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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반란?: 빅토리아시대 후기 '여성성'에 관한 비평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딸들의 반란?: 빅토리아시대 후기 & #39;여성성& #39;에 관한 비평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이영석(광주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A00099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4월 07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딸들의 반란 : 빅토리아 시대 후기 여성문제에 대한 비평(이영석)

    영국에서 여성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무래도 1890년대가 아닐까 싶다. 이 시기에 여성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 변화를 나타내는 새로운 언어들이 널리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영국 식자층의 논설에서 ‘여성성’의 변화를 뜻하는 언어로 널리 쓰인 것은 ‘신여성(new woman)’이다. 이에 해당하는 여성은 19세기 후반 중등교육의 확대와 더불어 나타났을 것이다. 신여성이라는 말은 박애주의적인 사회봉사에 거침없이 나서고 자신의 소득원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진보적 견해를 나타내는 젊은 여성을 가리켰다.

    물론 신여성이 당시 여성성의 변화를 뜻하는 유일한 말은 아니었다. 특히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함축한 낱말로는 1890년대 초에 ‘억센 여성(wild woman)’과 ‘딸들의 반란(revolt of daughter)’이라는 표현이 잡지 논설에 자주 보인다. 이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신여성이라는 언어로 수렴된 것 같다.

    이들 언어는 여성과 남성, 같은 여성 사이에서도 세대의 갈등을 나타내기도 했다. 1890년대 여러 잡지와 비평지를 중심으로 이들 언어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있었다. 이들 논쟁은 결혼과 가정, 출산과 육아, 모성과 직업 등 다양한 여성문제들을 주된 의제로 삼아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신여성’이라는 언어보다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널리 쓰인 ‘억센 여성’과 ‘딸들의 반란’ 같은 표현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 언어들이 상징하는 새로운 여성성의 대두에 어떤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1890년대 초에 『19세기』지는 ‘억센 여성’과 ‘딸들의 반란’을 다룬 논설을 집중적으로 싣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글들을 주로 분석한다.

    ‘억센 여성’이라는 말은 이른바 집안의 천사로 형상화된 중간계급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 같다. 이 비판은 주로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에 관심을 나타내는 여성을 공격하면서 여성의 본령은 여성성과 모성을 지키는 데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억센 여성’을 지지하는 측은 전통적 결혼제도에 냉소적이며, ‘여성성의 구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억센 여성’이란 그 전통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뚫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딸들의 반란’은 세대간의 갈등을 반영한다. 중등교육을 받은 딸과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 사이의 세대갈등은 여성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반영한다. 실제로 이 문제는 어머니와 딸들이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촉발되었다. 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논설에 따르면, 딸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삶을 따르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기성세대에게 딸들의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강조한다.

    1890년대에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언어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여성의 의식 변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언어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그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언어들이 주목을 끌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사회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1870년대 이래 특히 도시지역에서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런던의 경우 남성에 비해 미혼 여성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영제국의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결혼, 여성의 취업 등 여러 분야에 사회적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여성교육기회의 확대도 이러한 압력을 배가시켰다. 같은 시기에 가속된 여성참정권운동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이들 언어는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산출하도록 고안된, 새로운 여성성의 온상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요인들과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상세한 과정을 추적할 수는 없다. 더욱이 ‘억센 여성’이나 ‘딸들의 반란’을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신여성’으로 수렴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의문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는다.

  • 영문
  • The Revolt of Daughter : Discourses on ‘Feminineness’ in the Late Victorian Age (by Lee, Young-Suk)

    It was in the 1890's that English intellectuals began to reflect women's social role or maternity in the new perspective. At that time new languages on feminism and women's role appeared among some magazines and periodicals. What was the most representative on these new languages was the term 'new women' in the late victorian age. New women rose themselves to society with the expansion of middle education for girls. Who were they' They were young women who took eagerly taken part in philanthropic social activities, could earn their own living, and had progressive views.

    There, of cause, were other languages related to the change of femininity besides 'new women'. We can find new languages about femininity such as 'wild women' or 'the revolt of daughters' in some periodicals published in the early 1890's. It seems that these words competed each other, and then were converged on 'new women'.

    These languages used to represent some conflicts between men and women, or generation gab among women. There were hot debates around the languages in many periodicals in the 1890's. The debates were developed along various issues such as marriage, home, delivery, child-care, maternity or women's work. In this paper I am going to be interested in the expressions such as 'wild women' and 'revolts of daughters' rather than in 'new women', and try to take focus to social factors affecting to the rise of new languages. A liberal Journal, the Nineteenth Century carried several essays on wild women and daughters' revolts in the early 1890's. This paper analyses these essays chiefly.

    First, the word 'wild women' was originated from the critiques for women's attempts to grow out of the image of 'an angel in the house'. The critics emphasized that the nature of femininity should protect maternity from outer-world, and that the protection was a tradition of civilization. In contrast to critics, supporters of wild women were cynical to marriage system, and regarded it as purchase of femininity. According to them, 'wild women were embodiments of courage trying to transcend the tradition.

    Second, daughters' revolts represent conflicts between the generations. The conflicts stemmed from different perspectives for women's role between educated young women and their mothers. According to essays supporting daughters' views, daughters refused to follow their mothers' life quietly, because they could not find any vision of the future through their mothers' life. The essays emphasize that understanding daughters' emotion would be very important.

