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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화교의 초국가성에 대한 연구: 중국 웨이하이의 재한화교를 중심으로
이 보고서는 한국연구재단(NRF,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이 지원한 연구과제( 재한화교의 초국가성에 대한 연구: 중국 웨이하이의 재한화교를 중심으로 | 2005 년 신청요강 다운로드 PDF다운로드 | 장수현(광운대학교) ) 연구결과물 로 제출된 자료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연구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사업유형에 따라 결과보고서 제출 시기가 다를 수 있음.)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연구과제번호 B00467
선정년도 2005 년
과제진행현황 종료
제출상태 재단승인
등록완료일 2007년 05월 29일
연차구분 결과보고
결과보고년도 2007년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고향인 중국 웨이하이(威海)에 나가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화교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삶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초국가성(transnationality)과 다층적 정체성(multi-layered identity)의 단면들을 규명하고였다.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의 축적이 국가적 경계선을 뛰어넘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경제활동들을 통해 이뤄지게 되는데 최근의 이산 현상은 바로 이러한 전지구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화교들의 최근 상황을 보면 이들 역시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팽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한국사회 진입과 통합을 저해했던 많은 제도적 배제의 기제들이 사라지거나 약화되면서 과거 한국사회와 분리된 채 살아왔던 한국화교들에게서 이제는 한국정부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거나 한국사회 속으로 진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삶의 기반을 마련했던 화교들을 다시 중국 대륙 쪽으로 옮겨가게 만들고 있다. 이 연구는 중국 산둥의 웨이하이로 이주한 한국화교들을 주요 조사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파헤치고 있다. 이들은 출신지, 국적, 성장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복잡한 존재이다. 세계 대부분 지역의 화교들이 중국 남부 출신인 데 반해, 한국화교는 90 퍼센트 이상이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산둥 출신이다. 냉전의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 대륙의 관계가 단절된 후 이들은 한국과 우호관계에 있던 대만의 정치적 영향권 속으로 편입되어 대만 국적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의 여파로 이제 이들은 고향인 웨이하이나 옌타이 등지로 이주하여 과거 적대정권이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이들 탈영토화된 이산민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라는 생활공간 속에서 오래 살아왔고 한국문화가 몸에 밴 사람들이다. 특히 이민 3, 4세대들에게 한국어는 중국어보다 더 편한 언어가 되었고 현실적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 곳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대만과 중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귀속의 문제로 인해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중국 대륙의 공산당 정권에게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걸어야 하는 재이주 화교들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이 세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와 역동적 경제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면서 매우 실용적이고 유연한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한국, 중국, 대만이라는 세 개의 꼭지점 중에서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복합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세 개의 겹 중의 하나를 더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 영문
  • This study looks at the Korean overseas Chinese in Weihai, China to find how they see their transnationality and multi-layered identity. In late capitalism capital accumulation occurs through various new forms of econmic activities that transcend national boundaries. Recent diasporas are closely related to this global changes. The overseas Chinese in Korea live a life closely linked to the global expansion of capitalism. The end of the Cold War and the subsequent massive globalization changed the surroundings of the Korean overseas Chinese to a considerable degree. The rapid growth of Chinese economy, expanding economic exchanges between Korea and China, and Korea’s IMF financial crisis, all combined together to open up many new opportunities for them. The open-door policy by the PRC marked the beginning of a new era for the two countries. In particular, the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in 1992 accelerated economic exchanges in an unprecedented way, and after fifteen years or so the PRC has become the number one importer and the number two exporter to Korea. The intensifying economic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has had considerable repercussions on the Korean overseas Chinese. While younger generations began to enjoy increasing employment opportunities offered by Korean companies in need of Chinese-speaking workers, older ones began to turn their eyes to mainland China. Since the regular passenger ship line between Incheon and Weihai was established in 1990, overseas Chinese visitors to China rapidly increased. At first the purpose was visiting relatives in Shandong, but there soon appeared many full-time traders carrying goods for sale or delivery. Packaging and forwarding services also blossomed and were almost monopolized by the overseas Chinese. Responding to the expanding economic opportunities, many Korean overseas Chinese moved to Weihai, Yantai and other areas to seek their livelihood. In Weihai in 2001, for example, about thirty overseas Chinese were engaged in such businesses as wholesale and retail shops (mainly clothes and accessories), manufacturing, restaurants, travel agencies and other service industries. Now the number has shrunken to about twenty. These people, situated in a triangle consisting of Korea, China, and Taiwan, seem to take a very pragmatic and flexible stance as to their place in the triangle. Not solely belonging to anywhere,they tend to emphasize one of the three layers of their identity according to the situ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후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자본의 축적이 국가적 경계선을 뛰어넘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경제활동들을 통해 이뤄지게 되는데 최근의 이산 현상은 바로 이러한 전지구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한국화교들의 최근 상황을 보면 이들 역시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팽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한국사회 진입과 통합을 저해했던 많은 제도적 배제의 기제들이, 1990년대 이래 세계화 흐름에 부응하는 한국정부의 능동적 대응에 의해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있다. 