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환경 담론의 주류는 인종과 계층 등에서 야기되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는 배제한 채, 기득권층이나 향유할 수 있을 황야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환경오염과 파괴가 ...
환경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환경 담론의 주류는 인종과 계층 등에서 야기되는 복합적인 사회문제는 배제한 채, 기득권층이나 향유할 수 있을 황야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환경오염과 파괴가 인종, 계층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환경적 정의의 문제제기는 주로 백인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환경 담론의 진행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미국 기독교연합인종정의위원회를 통해 환경오염물질 처리에 있어서 인종차별을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후, 환경적 불공정과 차별이 자행되는 다양한 곳에서 이것을 시정하기 위한 여러 형태의 환경적 정의 운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짧은 역사에 비해 비교적 다양하고 풍성한 환경적 정의 담론들이 형성되어 왔지만, 이 담론에 내재된 폭발적인 가능성에 비한다면 아직 더 발전되어야 여지가 무궁무진하다고 하겠다. 특히, 인종,계층만이 아니라 성차에 의해서도 환경적 불공정과 차별이 가해지고 있음을 포착하는 여성적 관점의 환경적 정의 담론은 환경적 정의 담론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환경적 정의, 특히 이에 대한 여성 중심 접근에 분야는 아직도 더 많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사회학, 정치학, 철학, 문학, 예술, 환경공학, 의학, 보건학 등의 분야에서 환경적 정의에 관계되는 논의와 저작이 계속 있어 왔지만, 2002년 출간된 [환경적 정의 글모음: 정치, 시학, 교육]과 2004년 발간된 [환경적 정의에 관한 새로운 관점]등의 해외 논문 모음집을 제외한다면 환경적 정의에 본격적으로 접근하는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아직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호건의 [태양 폭풍]과 버틀러의 [여명]을 중심으로 환경적 정의와 여성적 관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이러한 만남이 환경적 정의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진척시키는 견인차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본 연구는 환경적 정의에 대한 여성 중심 접근에 의해 환경적 정의의 의미와 가능성이 확대될 수 있는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환경적 정의 담론을 가장 강력한 환경 담론으로 든든히 구축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환경적 정의의 개념이나 의의가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 국내의 상황에서는 이것에 함축된 다양한 가능성이 함께 연구되기 시작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