, 그리스도교-불교의 비교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앞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미 길희성이 이러한 시각에서 일본 정토 불교의 핵심을 신란의 사상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 영문
  • This paper seeks to make a comparison between the thought of Tanabe Hajime who is most briliant Buddhist thinker of modern Japan, and the thought of Keel Hee Sung who is among the influential Christian scientist of religion of Korea, centering around the dimension of the 'formal' or 'structural' similarity rather than similarity in content. The languages of Tanabe and Keel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but these two are alike in the formal or structural aspect in "the idea of the objective universal salvation of humankind and the problem of how to appropriate it". This paper examines the soteriological scheme of the truth holding fast to the characteristic languages of each. This comparison of the structure is thought to be a proper way to put life into the uniqueness and distinctiveness of each also.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논문에서는 일단 이들 불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관계를 구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특히 선불교적 입각점에서 서양철학과 신학을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일본 현대불교철학학파인 교토학파의 시각에서 학문을 하는 타나베 하지메와 개신교적 배경에 있으면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하는 가운데 이들간 일치의 가능성을 보는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학자인 길희성이 비교 연구 대상이다. 이들이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포섭해내는 논리를 비교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창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논리화해보려는 데 본 논문의 취지가 있다.

    니시다를 필두로 하는 쿄토학파가 대체로 선의 입장에서 서양철학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타나베 하지메는 정토진종의 시각을 중시하면서 공(空)과 역사 사이의 ‘매개’를 밝히고 역사에 대한 강조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공이 그대로 색(空卽是色)일 수 있는 근거, 절대 진리의 세계와 구체적 현실 세계 사이의 상즉성(相卽性)은 인간의 자기부정적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매개’의 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특히 니시다 사상의 고유한 표현 중의 하나가 "절대무의 자기한정"인데, 이 "절대무의 자기한정"은 절대무가 구체적인 현상의 세계로 스스로를 한정해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절대무와 그 한정 사이에 매개는 없다. 공이 그대로 색이라는 것이다. 이와 반면에 타나베는 과연 정말 절대무가 스스로를 무매개적으로 한정할 수 있겠는가에 의문을 가진다. 역사, 도덕, 전쟁 모두 절대무의 자기한정이란 말인가 타나베는 인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절대무가 스스로를 한정하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자기부정을 매개로 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타나베는 하느님 은총의 육화를 말하는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토불교에 초점을 두기도 했다. 말하자면 아미타불의 자기 부정적 은총도 인간의 자기 부정적 행위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만 은총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 행위의 ‘매개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사회적 실천을 중시하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 타나베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적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며, 그리스도교-불교의 비교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앞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미 길희성이 이러한 시각에서 일본 정토 불교의 핵심을 신란의 사상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한국은 동서양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비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인한 국가이다. 한국은 이 두 물줄기가 대등하게 부딪치기도 뒤섞이기도 하다가 합류되고 있기도 한 전형적인 나라들 중 하나인 것이다. 한국에서 동․서양 문화는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조화하면서 서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뒤섞여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종교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17세기에는 가톨릭을 통해, 18세기에는 개신교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구미문화가 유․불․선을 위시한 전통적인 종교와 때로는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뒤섞이고, 때로는 의식적 차원에서 갈등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개신교 일각에서 일으키고 있는 한국의 전통 종교와의 불협화음이 두드러진다. 특히 불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일부의 경우라고는 하지만, 종종 심각한 양상 일보직전까지 전개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단순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탓에 늘 피상적인 이해 - 사실은 오해, 곡해, 왜곡 - 에만 머물고, 나의 신념과 다르다고 간주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제국주의적 자세를 신앙이라는 것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교라고 해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불자들도 특히 개신교에 대해 대립적 자세까지 취하지는 않더라도 때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때로는 개신교의 양적 성장에 대해 공연한 열등감을 드러내면서 불교와의 차이를 논외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도교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역시 적잖이 유감스러운 일이다. 불자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절실한 실정이다. 그럴 때 겉으로 드러나는 그 ‘차이’라는 것이 도리어 자신을 풍요롭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는 그러한 차이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깊고 넓은 세계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타베와 길희성의 철학에는 이 두 세계를 녹여내는 힘이 있으며, 그런 논리를 충분히 보여준다. 이것은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현실적으로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대립이 가능성이 여전히 잔존해있는 한국에서 이들의 논리가 확장되면 불교와 그리스도교간 공존과 조화, 더 나아가 궁극적 차원에서의 일치를 볼 줄 아는 문화적 저변도 확대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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