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에서의 원근법이 ‘보는 자’로서의 인간 주체와 그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재편이라는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면, 그것은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의 특권화는 구경꾼과 관찰자, 그리고 만보객의 탄생과 연결된 ...
회화에서의 원근법이 ‘보는 자’로서의 인간 주체와 그를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재편이라는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면, 그것은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이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의 특권화는 구경꾼과 관찰자, 그리고 만보객의 탄생과 연결된다.
관찰자는 ‘미리 규정된 가능성들의 체계 안에서 보는 사람이며, 관습과 제한의 체제에 위치지어져 있다. 조나단 크래리의 말처럼 관찰자는 담론적· 사회적 · 기술적· 제도적 관계의 효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관찰자는 19세기의 새로운 종류의 개인 혹은 주체구성의 한 효과일 뿐이
소설은 화자를 통해 이야기되는 장르이다. 화자를 통해 ‘보는 방식’(way of seeing)이 소설 전체의 의미창출을 지배한다. 보는 방식에 의해 형상이 규정되고, 세계가 구성된다. 즉소설의 시선의 젠더가 누구이냐에 따라 서사는 상당히 달라진다. 즉 만보에서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고’ ‘서술하는가’의 시선의 문제가 관건이다. 이것은 시선의 정치학을 형성하며, 미학적으로 서로 다른 서사를 생성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본고에서는 남성/여성 시선 별, 젠더별로 만보객의 계보를 4가지로 나누고, 각 계보의 만보객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시선과의 관계 속에서 서사화되는 과정을 주체형성/젠더전유 과정으로 살펴보면서 젠더의 미학적 구축과정과 내면화 방식의 차이 등을 그 미학적 특질과 함께 고찰해 보았다.
남성/여성 만보에는 남성/여성 주체형성의 문제, 남성/여성 노동의 문제, 가족의 문제, 그리고 근대적 시공간의 전유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남성의 만보는 주체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대상이 주체의 외부에 관찰의 대상으로 놓여 있다. 특히 1, 2 계보에서는 대상이 주체의 외부에 관찰대상으로 놓여 있다. 남성의 만보는 주로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두기를 통한 관찰과 성찰이라면, 3, 4 계보의 여성의 만보는 만보객 자신의 구원과 성적 해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주체와 대상 간의 강력한 의사소통 요구를 표출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일시에 기반한 ‘말걸기’가 이루어진다.
남성 만보객의 1, 2 계보는 소실점법 시선의 회복, 또는 보는 주체로 거듭나는 남성 대서사를 형상화한 공통점이 드러났다. 제1 계보에 해당하는 구보는 모성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통한 소실점적 주체의 형성을 보여주었으며, 제2계보 중 「장마」는 소실점적 주체의 근대성 비판을 드러내었고, 「날개」는 ‘여성-몸-감각’의 타자화를 수단으로 한 소실점적 주체 회복의 열망을 제시하였다. 남성 만보객의 특징은 소실점법과 여성의 대상화, 타자화 또는 모성 이데올로기의 재생산과 관련되었다.
이에 반해 여성 만보객의 경우는 주체와 대상과의 상호 소통을 전제로 ‘구원’ ‘해방’ ‘탈출’과 결부된다. 여성의 만보는 사회적 금기의 주변에서 대상(세계)에 대한 여성의 성적 욕망의 해방 욕구를 드러내며, 말걸기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표출한다. 박완서의 「어떤 나들이」는 이러한 자유 해방 열망의 드러냄과 함께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여성의 일상의 억압을 이중절망 형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젠더적 범주의 억압성을 잘 확인시킨다. 오정희의 「바람의 넋은」 복수의 소실점으로 존재의 근원 찾기의 문제를 제시한다.
남성의 만보는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두기를 통한 관찰 및 성찰 비판을 통해 일상으로 안주하기 위한 이유 찾기, 남성성의 회복을 꾀하기 위한 목적을 드러낸다. 소위 보편 플롯 패턴인 오이디푸스 플롯을 채용하고 있었으며, 파노라마적 시선에서 원근법적 시선으로 이동하며 남성대서사를 완성한다. 남성 대서사는 여성을 타자화 하거나 대상화 하여 이룩되었다.
여성의 만보는 더 큰 해방 또는 존재의 심연 찾기와 연결되어 있으며, 억압적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성적 환상이 개입되어 있다. 원근법적 시선으로, 대상에 대한 연민과 동일시에 기반한 말걸기가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였으며, 남성의 만보와 달리 가족과의 연관성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위에서 보듯 남성의 만보와 여성의 만보는 근본적으로 다른 토대 위에 서있으며, 만보라는 인식 형식 및 내면 형성 장치에서 젠더는 인종, 계급, 민족, 종교 범주보다 본질적 모순관계였으며, 최종심급이었다. 남성/여성의 만보를 어떤 시선으로 형상화 하느냐는 젠더의 미학적 구축 과정이었으며, 일종의 담론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