    New languages in the 1890's were related not only to changes of women conscious, but also to changes of social conditions around their life. Because language affects society, but at the same time it is influenced from society itself. There were three social factors related to appearance of new languages in late Victorian England. One was unbalanced ratio between men and women. The number of women exceeded that of men expecially in great cities. This seems to be related to the expansion of the British empire. The other was the extension of women education. Lastly, we can point out the suffragist movement. In short, these languages were hotbeds for new femininity, which had been made for the purpose of more various feminist ideolog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영국에서 여성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무래도 1890년대가 아닐까 싶다. 이 시기에 여성의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나 지위 변화를 나타내는 새로운 언어들이 널리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영국 식자층의 논설에서 ‘여성성’의 변화를 뜻하는 언어로 널리 쓰인 것은 ‘신여성(new woman)’이다. 이에 해당하는 여성은 19세기 후반 중등교육의 확대와 더불어 나타났을 것이다. 신여성이라는 말은 박애주의적인 사회봉사에 거침없이 나서고 자신의 소득원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진보적 견해를 나타내는 젊은 여성을 가리켰다.

    물론 신여성이 당시 여성성의 변화를 뜻하는 유일한 말은 아니었다. 특히 새로운 여성의 이미지를 함축한 낱말로는 1890년대 초에 ‘억센 여성(wild woman)’과 ‘딸들의 반란(revolt of daughter)’이라는 표현이 잡지 논설에 자주 보인다. 이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신여성이라는 언어로 수렴된 것 같다.

    이들 언어는 여성과 남성, 같은 여성 사이에서도 세대의 갈등을 나타내기도 했다. 1890년대 여러 잡지와 비평지를 중심으로 이들 언어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이 있었다. 이들 논쟁은 결혼과 가정, 출산과 육아, 모성과 직업 등 다양한 여성문제들을 주된 의제로 삼아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신여성’이라는 언어보다는 그와 비슷한 시기에 널리 쓰인 ‘억센 여성’과 ‘딸들의 반란’ 같은 표현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 언어들이 상징하는 새로운 여성성의 대두에 어떤 사회적 요인이 작용했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1890년대 초에 『19세기』지는 ‘억센 여성’과 ‘딸들의 반란’을 다룬 논설을 집중적으로 싣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글들을 주로 분석한다.

    ‘억센 여성’이라는 말은 이른바 집안의 천사로 형상화된 중간계급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 같다. 이 비판은 주로 정치활동과 사회활동에 관심을 나타내는 여성을 공격하면서 여성의 본령은 여성성과 모성을 지키는 데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문명의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억센 여성’을 지지하는 측은 전통적 결혼제도에 냉소적이며, ‘여성성의 구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억센 여성’이란 그 전통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뚫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딸들의 반란’은 세대간의 갈등을 반영한다. 중등교육을 받은 딸과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 사이의 세대갈등은 여성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반영한다. 실제로 이 문제는 어머니와 딸들이 여러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촉발되었다. 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논설에 따르면, 딸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삶을 따르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기성세대에게 딸들의 이러한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강조한다.

    1890년대에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언어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여성의 의식 변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언어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동시에 그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언어들이 주목을 끌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사회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1870년대 이래 특히 도시지역에서 성비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런던의 경우 남성에 비해 미혼 여성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영제국의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성비 불균형은 결혼, 여성의 취업 등 여러 분야에 사회적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여성교육기회의 확대도 이러한 압력을 배가시켰다. 같은 시기에 가속된 여성참정권운동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이들 언어는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산출하도록 고안된, 새로운 여성성의 온상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요인들과 새로운 언어의 등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상세한 과정을 추적할 수는 없다. 더욱이 ‘억센 여성’이나 ‘딸들의 반란’을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신여성’으로 수렴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의문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이 연구의 기대효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예상할 수 있다. 우선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사회사 연구는 주로 실증적인 자료 분석이나 통계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비해 이 연구는 당시 지식인들이 가졌던 여성성에 대한 인식과 견해를 정교하게 재구성함으로써 그 시대의 여성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여성사에서 ‘언어적 접근’을 시도한다. 여성운동이나 운동가 또는 사상가 위주의 연구를 넘어서 특정한 시대 다수 사람들의 언어를 통해서 여성문제를 재조명한다. 이것은 당시의 텍스트에 나타난 여성의 존재형태가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실체이면서 그와 동시에 언어적 형성물이기도 하다는 전제에 토대를 둔다. 특히 ‘여성성’ 또는 그 이미지는 구체적인 실재라기보다는 그것을 넘어 사람들이 형성한 담론체계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가족, 가정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다시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혼제 배우혼제도가 사실상 붕괴되고 가족과 가정의 해체가 현실화되는 오늘날, 이러한 변화의 맹아가 타나났던 시기의 담론을 재구성함으로써 현대의 급속한 사회변화를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연구가 현실에서 구체적인 효과를 갖는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사실 과거에 대한 재조명은 그 자체가 완결적이다. 과거의 어느 것인가를 재구성하여 드러내는 것에서 역사가는 더 나아갈 수 없다. 만일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실증적인 연구가 아니라 연구자 자신의 담론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현재에 대한 교훈이나 미래를 향한 전망을 얻는 것은 순전히 연구결과를 읽는 독자들의 상상력의 영역에 속한 일이 아닐까 싶다.
  • 색인어
  • 집안의 천사, 억센 여성, 딸들의 반란, 신여성, 여성성, 모성, 사생활, 복음주의, 사회진화론, 우생학, 여성교육, 성비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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