그와 함께, 과거 한국사회와 분리된 채 살아왔던 한국화교들 중에서 이제는 한국정부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한국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지방정부가 추진한 차이나타운 건립 계획들 또한 국내 화교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한국의 외국인 정책과 처우가 전향적으로 바뀌면서 한국인과의 결혼이나 한국 국적 취득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취하는 화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는 한중 양국 간의 경제적 교류를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그 결과 국내 회사들에 취업하는 화교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또 급속하게 늘어난 경제교역과 인적 교류는 한중 양국의 주요 항구들간의 정기 여객선 개통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새로운 경제적 기회의 창출로 이어졌다. 한중 외교관계 정상화 이후 삶의 기반을 중국 대륙으로 옮긴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연구는 웨이하이로 이주한 한국화교들을 주요 조사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파헤치고 있다. 이들은 출신지, 국적, 성장지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복잡한 존재이다. 세계 대부분 지역의 화교들이 중국 남부 출신인 데 반해, 한국화교는 90 퍼센트 이상이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산둥 출신이다. 냉전의 시작으로 한국과 중국 대륙의 관계가 단절된 후 이들은 한국과 우호관계에 있던 대만의 정치적 영향권 속으로 편입되어 대만 국적을 부여받았고 오랜 기간 철저한 반공주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고향이 있는 공산당 지배 하의 대륙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이래 급속도로 증가한 한중간 교역과 교류에 힘입어 한국화교들의 대륙 방문과 대중 경제활동이 늘어났고 그 일부는 고향인 웨이하이나 옌타이 등지로 이주하여 과거 적대정권이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웨이하이의 한국화교들은 한국, 중국, 대만이라는 세 개의 국가에 걸쳐 존재하고 있는 탈영토화된 이산민이다. 이들은 한국정부의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외국인 정책 때문에 한국사회 속에 통합되지 못하고 중국인으로서의 민족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라는 생활공간 속에서 오래 살아왔고 한국문화가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한국인 어머니를 가지고 있거나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이민 3, 4세대들에게 한국어는 중국어보다 더 편한 언어가 되었고 현실적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더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갖는 나라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만과 중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귀속의 문제로 인해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중국 대륙의 공산당 정권에게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걸어야 하는 재이주 화교들에게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일 수가 있다. 이들은 이 세 국가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와 역동적 경제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되돌아봐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다. 이 연구는 이들이 자신들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인식이 현실 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것은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와 맞물려 생성되고 있는 탈영토화된 초국가적 이산민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중국 산동성의 연안도시인 웨이하이에는 상당히 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약 15,000명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자리 잡은 조선족 동포의 수가 약 2만 2천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곳은 한민족의 직간접적 영향력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의 한국화교 숫자는 아주 미미한 정도에 불과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화교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는데 일부는 특히 옷이나 넥타이 등의 한국 의류를 이곳에서 판매하여 큰 수익을 올렸다. 많을 때는 30여 가구까지 늘어났던 이곳 화교는 경제사정이 더 나은 옌타이 지역 등으로 상당수가 빠져나가면서 그 수가 많이 줄었다. 현재 장기체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화교는 20여 가구 전후이며 그밖에 생활비가 싼 고향 웨이하이에서 노년을 보내기 위해 나와 있는 단신의 남성 화교들이 몇 명 있다. 인터뷰 결과를 보면 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규정하는 세 개의 꼭지점인 한국, 중국, 대만에 대한 태도는 매우 실용적이다. 연배가 높은 사람들의 경우 중국 공산당이나 현지사회의 풍토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삶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데 중국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고 현지정부나 현지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렇지만 중국사회에 깊숙히 진입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현실적 중요성에 대한 정치적 귀속감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특별한 몇몇 개별적인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고향 친척들을 포함한 현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고향 땅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한국에 대한 정서적 애착과 문화적 친숙감도 크게 약해지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이 중국 속에서 살면서 일상적 실천과 자녀교육 등을 통해 재중국화되는 경향은 분명히 있지만 두 나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어느 곳에 자신들을 더 가깝게 위치시킬 것인지를 결정할 것처럼 보인다. 이상과 같은 잠정적인 연구결과는 화교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 수립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화교경제권, 중화경제권에 대한 관심이 종종 중국과 화교간의 결합이 초래할 부정적 결과에 주목하고 있지만 화교들에게 중국은 하나의 선택사항이지 유일한 선택사항은 아니다. 단일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이 앞으로 다문화사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의 소수민족인 화교를 그 문화적 자율성을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우리 국민의 일부로 수용하여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연구는 그와 같은 정책적 선택이 매우 올바른 방향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 색인어
  • 중국, 한국화교, 디아스포라, 재이주, 전지국적 자본주의화, 초국가성, 다층적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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